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학교를 찾아서](14)전남 무안초등학교 "과거 100년의 역사를 넘어 미래 100년을 꿈꾼다"

경술국치 5년후인 1915년 4월 개교 엄다·몽탄 등 인근 마을서 입학 줄이어 항일저항 의식 꽃 피우며 독립운동 참여 콧대높던 일본인들 향한 경고 메시지 전달 투철한 역사관 속 글로벌 인재 육성 집중 영어·중국어 등 언어교육 차별화 확대

2022-12-01     심진석 기자

 

무안초등학교가 설립된 100여년의 역사를 오롯히 지켜본 느티나무가 수호신 마냥 우뚝 서있다. /무안초등학교 제공

“동백은 엄동설한을 견뎌내며 피는 동백꽃 같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며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전남 무안군 무안읍에 위치한 100년 역사를 오롯히 머금고 있는 무안초등학교 교화인 동백의 의미를 설명한 말이다.

이 교화가 지닌 의미가 지난 100년 세월을 걸어온 무안초등학교와 묘하게도 닮은듯하다. 일제시대 비극의 역사 한가운데서 차갑디 차가운 눈을 맞아가면서도 민족의 울분과 애국심을 꽃피웠던 것 과거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비슷해서다.

어려움 딛고 피어나는 동백꽃의 모습처럼 무안초등학교는 소중한 존재인가 보다.

무안초등학교가 100여년이란 장고한 역사속에 지역민들의 배움의 터전으로 현재까지 자리하고 있다. /무안초등학교 제공

◇역사의 시작

경술국치(1910년) 치욕의 시간이 5년여가 흐른 지난 1915년 4월15일 무안초등학교는 무안공립보통학교란 이름과 함께 최초 학교 인가를 받으면서 무구한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인가를 받은 이틀 후인 4월27일 정식 개교(수업연한 4년제) 를 하며 정식 학교로서의 모습도 갖췄다.

당시 무안초등학교의 설립은 배움에 목마른 지역민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희망의 물줄기였다.

무안초등학교 개교 당시 인근 면에 학교가 일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안면은 물론 엄다, 몽탄, 청계, 현경 등 12㎞이상 떨어진 지역에 거주하던 이들까지 무안초등학교를 다닌 이유다.

무안초등학교는 1917년 3월 22일 제1회 졸업생(21명)을 배출했다. 1921년에는 6년제로 수업연한을 개편했으며, 1937년 면성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면성공립국민학교, 1950년 면성국민학교, 1957년 무안국민학교, 1996년 현 무안초등학교로 학교명을 개칭했다. 지난 1999년에는 무안북초등학교와 통합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올해 1월 11일 94명(104회)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현재까지 총1만5천317명 인재들을 육성했다.

일제시대 일본의 억압에 항거해 독립운동에 나선 무안초등학교 출신 인물들의 항의저항 발자취를 정리한 연혁. /무안초등학교 제공

◇일제를 향한 저항의식

100여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무안초등학교 역시 시련의 시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일제 치욕의 역사가 휘두른 소용돌이에 휩쓸릴수 밖에 없어서다.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당시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단순한 정복이 아닌 한반도의 민족의식과 문화를 모조리 말살시켜 일본과 하나로 통합하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정책에도 그대로 묻어나왔다.

일제는 조선교육령 제정하고 일본 군국주의 정신을 조선 학생들에게 심으려 했다. 조선말 사용을 금지시켰으며, 일본인 학생들과 차별도 극심했다.

당시 무안초등학교 학생들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그럼에도 무안초등학교는 일제치하 총칼을 앞세운 서슬퍼런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배움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되려 그러한 반발심은 애국심으로 재발현됐다. 그리고 그 불씨를 당긴것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었다.

3·1일 경성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운동은 이후 각 지방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무안초등학교 학생들에게까지 영향력이 미쳤다.

1919년 3월 20일 오후 1시 30분. 당일 학교에선 학생들의 입교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하지만 45명의 무안초등학교 학생들이 대형 종이 태극기를 가슴에서 꺼낸 뒤 만세삼창을 하기 시작했다. 선두에 있던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 앞에서, 면사무소로 다시 읍내까지 곳곳을 돌며 만세 구호를 외쳤다. 인근 주민들까지 합세해 무려 200여명으로 그 수가 늘었다.

순사 2명과 헌병 2명이 이를 제지하기 위해 왔다가 성난 민심에 놀라 달아났다. 이후 병력을 더 모은 일본 순사들과 헌병들은 현장에 모여있던 이들 중 스스로 해산해 돌아간 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체포했다. 체포된 인원 가운데 63명은 무안초등학교 재학생이거나 졸업생이었다.

일제는 나라를 위해 목소리를 낸 학생들에게 모진 처분으로 응징에 나섰다. 체포한 이들 가운데 혐의가 조금이라도 있는 학생들은 퇴학 처분했다. 졸업생들은 다른 주동자들과 향후 어울리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는 등 또 다시 있을 독립운동 의지에 제동을 걸었다.

비록 일제의 강력한 탄압으로 저항의 꽃이 잠시 저물긴 했지만 민족의 울분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콧대 높던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 충분했다.
 

지난해 열린 무안초등학교 2021 글로벌 전남 온라인 국제교류 발대식. /무안초등학교 제공

◇미래 인재 육성의 샘터

올바른 역사관을 밑거름 삼아 100여년이 넘는 세월의 뿌리를 이어가고 있는 무안초등학교는 남다른 교육 철학으로 그 뿌리를 더욱 튼튼히 다져나가고 있다.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인(仁)’의 마음을 기초 삼아 예절과 배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 배양,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대를 맞아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 커리큘럼으로 타 학교들과의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영어, 중국어 등 세계화에 반드시 필요한 언어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Phonics 활용 영단어 읽기’, ‘생활 영어 활용 지도’, ‘아침 영어 방송 적극활용’ 등 단순 암기식 영어교육이 아닌 실효성 큰 실증교육에 나서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TESOL등 관련 자격증반을 운영하는 가 하면 학급별 영어 발표 대회를 열어 목표의식까지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또 연구학교 운영과 연계한 중국어 수업 운영, 중국어 급수(1-46과)에 따른 중국어 회화 학습(초급 300단어·중급 500단어), 중국어 생활 회화 학습 등 교육 프로그램도 병행·운영한다.

이밖에도 ‘자기 주도적 학습의 실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정보 습득’, ‘정보 관련 자격증 취득’과 같은 아이들이 미래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인재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