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10)생활실태 설문조사...2·3대 가족이 원룸 생활…대부분 일용·임시직 종사

시민모금 항공료 지원 입국 704명 러시아 점령지역 출신이 대부분 30~40대 여성·청소년 비중 높아 영주권·건강보험 등 고민 토로 광주도착 후 다가족·다세대 거주 정착 위한 일자리·언어 극복 필요 응답자 절반이 ‘농사’에 긍정 입장 “한민족 정체성 강화 위한 정책 필요”

2022-09-28     김명식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국내 입국한 고려인은 전쟁상황이 격렬한 우크라이나 남부지역의 자녀를 둔 30~40대 여성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쟁이후 광주에 온 고려인들은 한민족(고려인)으로서 정체성 의향은 강하지만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해 광주 정착을 위해선 한국어 능력 제고가 시급한 상황이다. 사진은 지난 7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다모아공원에서 열린 ‘고려인 추석맞이 행사’ 모습.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만 7개월이 지났다.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 거주 고려인들은 전쟁 포화를 피해 ‘할아버지의 땅’ 대한민국으로 향하고 있다. 고려인단체와 광주출입국고려인사무소 등에 따르면 전쟁 이후 국내에 입국했거나 입국 예정인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은 1천6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704명(9월 28일 기준)이 광주고려인마을과 광주시민 등이 십시일반 성금으로 마련한 항공료를 지원받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입국자 중 광주에 둥지를 튼 고려인은 500명에 이른다.

이에 남도일보는 전남대 광주국제개발협력센터(센터장 김재기 교수), (사)재외한인학회(회장 임영언·조선대 교수)와 공동으로 광주 거주 고려인들의 생활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9월 7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된 조사는 전쟁 이전 입국한 20세 이상 고려인 가족(가구) 대표 72명과 전쟁 이후 입국 고려인 가족 대표 35명을 대상으로 했다. 미리 준비한 설문지를 전달한 뒤 직접 작성하는 방식으로 한민족 정체성, 한국어 수준, 전쟁 피해 유무, 한국 정착 문제 등을 살펴 봤다. 또 광주고려인마을로부터 항공권 지원을 받은 고려인의 성별·연령별 현황도 파악했다.

◇자녀동반 30~40대 여성 위주 입국

우크라 전쟁 이후 광주에 안착한 고려인의 특징은 크게 ▲30~40대 여성 ▲청소년(아동 포함)으로 압축된다. 항공권 지원을 받은 고려인 704명(9월 26일 기준) 가운데 연령 확인 불가자 14명을 제외한 690명을 살펴본 결과 남성 258명(37.3%), 여성 432명(62.7%)으로 여성이 월등히 많았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쟁을 위해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남성들이 전쟁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령대별로는 ▲0~9세 96명(남 49·여 47) ▲11~19세 청소년이 154명(남 76·여 78)으로 19세 이하가 전체 36.2%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여성의 경우 30대 79명(11.4%), 40대 72명(10.4%)으로 10대와 함께 높은 분포를 보였다. 30대 남성은 35명(5.0%), 40대 33명(4.7%)으로 같은 연령대 여성의 절반도 안됐다. 이는 영유아 및 10대 청소년을 자녀로 둔 여성들이 가족단위로 국내 입국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국적은 대부분 우크라이나였다.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국적의 고려인도 73명이나 됐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생활하다 전쟁으로 발발하면서 한국행을 택했다는 게 광주고려인마을측 설명이다. 무국적자도 26명으로 파악됐다. 구 소련 해체 후 독립국가연합 탄생과정에서 국적 취득 기회를 놓친 고려인들이다.

◇전쟁이후 입국 고려인

전쟁 이후 광주에 도착한 고려인들은 한 사람당 평균 5.2명의 가족 및 친인척과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광주에서 함께 사는 가족과 친인척은 모두 몇 명입니까’라는 물음에 가족대표 35명 중 34명이 ‘1명 이상’을 응답했다. 34명의 가족 및 친인척을 합한 숫자는 183명이었다. 가장 많은 가족은 13명이었다.

이는 광주에 온 고려인 대부분이 가족 및 친인척들과 생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가족단위로 입국했거나, 먼저 입국한 가족 및 친인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해석된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직업은 농부가 많았다. 35 명 중 18명(51.4%)이 우크라이나에서 농업에 종사했다고 답했다. 이어 사업(장사)은 8명(22.5%), 연금수혜자 2명, 직장인 1명, 미용사 1명, 은퇴자 1명 순으로 나타났다.

농업에 종사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한국에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35명 중 15명(42.8%)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같은 입장은 ‘고본질’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고본질(Кобонди)은 옛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우크라이나, 볼고그라드, 체첸, 로스토프, 칼미크, 아디게야 등 국영농장과 집단농장의 비옥한 농지를 임대받아 채소를 재배해 소득증대를 올렸던 계절제 영농방식이다.
 

설문에 응한 고려인 대부분은 직접적인 전쟁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으로 가족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15명(42.8%)이었다. 집 파손 등 물적 피해를 입었다는 응답은 5명(14.2%)이었다. 인적 피해와 물적 피해를 같이 당했다는 사람은 7명(20%)으로 파악됐다. 8명(22.8%)은 피해 유무를 밝히지 않았다.

광주에 온 고려인은 우크라이나 남부를 비롯 러시아와 직접 교전하는 지역 출신이 많았다. 미콜라이우 12명, 오데사 5명, 헤르손 4명, 마리우폴 3명, 하루키우 2명, 드니프로 2명, 크레멘추크 2명, 자포리자 1명 등이었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거나 군사적 요충지로 러시아의 공세가 심한 지역들이다. 현재도 상당지역이 러시아 점령지로 돼 있다. 이 밖에 ‘남부지역’ 2명, ‘중부지역’ 1명, 기타 1명으로 나타났다.

한국어 구사 능력은 떨어졌다. 23명(65.7%)이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조금한다’가 10명(28.5%), ‘보통 수준’ 2명(5.7%)이었다.

그럼에도 고려인 정체성 의지는 강하게 나타났다. ‘나는 고려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질문에 30명이 ‘매우 그렇다’고 밝혔다. ‘대체로 그렇다’는 5명이었다. ‘고려인 문화보존 계승’과 관련해선 28명이 ‘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 ‘대체로 그렇다’는 7명으로 조사됐다.

또 ‘고려인 구성 단체 참가 및 활동’에 대해선 ‘매우 그렇다’가 15명, ‘대체로 그렇다’ 14명, ‘대체로 그렇지 않다’ 6명으로 파악됐다.

전쟁을 피해 광주에 온 고려인들이 한국어 소통 부족으로 같은 언어(러시아)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고려인이 한국사회에 정착하고, 한민족 동포로서 정체성을 유지 계승하기 위해선 한국어 소통 능력이 급선무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학력은 고등학교 이상 졸업자가 많았다. 고교 졸업 21명, 대학 졸업 8명, 중졸 3명, 대학원 1명, 무응답 2명으로 파악됐다.

‘고려인을 위한 정책 제안이나 한국에서 어려운 점’에 대한 질문에는 ▲건강보험 ▲한국어 구사 ▲영주권(국적취득) ▲교육 등의 답변이 나왔다. 남도일보가 ‘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를 통해 보도한 고려인의 한국사회 정착 극복 과제와 고려인지원 활동가들이 강조한 내용들과 비슷했다.

◇전쟁 이전 입국 고려인

광주에 거주 중인 고려인들은 평균 4.5명 이상의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이전 광주에 도착한 고려인 가구(가족) 대표 72명을 대상으로 한 ‘현재 광주 거주 가족수’에서 ‘5명 이상’ 응답자가 26명(36.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3명·4명’이 나란히 12명(16.6%)씩이었다. ‘2명’은 6명, ‘1명’은 4명, ‘없다’는 8명이었다. 무응답은 4명이다. 전쟁 이후 입국자들처럼 가족단위로 거주하는 형태를 보였다.

‘가족 구성 형태’로는 2세대 이상 가족이 절반에 달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생활하는 2세대 가족이 18명(25%)으로 가장 많았다. 조부모, 부모, 손자녀 등 3세대 가족은 16명(22.2%)으로 뒤를 이었다. 1인 가족은 16명(20.8%)으로 조사됐다. 부부 가족은 6명(8.3%)으로 응답했다. 기타 11명(15.3%), 무응답 6명(8.3%)이었다. .

주거지 소유 현황은 임대가 62명으로 전체의 86.1%를 차지했다. 정부 또는 회사 지원 주거지는 4명(5.6%)이었고, 자기 소유 응답자는 1명에 불과했다. 무응답은 5명(6.9%)였다. 고려인들이 자기 소유 주거지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직업으로는 ‘해당없음’(무직)이 17명(23.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임시직 15명(20.8%), 일용직 7명(9.7%), 상용직 4명(5.6%), 무응답 18명(25%)으로 파악됐다. ‘해당없음’과 임시·일용직 비율이 높은 건 안정적인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농사 의향’에 대한 질문에 72명 중 33명(45.8%)이 ‘의향이 있다’고 긍정 답변을 한 것도 현재의 직업현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농사에 대해 긍정 입장은 ‘아니오’ 응답자 20명(27.8%) 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무응답은 18명(25%)이었다.

광주 도착 이전 직업(생활자금 마련)으로는 연금수령자(12명), 농업·판매원·학생이 각 4명, 개인·사업·주부 각 3명, 학생·점원·일용직·노동자 각 2명, 간호사·교사·디자이너·미용사·생산관리자·선반공·시장판매원·요리사·학교 각 1명씩으로 다양하게 응답했다.

‘한국어 말하기’는 전쟁 이후 입국한 고려인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전쟁 이후 입국자 중 ‘한국어 말하기를 전혀 못한다’ 비율은 65.7%였으나, 전쟁 이전 입국자 중에선 ‘한국어 말하기를 못하는 사람’은 22.2%(16명)로 대조를 보였다. 또 응답자 72명 중 45명(62.5%)이 ‘한국어 소통(말하기) 가능’으로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대체로 한다’(36명50%), 대‘체로 잘한다’(6명8.3%), ‘매우 잘한다’(3명4.2%) 였다. 무등답은 11명(15.3%)였다. 이는 입국 당시에는 한국어를 말할 수 없어도, 국내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어를 익히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재기 전남대 광주국제개발협력센터장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귀환(return diaspora) 고려인 동포들의 한민족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한국생활에 필요한 언어소통 능력은 크게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의 귀환 유대인들에 대한 히브리어 정책과 같이 고려인들도 입국과 동시에 한국어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 과정을 필수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목할만한 조사 중 하나는 '농토가 제공될 경우 농사를 지을 것이냐?' 질문에 45.8% 정도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광주·전남 지자체에서 고려인들의 ‘고향마을’ 만들기를 검토해볼만 하다 ”고 밝혔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