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6)선주민-이주민 상생

소통·협력으로 문화적 차이 극복...‘관광객 1천만 시대’ 꿈 키워가 2017년 고려인 강제 이주 80주년 기념사업추진 계기 선주민-이주민 협력 본격화 이해 폭 넓혀 상생 토대 마련 고려인 역사 문화 삶 자산 삼아 지역특화 다문화 모델 발굴 앞장 주민총회 어린이합창단 초청도 “사람이 오니 마을에 활력 생겨”

2022-08-24     김명식 기자
광주 광산구 월곡2동은 ‘관광객 1천만명 방문’을 목표로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 삶, 이야기 등을 자산삼아 선주민과 이주민이 협력해 전국 최고의 다문화 특화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은 월곡2동 산정공원로에 조성중인 고려인 특화거리 모습. 러시아어와 한글로 적힌 상점 간판에서 선주민과 이주민이 공존하는 마을임을 알 수 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2동 고려인 특화거리는 외관부터 이채롭다. 4차선 도로인 목련로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산정공원로 양쪽 상가 간판에는 Я, Б, Л, Ж 등 생소한 키릴글자 간판들을 단 음식점과 마트, 카페, 식료품점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리와 식당, 마트 등에선 러시아어를 하는 고려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고려인과 외모가 확연히 구분되는 사람들도 보인다. 안내판이 없어도 이곳이 고려인이 많이 모여사는 곳임을 쉽게 짐작케 한다.

◇이주민과 선주민 공존
간판에 러시아어와 한글이 함께 쓰여있는 것처럼 월곡2동은 고려인을 포함한 이주민과 선주민들이 공존·공생하는 대표적인 공동체다. 지난 2021년 12월 기준 월곡2동 전체 주민은 1만5천594명으로, 이주민이 4천473명이다. 이주민 중 고려인은 3천176명으로 파악됐다. 이는 월곡2동에 공식 등록된 통계로, 고려인의 경우 인근 월곡1동과 신가동, 하남동, 산정동 거주자와 미등록자까지 포함하면 7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표 참조>

고려인들이 집단 정착하면서 월곡2동은 이주민과 선주민간의 소통과 상생·협력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됐다. 생활환경와 분위기가 이주민이 없던 때와는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선주민과 같은 외모에도 러시아말을 사용하다보니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와의 문화적 차이로 갈등이 발생했다.

고려인은 선주민과 언어와 문화, 생활까지 모두 다르다. 여러 면에서 삐그덕거림이 나왔다. 고려인은 물론 이주민 유입이 늘면서 야간 안전을 놓고 선주민 우려가 커졌다. 야간 늦은 시간에 이주민들이 음주 후 돌아다니는가 하면 공원에서의 음주, 쓰레기 투기, 분리수거 미이행 등으로 갈등이 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처럼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면서 떠난 주민들도 있었다.

이주민과 선주민들은 함께 살아가는 상생방안을 모색했다.

 

광주 광산구 월곡2동은 ‘관광객 1천만명 방문’을 목표로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 삶, 이야기 등을 자산삼아 선주민과 이주민이 협력해 전국 최고의 다문화 특화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15일 선주민과 고려인이 협력해 개최한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 모습들./고려인마을 제공

◇고려인들 문화차이 극복 노력
월곡2동에 중심을 둔 고려인마을에선 2016년 4월 9일 고려인마을자율방범대를 조직해 범죄없는 안심마을 구축에 나섰다. 광산경찰서와 협력해 마약밀매를 비롯 폭력, 음주운전 등 선주민들이 불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분야를 적극 관리하며 ‘범죄없는 안심마을’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20년 ‘제5회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 시상식’에서 민간단체로는 처음 최우수상인 행안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깨끗한 마을 만들기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2013년 ‘깔끔이 봉사단’을 발족해 주말마다 환경정화활동을 시작했다. 놀이터와 골목, 상가지역을 돌며 쌓인 쓰레기 정리는 물론 담배꽁초 등 청소활동을 펼쳤다. 선주민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않기!, 길거리 음주금지!, 쓰레기 분리수거 철저!’ 등 다양한 계몽활동도 전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했을 땐 예방을 위한 방역활동도 실시했다.

자율적인 방범대와 청소봉사단 활동은 고려인 스스로 한국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깔끔이 봉사단에 참여하고 있다는 노인복지센터 김엠마(66·여)씨는 “깔끔이 봉사단에 참여해 청소를 시작한 후 한국 사회문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전했다.

공존·공생은 한쪽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선주민 사회의 호응이 중요했다. 고려인들은 월곡2동을 중심으로 사실상의 자치생활권을 구성하고 있고,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 기업들로부터 관심과 후원을 받고 있음에도 선주민들과는 피부로 와닿을만큼의 소통과 협력은 없었다.

 

광주 광산구 월곡2동은 ‘관광객 1천만명 방문’을 목표로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 삶, 이야기 등을 자산삼아 선주민과 이주민이 협력해 전국 최고의 다문화 특화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15일 선주민과 고려인이 협력해 개최한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 모습들./고려인마을 제공

◇5년전부터 상생·협력 본격화
선주민과 이주민과의 관계는 고려인마을이 2017년 고려인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전기를 맞는다. 박용수(현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장)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은 기획단계부터 준비, 실행, 참여,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고려인과 선주민이 함께하는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기념사업은 성황리에 개최됐고, 나아가 선주민 사회에 고려인의 존재감과 의미를 각인시키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선주민과 이주민이 함께한 기념사업은 이듬해 월곡동 주민 전체가 하나가 된 ‘달빛 아리랑’ 개최로 이어졌다.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등 이주민과 선주민이 공존하는 월곡2동의 특색을 반영한 소통·화합 행사로

성공 개최되면서 이후 매년 열리고 있다. 또 2019년에는 광산구가 국토교통부로부터 ‘더불어 상생하는 월곡 고려인 마을’을 테마로 한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모에 선정돼 국·시비 150억 원을 확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소통·협력은 다방면으로 확대됐다. 월곡2동 송년행사에선 고려인돕기 후원과 김장 나눔 행사가 진행됐고, 월곡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고려인과 함께하는 음식만들기 체험과 영화시청, 취학아동 가방나눔, 한파를 대비한 겨울옷 나눔 등의 다양한 상생·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겼다. 선주민들은 고려인마을이 설립한 ‘마을극단1937’에도 참여해 고려인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달빛마을 해설사’는 상생협력의 상징으로 꼽힌다. 마을해설사는 월곡2동 탐방객들을 인솔하며 고려인마을에 조성된 역사유물전시관, 마을둘레길, 고려인마을특화거리와 선주민 상점가를 소개·해설한다. ‘고려인마을 문화탐방’의 도우미다.

◇선주민 구성 마을해설사
마을해설사들은 현재 13명이 활동 중이다. 모두 월곡2동과 하남동, 산정동 선주민들로 2020년 12월 월곡2동도시재생센터에서 해설사 양성과정 수업을 받았다. 이들은 방문객 해설은 물론 블로그와 SNS를 통해 활동은 물론 고려인마을 이곳 저곳을 홍보하고 있다.

최창인 (전)월곡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은 월곡동 마을해설사 탄생의 주역이다. 최 회장은 고려인들의 문화, 역사콘텐츠의 가치에 주목해 월곡동 달빛마을 문화탐방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최 단장은 “사실 전에는 고려인들과 벽이 높았죠. 서로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이 다양하게 추진되면서, 고려인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됐습니다. 서로 양보하고, 포용하면서 함께 사는 길을 찾게 됐고, 이제는 서로 윈-윈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려인마을 문화탐방 사업이 아닐까 싶습니다”고 말한다.

선주민과 이주민의 상생·협력은 최근 들어서 더욱 활발하다. 공공 기구와 단체가 앞장설 정도다. 월곡2동 행정복지센터에 개설된 러시아어 교실에는 선주민 40여명이 수강할 만큼 열기가 뜨겁다. 또 지난 3월에는 주민자치회를 비롯 광산경찰서 월곡지구대, 행정복지센터, 통장단,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자율발재단 등 월곡2동내 6개 민관경 단체(기구)가 ‘안전마을 조성 협약’을 체결해 매월 한 차례씩 방범방재 활동을 전개중이다. 치안에 대한 불안감 해소와 함께 이주민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을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주민들이 나서 정기적으로 방범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 최고 특화마을 추진
주민자치회는 오는 9월 1일 열릴 총회에 고려인어린이합창단을 초청한 상태다. 주민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민총회에 고려인이 초청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린이합창단의 총회 참석은 선주민과 이주민의 상생협력에 또하나의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주민자치회는 또 자율방범활동도 고려인들과 함께 할 계획이다.

노한복 월곡2동 주민자치회장은 “월곡2동에는 고려인을 포함해 수천명의 이주민들이 살고 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려인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 오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광주로 온 이들이 잘 정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활력이 생길 것이다”며 “이주민들이 빨리 정착하고 서로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차원에서 주민총회에 초대하고 함께 자율방범대를 구성해 운영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고려인을 품은 월곡2동의 꿈은 ‘관광객 1천만명 방문’이다. 선주민-이주민 간의 화합을 통해 다문화 수용성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이 공존할 수 있는 지역 특화 다문화 모델을 발굴해 전국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가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고려인은 큰 자산이다. 홍범도 장군과 월곡고려인문화관이 말해주듯 고려인이 오면서 이야기거리가 더욱 풍부해진 고려인마을이고 월곡2동이고, 광주다.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이 된 고려인들의 잇따른 광주행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