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연재소설 ‘붉은 파도’…제8장 밤의 거리 (195회)

2022-12-15     남도일보

“재판도 없이?”

송 사장은 금시초문인 듯이 물었다.

“그렇당깨요. 검사가 파견나와서 조져대붕깨 얼척없이 더 죄질이 나쁘게 나왔다고 하능만이요. 무겁게 매겨져가지고 사람 갱신하들 못하게 맹글어놨다네요.”

“검찰이?”

그러고 보니 그녀도 된통 당한 적이 있었다. 본디 착하고 순한 품성이 좋아서 아낌없이 사랑했던 안좌도 염전의 염부 김한범씨가 억울하게 간첩 혐의를 받고 체포돼 갔을 때, 그녀가 그를 옹호하다 끌려가 똥물이 나올 때까지 얻어 맞았었다.

정봉필이 말했다.

“그렁깨 억울하지라우.”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아닌 가비지요?”

“이 학생 서울대학생이라고?”

그녀가 정봉필 옆에 서있는 남궁현일에게 눈을 주며 물었다.

“네, 상당히 머리가 좋고 되바라진 정의파지요.”

“정의파? 이 나라 지배층이 그들인데, 독재권력의 마름이자 하수인으로 지식을 더럽게 팔아먹는 집단 아냐?”

그녀는 냉소적이었다. 하긴 서울대학 나왔다는 검사 입회하에 귀싸대기를 맞고, 똥갈보면 똥갈보로 살아야지 웬 간첩의 밀대 역할을 했냐고 추궁을 받았다. 추궁 정도가 아니라 죄질이 나쁘다고 조서를 형편없이 꾸며 상부 결재를 받았다. 그의 공명심은 높아졌겠지만, 대신 그녀는 형편없는 악질 반동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송안나는 정보부나 경찰 수사팀 고문조는 무식해서 그렇다 쳐도 명색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는 검사로부터 당한 것이 억울했다. 조롱받고 모욕을 받은 것이 그지없이 마음 아팠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가 치욕스러워지는 것이다.

송안나가 싸늘한 시선으로 남궁현일을 노려보았다. 니가 지금 아쉬워서 내 앞에 왔지만, 계급이 올라가고, 출세하면 아랫사람이나 서민들을 개돼지로 볼 거 아냐? 그녀는 서울대학생이라면 일단 그렇게 적의감을 품었다. 그들의 변절 과정을 빤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울대학을 갈 실력인데도 가정 형편상 가지 못한 억울함과 반발도 섞여있었다.

“그래도 이 야그는 참합니다. 다를 것입니다.”

“참한 새끼들이 나중에 더 쉽게 변절해버린다니까. 믿었던 놈들이 그러면 배신감이 더 크잖나?”

“허긴 나도 저런 새끼들 보면 붸가 나불지요. 허벌나게 조사버리고 싶어라우.”

“내가 정봉필 부장을 신임하는 것은 의리 때문이야. 변함이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저것들은 반대야, 대개는 배운 바대로 살지 않고 이익 따라서 자기 영혼을 파는 새끼들이니까.”

남궁현일이 부인하려고 나섰지만, 함부로 나섰다간 죽도밥도 안될 것 같아서 묵묵히 서있었다.

“하제만 사장님, 남궁 군은 그럴 아그가 아닌갑습니다. 그럴 째비도 못 되고요. 접어서 생각해주십소사 부탁올립니다이.”

“그래서 무슨 부탁이라고?”

“김구택이를 빼내야 할틴디 우덜 실력으로는 힘들다는 것이지라우.”

“정 부장은 고향 사투리 좀 세탁할 수 없나?”

“알겄습니다. 사장님. 이제는 진실로 쓰지 않겠습니다.”

“그럼 됐어.”

송안나가 소파에 앉은 자리에서 미국으로 국제전화를 넣었다. 그쪽에서 금방 반응이 왔다.

“오, 숙미. 나는 미국 와서도 숙미를 잊어본 적이 없소. 반도호텔에서의 며칠 밤이 꿈만 같구려.”

“나의 타일러, 나 역시 그래요. 한데 용건이 하나 있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