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연재소설 ‘붉은 파도’…제8장 밤의 거리 (198회)

2022-12-20     남도일보

걸판지게 술과 음식이 차려지고, 취흥이 돌았다. 아가씨들과 춤과 노래를 부르던 김형욱이 갑자기 송안나를 옆방으로 불러냈다. 취한 줄 알았는데, 그런 중에도 그는 사무적인 면이 있었다.

“미국인들이 전하는 바로는 누군가를 배려해야 한다고 했는데, 누굴 말하는 것이오?”

그가 송안나를 감시하듯 바라보며 물었다. 순간 송안나는 쫄았다. 술먹고 개차반이 돼가는 것과는 판이하게 그의 태도가 돌변하자 그녀는 긴장하고 말았다. 미국인들도 그가 누구라고는 지칭하지 않았나보다. 아마도 정보요원 출신 특유의 조심성스러운 태도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대신 송안나 마담을 만나라고만 했던 것 같다.

송안나는 막상 얘기하려니 김형욱의 위압적인 태도에 압도되었고, 또 따지고 보니 용건이 너무 사적이고, 사소한 것 같다.

“어르신을 만나고 싶었을 뿐이에요. 많이 도아주세요.”

“시시하긴. 난 무슨 큰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좌우간 무슨 일이 있으면 국내 담당에게 언제든지 말해주시오. 로버트 타일러 장군으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수혜를 받았는데…”

이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파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안나는 용건을 말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 정도의 부탁은 자기 체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기왕 부탁하려면 한 구찌 큰 것을 얻어내야지… 미국인 로비스트들도 구체적인 협조 내용을 얼버무린 신중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김형욱이 일행 모두 자리에 앉도록 하고 취흥을 주도해나갔다.

“여러분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 무엇인 줄 아는가?”

“그야 개고기죠. 바께스에 담아 먹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그래, 맞다. 내 고향 황해도 신천에선 고걸 단고기라고 하지. 나는 몽둥이로 때려잡은 개를 한솥 끓여서 바께스에 담아 먹었지. 장교 시절의 일이야.”

김형욱은 월남 후 육군사관학교에 8기생으로 입학했다. 동기생이 김종필 오치성 길재호였다. 4.19가 터지자 그는 김종필, 길재호, 오치성과 함께 상급 장교들을 타도하려는 하극상 계획을 세웠다. 사전에 발각되어 영창에 갇힐 뻔했으나 장면 민주당 정권의 허술한 경계망을 뚫고 위기를 모면했다. 만약 이때 체포되었더라면 5.16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정보부장을 맡은 것은 박정희의 조카 사위인 김종필의 천거 때문이었다. 그후 그는 김종필보다 더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다. 일 처리에 과단성이 있고, 박정희의 진로에 방해가 되는 것은 언제나 그가 선두에 나서 방패막이가 되어준 것이다. 박정희의 방해물들을 물불 가리지 않고 제거해 나가니 권력 기반은 탄탄해졌다.

박정희에게는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바로 좌익 가담 경력이었다. 쿠데타 초기 미국도 그 때문에 그를 의심하고 불신했다.

박정희는 숙명적으로 좌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중형 박상희가 일제때부터 대구 경북 지역의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그 역시 영향을 받아 해방 공간에서 남로당 군사부 책임자로 암약했다.

중형 박상희가 1946년 10.1 대구 항쟁이 일어나 시위대를 이끌고 구미경찰서를 접수했을 때, 진압경찰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이 더욱 박정희의 좌악계 가담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대구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중형의 동지이자 남로당 조직부장 이재복을 비롯해 황태성, 임종업과 접선해 국방경비대 내에 좌익계 장교들을 포섭했다. 그러나 중도에 탄로가 나 체포되어 군사재판에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런 그의 좌익 경력이 1963년 대통령 선거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야당 후보 윤보선이 이 사실을 폭로해 동아일보에 그 진상이 호외로 뿌려지고, 따라서 낙선이 유력시되었다. 이때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된 김형욱의 맹활약이 펼쳐진다. 사상을 의심받은 만큼 반공을 앞세운 테러와 납치, 여론조작이 강행되었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는 10만표차로 간신히 이겼는데, 이는 두말할 것 없이 김형욱의 물불 안가리는 돌격작전으로 얻어진 결실이었다. 박정권 탄생의 주역 그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