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75]살아있는 유산 '해녀 문화' 지켜내자

다도해 특성상 전남 해녀 집단·규모화 한계 봉착 제주와 달리 전남은 농토 광대·자원 풍부 해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복지·처우 열악 육지중심 사고 자식에게 단절 분위기 확산 법적·제도적 지원 통해 ‘숨비소리’이어야

2022-09-04     김우관 기자


 

해녀는 여성들의 어로문화를 대표하는 산 증인들이어서 법적·제도적 지원을 통해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완도문화원이 지난 7월, 완도 명사십리 해변에서 해녀의 가치 확산 및 전승을 위한 어울아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

해녀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해양문화와 여성 어로문화를 대표하는 산 증인으로서 특히 섬 지역에서 여성이 주도할 수 있는 유일한 생업수단이자 생계전략이기도 하다. 특별한 장비 없이 맨몸으로 거친 파도와 싸워야하는 해녀들은 오랫동안 지켜온 그들만의 독특한 행동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해녀사회에는 이른바 물질의 기술에 따른 계급이 존재하며, 진입장벽이 높은 특성상 해녀 사회에 입문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일련의 사회적 관습들이 있다. 즉 어머니에게서 물질을 배울 수는 있지만, 어머니가 해녀라고 해서 딸이 당연하게 해녀가 되는 것은 아니며, 일련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입문의례(Initiation rites)는 인간의 성장과 발달뿐 아니라 사회화의 기반이기도 하다. 그것은 개인을 공동체에 연결하고 공동체는 한층 폭넓은 세계로 연결한다.

해녀공동체에 첫 입문하는 날, 초보 애기해녀가 물질에 나설 때 엄마해녀는 그날 하루 물질작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물질인 만큼 해녀공동체는 나름대로의 위계질서와 작업 규칙이 뚜렷한 편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잘 아는 엄마해녀는 공동체에 신규 입문하는 딸이 무엇보다 걱정되고 염려되지만, 오랜 전통에 따라 입문절차는 해녀조직의 리더에게 맡기고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한 마을에 사는 고모나 친인척 혹은 가깝게 지내는 해녀삼춘들이 동행하여 물질채비를 해주고 해녀공동체의 입문을 돕는다. 해당 조직의 리더인 상군해녀는 초보해녀가 갖춘 됨됨이, 즉 배려와 협력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고 자격을 인정해주면 그날부로 ‘진짜해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또 한명의 해녀가 탄생한다.

어머니의 대를 이어 물질을 하는 경우의 장점은 바로 좋은 ‘물건’(전복, 소라 등)이 서식하는 장소에 대한 정보, 산 가늠을 통해 물속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 바람과 물 때, 물색에 따른 잠수방식의 차이 등을 직접 전수받는다는 점이다. 선배인 어머니가 몸소 터득한 전통지식, 즉 물질에 필요한 현명한 지혜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된다. 이렇게 고유한 전통지식이 전승되고 계승됨으로써 위대한 해녀들이 배출된다.

지난달 광복절을 맞아 70여 년 전 독도에서 물질을 했던 제주 해녀들이 다시 독도를 찾는 행사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 해녀들이 독도에서 실제 물질을 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경북도에서 독도 개척사를 재조명하여 영토주권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추진하면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독도를 지켰던 해녀는 제주 해녀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이보다 먼저 독도와 울릉도 바다를 오갔던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여수 거문도와 초도 어부들과 해녀들이다. 제주 해녀들의 첫 독도행은 1930년대로 알려져 있지만, 거문도 주민들은 그보다 앞선 1800년대부터 봄이면 계절풍을 타고 울릉도·독도로 건너가 미역, 약초 등을 채취하고 강치를 잡아 10월 이후 북풍을 타고 다시 거문도로 돌아오곤 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말 이전부터 왕래하며 어렵이나 미역채취, 선박건조 활동을 하면서 수백 년 동안 울릉도·독도를 기반으로 생업활동을 영위해 왔던 것이다. 여수 거문도뱃노래(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가운데 어업용 밧줄을 만들 때 불렀던 ‘술비소리’의 노랫말에 울릉도가 여러 차례 언급된 것도 이러한 교류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철기시대의 대표유적으로 지정된 해남 군곡리 패총(사적 제449호)의 발굴유물을 통해 전복껍질과 전복을 따는 도구인 ‘빗창’이 발견된 것을 봐도 이미 오래전부터 전남 해안에서 자생해녀들이 활동해왔음을 짐작케 할 수 있다. 해녀의 발상지를 제주로 보는 이도 있지만, 이처럼 전남 여수와 완도, 해남 등 연안과 흑산군도 등 섬 지역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발생한 지역 해녀들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전남의 자생해녀는 제주와는 다른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이후 제주도에서 들어와 정착한 해녀들과 상호 교류를 통해 해녀문화를 형성해왔을 것으로 보인다.

해녀는 여성들의 어로문화를 대표하는 산 증인들이어서 법적·제도적 지원을 통해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완도문화원이 지난 7월, 완도 명사십리 해변에서 해녀의 가치 확산 및 전승을 위한 어울아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

그러나 농토가 없던 제주가 물질의 중요성 때문에 집단화되어 있는 것과 달리 전남은 농토가 넓고 자원이 풍부한 편인데다, 다도해의 특성상 산발적으로 섬이 흩어져 있어 집단화와 규모화의 한계로 인해 제주만큼의 해녀공동체가 형성·유지되기는 쉽지 않았다.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은 물론 고령화 등으로 해녀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제주와 달리 해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및 복지와 처우 등이 열악하여 전남에서는 자녀에게 물질을 되물림하겠다는 해녀를 만나기 쉽지 않다. 그동안 육지중심적 사고에서 해녀의 위상과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홀대해왔던 우리의 자세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제주와 경북도에서는 선도적으로 해녀문화의 보전과 계승에 앞장서고 있다. 해녀증을 발급하여 도내에서 활동하는 해녀를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해녀복 제공과 각종 안전장비 및 진료비 지원, 은퇴수당과 초기 정착금을 통해 고령 해녀 보호와 신규 해녀육성 등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해녀 문화 전승 및 지원은 보이지 않게 해녀에 대한 인식개선 및 자긍심 고취에 기여하게 된다. 이제라도 소멸 위기의 전남 해녀를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오는 9월 셋째주 토요일은 ‘해녀의 날’이다. 전남에서도 해녀학교 운영을 통해 신규해녀를 육성하고 해녀문화를 계승하여 남도의 숨비소리를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글·사진/이경아(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정리/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