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고려인 오자 역사는 깊어지고 미래는 밝아졌다
전쟁 이후 광주 500명 도착 월곡동 중심 7천여명 거주 역사·삶·문화도 함께 와 시민 관심·지원 속 새 출발 다양한 정착지원 활동 주목 역사마을만들기 등 자생노력 제도·체계적 지원방안 필요 “저출산 위기 극복 기회로”
문 나탈리아(42)씨는 오늘도 오전 8시에 집을 나선다. 한 달여 전 취업한 광주의 한 병원에 출근한다. 그가 일하는 병원은 러시아어를 쓰는 고려인 환자가 많이 찾는다. 문 씨는 이곳에서 통역 일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니콜라에브에서 한국 관련 회사에서 통역 업무를 한 게 도움이 됐다. 광주서도 같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전쟁으로 고향 떠나 ‘우울증’
문씨의 삶은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남편, 어머니와 함께 살던 문씨는 전쟁이 나자 눈 앞이 캄캄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 지역과 가까운 그의 마을엔 포성이 끊이지 않았다.
피난을 가야했다. 언니와 오빠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광주’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간단한 짐을 꾸려 버스와 배를 이용해 오데사에 도착했다. 꼬박 하루 걸렸다. 다시 버스로 루마니아 국경을 넘었다. 현지 한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3월에 남편, 어머니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광주에 도착해서는 식당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남편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했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전쟁 충격과 고향 생각에 2~3개월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남편과 어머니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라 어려움은 더했다.
‘전쟁이 빨리 끝나겠지’, ‘집으로 곧 돌아가겠지’라는 희망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냈다. 그런데 종전과 귀향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한국 도착 8개월째를 맞았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여전히 감감이다. 오히려 전쟁이 더 격화되는 상황이다.
◇시민 환대로 안정 찾아가
광주에 고려인 집거지가 있다는 건 천만다행이었다. 광산구 월곡동은 고려인마을로 불린다. 7천여명의 고려인이 월곡1동과 2동으로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사)고려인마을을 중심으로 상부상조하며 생활한다. 같은 말도 통하고, 일자리도 알선해준다. 한국어 교육도 하고, 먹을 것도 지원한다. 매주 화요일 오후에는 의사들이 무료로 진찰, 치료를 해준다.
3개월이 지나면서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동병상련의 고려인과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새 출발을 다짐했다. 불쑥 불쑥 집 생각이 나는 건 여전하지만 먼 고향에 있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SNS로 향수를 달랜다.
7월에 광주에 온 안 올라(36)씨도 비슷하다. 우크라이나 중부도시 크레멘추크에 살던 그는 남편도 없이 17살 아들, 9살 딸과 함께 광주에 왔다. 일터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이 운영하는 ‘가족식당’이다. 광주 고려인사회에서 성공한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안올라씨와 문나탈리아씨처럼 전쟁을 피해 광주에 온 고려인들은 차츰 낯선 이국땅에 적응해가고 있다. 85년 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내려진 그들의 선조가 토굴을 파고 살갗을 에는 시베리아 추위를 이겨낸 것처럼 광주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토굴로 버틴 조상처럼 극복
초·중·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국말을 익히면서 학업을 이어간다. 일할 능력이 된 어른들은 식당과 공장, 농촌으로 향한다. 노년층은 집에서 미취학 손자녀를 보며 함께 힘을 보탠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경기도 안산시 뗏골마을, 인천시 연수구 함박마을과 함께 국내 3대 고려인 집거지로 불린다. 광주는 고려인 정착에 필요한 사회적 네트워크(자본)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 고려인 정착을 지원하는 고려인종합지원센터와 아동돌봄센터, 청소년문화센터, 방송국이 있다. 고려인 자녀를 위한 학교(새날학교)도 운영되고 있다.
고려인진료소와 고려인법률지원단, 후원회 등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가 운영하는 지원기관도 많다. 광주의 고려인지원 시설 및 기관은 전국적으로도 모범적이다. 국내외 고려인사회에 “광주에 가면 먹고 살 수 있고, 병원에 갈 수 있다. 원하면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낼 수 있다”고 소문날 정도다.
여기에는 의로움과 인정으로 고려인을 환대하는 광주시민의 따뜻한 정서가 뒷받침되고 있다. 전쟁 난민이 된 고려인들이 조상의 땅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항공료 지원 모금 운동에 적극동참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1일까지 고려인 770여명이 항공권 지원을 받아 입국했다. 이 가운데 500명 정도가 광주에 둥지를 틀었다.
(사)고려인마을 중심으로 모금운동이 전개되자 시민과 기업, 사회단체 등이 적극 동참한 결과다. 고려인 돕기 평화걷기 행사도 열렸다. 후원물품도 답지했다. 멀리 해외서도 온정의 손을 내밀었다. 광주지역사회의 ‘인간애’가 국제 사회까지 확산됐다. 동포 귀환을 위한 민간차원의 모금운동은 광주가 유일하다.
◇국내외 고려인 중심지 역할 추진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광주와 대한민국 사회에 고려인의 존재를 재부각시켰다. 국내 거주 고려인은 10만명에 이른다. 전 세계 고려인이 55만명으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많은 고려인이 ‘조상의 땅’ 대한민국에 왔다. 고려인의 한국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고려인 입국 증가로 광주에서 추진 중인 고려인 관련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고려인마을은 2년전 개관한 ‘월곡고려인문화관’과 올해 건립된 홍범도 흉상을 토대로 ‘역사마을1번지’를 조성중이다. 고려인의 삶과 문화, 역사를 집대성해 관광객 1천만명이 방문하도록 하겠다는 사업이다.
세계음식문화의 거리 조성 계획과 광산구가 진행 중인 월곡2동 도시재생사업,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결성도 역사마을1번지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고려인의 강제 이주 삶을 담은 뮤지컬 ‘나는 고려인이다’를 고려인사회와 호남대, 광산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지역사회가 협력헤 중앙아시아 현지 무대에 올려 주목받았다. 광주가 고려인의 삶과 문화, 역사를 집대성해 보존·계승·확산하겠다는 의지를 고려인 본거지에 알린 것이다.
여기에는 행정기관인 광산구, 지역대학인 호남대 등도 함께 협력해 의미를 더했다. 고려인을 비롯한 이주민들과 공존·공생하는 방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재외동포청 신철 추진 기대
국가 차원에서도 의미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재외동포청 신설 추진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달 초 고려인을 비롯한 재외동포들의 지위 향상 및 처우 개선을 위한 컨트롤 타워로서 재외동포청 신설 추진을 공식발표했다.
재외동포청은 국내외 거주 재외동포와 관련 학자, 전문가들이 20여년전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정부조직법 개편안 국회 통과를 남겨놓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도 그동안 재외동포청 신설을 주장한만큼 통과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국내 고려인사회는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많다. 법적 지위 회복과 안정적인 정착, 사회적응 문제다. 주거와 의료, 취업, 교육, 복지, 언어, 선주민과 소통 상생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고려인 사회와 지원활동가, 시민사회 역량만으로 역부족이다. 제도적이면서 체계적인 종합지원책이 필요하다.
교육문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분야다. 부모를 따라 입국한 고려인 자녀는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학업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정규 교과수업 이후 별도로 한국어 교육을 받지만 언어 교육 특성상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한다. 부모들 역시 한국어를 모르기에 자녀들의 한국어 습득은 쉽지 않다.
남도일보와 광주광역시의회가 지난달 27일 개최한 ‘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 토론회’ 에서 주제발표를 한 김재기 전남대 교수와 토론자인 윤영 호남대 교수 등이 ‘다문화 자녀 이중언어교육’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토론회를 계기로 박미정 광주시의원이 광주시교육청과 함께 ‘다문화 자녀 이중언어교육 지원조례’ 제정 추진에 나설 예정이어서 기대를 낳고 있기도 하다.
◇이중언어교육 등 필요
고려인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선 고려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려인은 국적상 ‘외국인’ 신분이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한민족 동포다. 먹고 살기 위해 조상의 땅을 찾아왔더라도 현재 광주와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중요한 존재다.
8년간 고려인과 동거동락한 정동수 ㈜고려인력개발 대표가 남도일보·광주시의회 주최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정 대표는 “우리는 고려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만약 고려인이 광주에 오지 않았다면 하남산단과 평동산단의 공장들과 전남지역 농촌에서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고려인들은 우리가 하기 싫어한 일과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가 하기 싫어하는 일은 그들도 싫어한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힘들어도 참고 버텨낸다. 고려인들에게 잘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려인은 자신들이 태어난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의 민족들과 외모가 다르다. 그 나라에서 싸움이 발생하면 ‘너의 나라(대한민국)로 가라’고 한다. 그곳에선 다른나라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금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너의 나라(카자흐 또는 우즈벡 등)로 가라’고 하면 되겠는가. 고려인들은 우리나라를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도 아니다. 러시아나 카자흐, 우즈벡에 살고 싶어 그 나라 국민이 된 게 아니다”고 역설했다.
◇“고려인에게 고마운 마음 가져야”
정현종 시인은 작품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고 노래했다.
정 시인의 표현처럼 고려인들이 광주에 온 것은 연해주 항일 무장 독립투쟁의 역사와 한 맺힌 디아스포라 역사가 온 것이다. 그들의 삶과 문화, 예술도 같이 왔다. 고려인 아이들의 미래도 함께 왔다. 고려인이 오면서 광주의 역사는 깊어지고, 문화예술은 풍부해지며, 미래는 한층 밝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면서 위기 상황에 처했다. 고려인은 위기 극복의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 그 기회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광주와 대한민국 하늘아래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가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때야 축복으로 돌아오게 된다. 전쟁을 피해 대거 입국한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이 광주와 대한민국에 주는 메시지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