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13)고려인 공동체 구심점 ‘고려극장’
고려인 문화예술 상징…숱한 고난에도 정체성 유지 세계 최초 우리말 전문연극극장 1932년 9월 9일 연해주서 출발 고려인 강제이주 아픈 역사 함께 ‘이동극장’ 형태 집단농장 순회 우리 말·우리 노래·우리 춤 공연 춘향전 등 고전물로 애환 달래줘 고려인간 소식 전달 메신저 역할도 이곳 저곳 전전하다 알마티에 정착 최근 창립 90주년 기념 축하공연 출연진 ‘영원하라 고려극장’ 합창
90년 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세계 최초의 우리말 전문연극극장이 세워진다. 이 극장은 창단 이래 민족문화의 횃불을 높이 들고 줄기차게 고려인 공동체에 축제 한마당을 펼치며 기쁨과 활력을 선사해왔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고려극장’이다.
고려극장은 고려인 문화예술의 상징이다. 다른 고려인 강제이주라는 가혹한 역사적 시련기에도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소련 전역에 흩어진 고려인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걸출한 입담과 흥겨운 가무로 절망에 빠진 동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줌으로써 어려운 시기에 심리치료사의 역할까지 감당했다.
고려극장이 지난 10월 1일 창립 90주년 기념축하공연을 가졌다. 광주고려인마을극단 ‘1937’과 호남대학교가 공동제작한뮤직컬 ‘나는 고려인이다’의 중앙아시아 공연을 동행 취재한 남도일보는 고려극장 90주년 공연도 함께 취재했다.
◇연해주 ‘소인예술단’서 출발
1920년대 말,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이 생겨나고 사회주의가 건설되자 연해주의 한인, 즉 고려인들은 집단농장을 건설하고, 한글 신문 ‘선봉’을 발간하고, 아이들에게 한글 교육을 위한 원동고려사범대학을 만들었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발전이 있었다. 연예부, 관현악단, 노동청년극단 등이 만들어졌다. 이 예술단체는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들로 당시에 구성돼 ‘소인예술단’이라 불렸다.
소인예술단원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서 일부는 보다 전문 지식을 배우기 위해 1930년에 모스크바로 유학을 갔다. 이들 유학생들은 1932년 9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김태를 초대 극장장으로 한 ‘원동변강조선극장’이라는 이름의 고려극장이 창립되자 블라디보스토크로 되돌아와 극단에 참여했다.
이 청년들은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오는 빈 창고의 구멍 난 벽을 석탄재로 메우고 집에서 가져온 옷가지와 가재도구로 분장을 하고 무대장치를 만들어 연극을 개시함으로써 한민족 최초의 연극 역사가 자랑스러운 첫발을 내디뎠다.
◇각고의 노력으로 ‘동북선’ 무대에
각고의 노력은 1935년에 봄꽃으로 활짝 피어났다. 2~3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전문성과 짜임새를 갖춘 연극 ‘동북선’이 1935년 5월 11일에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이에 열광했다.
연이어 ‘춘향전’, ‘장한몽’, ‘올림피크’, ‘심청전’ 등이 무대에 오르면서 고려인 공연예술은 연해주 일대를 축제와 회합 한마당으로 변모시켰다.
초기에 고려극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을 두고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집단농장을 순회하는 이동극장의 형태를 띠었다. 그곳에는 무대도 없었다. 트럭 짐칸을 간이 무대로 삼아 공연했다. 그렇게 고려인들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울분을 함께했다.
◇중앙아 이주후 이곳 저곳 전전
고려극장도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의 아픈 역사를 함께 했다.
스탈린 정권이 연해주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킬 때 고려극장 단원들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대부분 옮겨갔고 일부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떠났다. 고려극장도 둘로 나뉘었다가 1942년 우슈토베로 이전한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 1950년 통합됐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해 고려인 거주 제한이 풀리자 고려극장은 1955년부터 순회공연에 나설 수 있었다. 1959년 예전 자리로 옮겨가 크질오르다 주립이 됐다가 1966년 당시 수도인 알마티로 이전하며 1968년 국립으로 승격됐다. 순회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아리랑가무단도 이때 창설됐다.
극장이름에 ‘고려’와 ‘카자흐스탄 국립’이 나란히 하고 있는 게 이채롭다. 이는 소련과 카자흐스탄이 소수민족 관리와 화합 명분을 위해 고려극장에 ‘국립’의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알마티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지금의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 건물은 2018년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제공받아 사용중이다. 2층 구조로 1층에 고려극장 역사기념관, 분장실, 의상실이 자리하고 2층에는 500석 규모의 공연장이 있다.
◇우리 고전작품 주로 올려
고려극장은 주로 우리 고전 작품들을 무대에 많이 올렸다. 주 공연 대상이 중앙아시아에 이주해와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던 고려인이었고, 그들의 향수와 애환을 달래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원들은 1년에 3~4개월 연습하고, 6~8개월은 중앙아시아의 여러 고려인 콜호즈를 정기적으로 순회공연을 실시했다.
고려극장은 순회공연을 통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고려인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고려인간 편지를 전달해주는 가 하면, 이산 가족의 생사를 알려주기도 했다. 공연은 러시아어를 모르는 고려인들과, 우리말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모든 극들이 고려말, 즉 우리말로 이뤄졌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키르기스스탄으로 이주했던 유가이 콘스탄틴(57)씨는 “고려극장이 공연하는 날은 고려인들로서는 휴일이었다. (집단) 농장일은 물론 직장까지 쉬고 공연을 보러갔다. 너무 사람이 많이 오다보니 당초 계획했던 실내 공연장 대신 야외에서 공연하곤 했다. 무대 설치때부터 어린 아이들이 몰려와 구경하거나 잔일을 거들었다”고 회상했다.
◇우리 전통 토대 문화 융복합
고려극장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공연의 형태는 세 가지였다. 연극, 노래, 무용이다. 이 형식은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멀리는 안톤 체호프부터 가깝게는 우리 사물놀이까지, 인류의 보편적 고전과 우리 민족예술을 아우른다.
지난 10월 1일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열린 고려극장 90주년 기념 축하공연은 이를 잘 보여줬다. 북춤, 연극, 발레, 강신무, 춘향전, 성악, 연극, 보컬공연 등 20개의 공연을 펼쳤다.
우리 전통 노래와 춤이 있는 가 하면, 카자흐스탄이나 러시아 노래를 들려줬다. 무용의 경우 한국, 카자흐스탄, 러시아의 특징이 융복합한 작품도 있었다. ‘90년 역사’와 ‘고려’, ‘국립’ 명성답게 가수와 무용가, 사물놀이팀 모두 빼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공연은 장르별로 진행됐지만 전체적으로 193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돼 1937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 1991년 소련 해체라는 고난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90년 동안의 고려극장의 역사를 표현했다.
알마티 현지에서 90주년 공연을 본 무용가 박선욱 전 광주여대 교수는 “무용수들의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 기품있고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무용은 물론 고전무용까지 모두 소화하는 남다른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우리 전통을 토대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문화를 접목하고 융복합한 게 인상깊었다”고 평했다.
지금까지 300여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고려극장은 연극단, 성악단, 무용단, 사물놀이팀을 두고 카자흐스탄 각 도시뿐만 아니라 독립국가연합(CIS) 순회공연과 모국인 대한민국 극단들과 교류를 해오고 있다. 특히 한민족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어 대사를 구사하고 러시아어로 동시통역하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홍범도 장군 수위로 근무
고려극장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홍범도다. 고려극장 1층에 마련된 역사기념관에는 홍범도 장군의 대형 사진과 군복이 전시돼 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운 홍범도는 고려인 강제이주로 이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정착했다. 고려극장의 크즐오르다 시절 홍범도는 고려극장의 수위로 생활했다.
고려극장 역사관에는 1932년 창단부터 지금까지 90년의 역사를 소개하는 패널이 설치돼 있다. 페널에는 고려극장 활동 사진과 신문기사 등 각종 자료가 담겨 있다. 또 초창기 배우들이 입었던 무대복(춘향전 한복)과 신발, 악기 등도 전시돼 있다. 하나같이 고려극장의 역사와 고려인의 숨결이 깃든 귀중한 유물이다.
◇‘영원하라 고려극장’ 합창
고려극장은 한반도와 전 세계를 통틀어 존재하는 한민족 공동체의 공연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단체이다. 90년 역사는 고려인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려인과 삶을 함께하면서 정체성과 전통문화를 유지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의 구심점으로 기여하고 있다. 고려인 사회에서 고려인들의 우리말과 문학, 예술을 발전시켜왔다. 우리 문화를 세계로 널리 전파시키고 있는 소중한 문화 자산인 것이다.
이런 자긍심으로 90주년 축하공연 피날레때 고려극장의 5세대, 6세대 단원들은 인민배우 김림마 선생을 비롯한 원로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고려극장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문화를 영원히 계승시켜나갈 것”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영원하라! 고려극장’을 합창했다. 이 노래는 고려인 유명 음악가인 한야곱(2021년 작고)씨가 작곡하고, 광산구 월곡고려인문화장인 김병학씨가 작사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글·사진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영원하라 고려극장
작사 김병학
작곡 한 야꼬브
1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늬를 한결같이
원동에서 중아시아 카작스탄 사할린
옛말로 노래로 춤으로 무대를 펼치고
멀고도 험한 고갯길 넘겨주던 극장아
(후렴)
빛나라 고려극장, 빛나라 고려극장
아 - - 영원하라 우리의 극장아
2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한결같이
바람을 이불 삼아 온누리를 누비며
춘향전 심청전 양반전 옛-이야기로
얽히고설킨 세상사 달래주던 극장아
3절
맑은 날도 궂은 날도 온세월 한결같이
해뜨는 한반도에서 해지는 유럽까지
무대 위 영웅들 영롱한 샛별로 떠올라
우리네 앞길 환하게 비춰주던 극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