[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2)광주공동체의 인류애
고려인 동포들 환대·포용은 ‘의향 광주’의 상징 오랜기간 체화된 ‘의로움’으로 보듬어 고려인돕기 모금에 1천200여명 참여 아이부터 기업체 대표까지 ‘십시일반’ 시민들 힘으로 입국지원 ‘세계 유일’ ‘나보다는 공동체가 먼저’ 정신 발휘 시민 관심으로 고려인지원조례도 제정 신조야 “환대에 감사…새 희망 키워”
“고마움을 전할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광주시민들입니다. 시민들이 관심과 성원이 있었기에 광주에 올 수 있었습니다.”
사단법인 광주고려인마을(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가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이 돼 광주에 도착한 고려인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신 대표는 전쟁난민으로 전락한 현지 고려인들을 위해 항공료 지원 모금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시민과 광주거주 고려인들, 전국의 후원자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현지 고려인들에게 항공권을 전달하고 있다.
◇모금운동 1천200명 참여
27일 현재 고려인마을에서 마련해준 항공권으로 광주에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480명이 넘는다. 현지에 발송(SNS 등 이용)한 항공권은 520여매다. 여기가 전부가 아니다. 아직도 루마니아나 폴란드에 대기중인 고려인 동포는 3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을 위한 성금이 광주를 비롯 전국 각지에서 답지하고, 성금은 모이는대로 항공권으로 바뀌어 현지 고려인에게 전해진다. 전쟁 초기 80만원대이던 항공료가 200만원대까지 올랐어도 고려인 동포를 위한 항공권은 멈춤이 없다.
모금운동에는 작은 고사리 손부터 큰 기업을 운영하는 시민까지 동참했다. 사회단체, 종교계도 줄을 이었고, 관공서까지 힘을 보탰다. 첫 성금 이후 4개월동안 8억원이 넘게 모금됐다. 십시일반 모금운동에 참여한 사람도 1천200여명이나 된다. 광주 이외 지역에서 보내진 성금도 있지만 대부분 광주시민들 성금이다.
다양한 물품도 답지한다. 정착에 필요한 침구나 의류 등 생활용품과 쌀 등 필수품들이다. 월곡2동에서 중고가구와 주방용품 등을 판매하는 ㈜부활상회(대표 김선영)가 후라이팬을 지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감자튀김 한 봉지를 사들고 온 시민도 있다. 성금은 공권과 임대보증금, 2개월분을 지원해 자립 기반을 마련하도록 지원된다. 후원품은 일요일마다 시간을 정해 고려인종합지원센터에서 긴급구호품 형태로 배분된다.
이뿐이 아니다. 고려인진료소를 중신으로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해 무료 진료 및 치료가 이뤄진다. 전쟁 트라우마 치유 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어린 아이들의 뛸 공간을 마련해주고, 학생들에게는 학업을 이어갈 기회를 제공한다. 고려인 동포들을 성금으로 항공권을 사서 입국시키고, 또 어렵게 들어온 고려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는 일을 광주가 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난민을 도운 건 세계적으로도 광주가 유일하다는 게 고려인마을 설명이다.
◇의로운 행동에는 ‘너도 나도’
전문가들은 광주시민들에게 오래기간 체화된 의로운 공동체 정신에서 그 배경을 찾는다.
“2021년 2월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 일어났을때 광주가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데도 앞장섰다. 광주가 시작하니 다른 지역에서도 민주화운동 지지 움직임이 일어났다. 코로나19사태 초기 대구 감염자를 위해 광주는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 광주가 특별함이 있는 도시라는 걸 알 수 있다. 시민들은 5·18민주화운동처럼 의로운 행위를 필요로 할 때는 또 너도 나도 뛰어든다. ‘광주는 의향’이란 평가를 받는 것도 여기에 있다. 그 의로움은 오랜시간 거치면서 시민들에게 체화됐다. 임진왜란과 한말의병, 동학농민전쟁, 광주학생독립운동, 4·19의거, 5·18을 의향이란 전통과 흐름이 자리잡았다.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고려인들을 위해 온정의 손길을 내민 것도 의향 전통에서 기반했다고 볼 수 있다.”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고려인마을 상임이사)은 나보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 시민정신을 그 배경으로 분석한다.
“광주는 공동체 정신이 강한 도시다. 개인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한다. 바로 5·18민주화운동이 추구한 ‘대동정신’이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난민도 같은 맥락이다. 나라가 힘이 없어 두번이나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 삶을 광주시민이 앞장서 환대하고 포용한 것이다. 인권도시를 자부하는 도시답게 앞장서서 고려인들을 보듬고 있다”고 말한다.
고려인마을이 광주공동체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2013년 전국 최초로 제정된 ‘고려인동포 지원 조례’가 전환점이 됐다. 당시 광주시의원이던 홍인화 관장이 발의한 이 조례가 제정되면서 고려인마을은 광주시와 광산구로부터 어린이집, 고려인종합지원센터 고려인방송국 등의 운영비를 지원받게 된다. 후원금으로 근근히 운영되던 고려인마을은 지자체 지원이 되면서 보육과 의료, 교육 등에서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됐다.
고려인마을이 형성, 정착되기까지는 헌신적인 자원봉사자와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천영 목사(새날학교 교장)가 대표적이다. 하남공단 인근에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를 운영하던 이 목사는 2002년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를 만나면서 고려인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를 찾은 신씨는 불법체류 신분 때문에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도움을 청했다. 한국에 체류 중인 고려인들이 어려운 삶을 엿본 이 목사는 신씨를 설득해 함께 고려인 동포들을 돕자고 팔을 걷어붙였다.
◇각계각층 활동가들 ‘헌신’
하지만 고려인 이주민과 자녀들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새날학교는 교사 임금과 교육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느 상황이 돼 폐교 위기에 처했다. 이 목사는 이곳 저곳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 목사의 헌신적인 모습에 당시 정용화 청와대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을 비롯 유력 인사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홍인화 시의원은 광주시의회의 백두산·두만강 일대 연수를 통해 광주고려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지원방안을 모색했다. CBS광주본부장을 역임한 박용수씨는 고려인동행위원장을 맡아 고려인 후원활동에 적극 나섰다.
또 김재기 전남대 교수와 임영언 (사)재외한인학회장을 비롯 지역의 많은 대학과 학자들이 고려인마을을 연구했다. 새날학교와 고려인마을은 이주민 및 재외동포 전문가들이 연구를 위해 반드시 찾아야 하는 필수코스가 될 정도였다. 언론에서도 지속적인 보도로 고려인마을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켰다.
이처럼 광주공동체의 각계각층 관심과 지원,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새날학교는 광주시교육청 학력인정 위탁교육기관이 돼 정상화를 찾았다. 고려인마을에는 무료법률지원단과 무료진료소 등 10여개의 지원단체 및 기관이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중이다. 이는 광주가 고려인마을 주민을 이주민이 아닌, 함께 호흡하고 생활하는 ‘이웃’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전쟁난민이 된 고려인 동포들을 시민들이 환대해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면서 “많은 고려인들이 시민들의 따뜻한 인정에 용기를 얻어 광주에서 새로운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