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라도 천년사 공방-편찬위원회 측의 설명에 대한 몇 가지 다른 견해

나간채(바른역사시민연대 상임대표, 전남대 명예교수)

2023-06-14     남도일보

 

나간채 (바른역사시민연대 상임대표, 전남대 명예교수).

금년 초부터 <전라도 천년사> 편찬과 관련하여 그 내용에 대한 문제점과 비판이 시민사회에서 거세게 전개되었는데 최근에는 이에 대응하여 편찬위원회의 입장을 강변하는 사학자와 그 학술단체들의 역공세가 광범하게 펼쳐지고 있다. 사회학자로서 평생을 살았던 필자가 보기에 편찬위원회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다음 몇 가지 문제제기에 대하여 적절한 응답을 기대해 본다.

첫째로, 《전라도천년사》 문제점은 전라도를 왜의 식민지로 거듭 서술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예를 들면 “(영산강 유역이) 왜 세력일 가능성은…5세기 일본열도에서는 중국 남조에 사신을 보내는 일이 많았으므로 해로 관리를 위해 파견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전라도천년사》 4권 139쪽)”같은 서술들이다. 야마토 왜가 전라도를 지배하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5세기의 전라도에 해로 관리를 위해 일본 관료들을 파견할 수 있겠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서기 513년에 백제 무령왕이 (야마토 왜왕의 신하임을 자처하면서) 반파국이 빼앗아 간 기문 땅을 하늘(천황)의 은혜로 백제에서 돌려받게 해 달라고 주청했고, 왜왕이 은혜로운 조칙을 선포해서 백제에게 주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무령왕은 백제의 성군이자 황제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백제 무령왕 무덤의 관재는 금송(金松)으로서 제후국인 야마토 왜에서 황제국인 백제에게 바친 물건이었다. 이런 상반된 자료에 대한 편찬위원회 측의 입장은 무엇인가?

다음으로, 사회학이든 역사학이든 그 뿌리는 팩트이다. 〈전라도천년사〉는 마한이 530년까지 전라도를 지배했다고 썼다. ‘MBC 시사 온’에서 이덕일 교수가 마한이 서기 9년에 백제에 망했다는 〈삼국사기〉 기사를 제시하면서, 530년까지 존속했다는 사료가 무엇이 있는지 묻자, 〈삼국사기〉는 믿을 수 없다면서 ‘역사학자들끼리 그렇게 합의했다’고 답변했다. 필자는 물론 수많은 도민들이 이 답변에 크게 경악했음은 ‘‘MBC 시사 온’ 댓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간 자신들을 실증사학이라고 자처해왔는데, 〈삼국사기〉라는 실증은 어디가고 ‘역사학자들끼리 합의했다’는 허언으로 대신한다는 말인가? 또한 이덕일 소장은 23년 전에 전라도에 있던 정치세력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일본의 지배층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전라도천년사〉는 야마토왜에서 온 왜인들이 전라도를 지배했다고 썼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내용인데, (그나마 이덕일 교수의 주장은 23년 전에 한 것인데), 지금의 〈전라도천년사〉 문제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핵심논지를 거꾸로 왜곡해 시청자들과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것을 보고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결국 문제는 사관(史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료에 대한 판단과 선택을 결정하는 요인이 바로 연구자의 역사인식, 즉 史觀이기 때문이다. 편찬위는 “〈일본서기〉를 인용하면 다 식민사학이냐?”라고 반문하는데, 필자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에서 볼 때 편찬위는 과거 〈일본서기〉를 한국을 점령하는 정한론의 논리로 악용한 바로 그 논리를 그대로 끌어들여 전라도를 왜의 식민지로 왜곡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정한론의 논리로 악용된 〈일본서기〉는 황국사관을 정당화하고 우리나라를 고대부터 왜의 식민지로 만든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런 〈일본서기〉를 옹호하는 행태에서 매국노 이완용과 그 하수인 이병도가 씨를 뿌리고 가꾸어 오늘에 이른 식민사학의 검은 그림자를 보는 듯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일본서기>에 담겨진 한국사를 비하하고 민족을 짓밟는 허구적 내용도 함께 제시했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역사학자 이덕일은 현재 강단사학 전체와 맞서 싸우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역사학회, 한국고대사학회, 역사문제연구소, 호남사학회 등 24개 학회 명의로 낸 성명서와 고고학·역사학협의희라는 단체에서 그간 민족사학 정립에 노력해 온 광주의 이용빈 의원에게 보낸 서한을 보면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수많은 역사학 관련 학회가 발표한 성명서는 〈일본서기〉에 대한 일방적 옹호 외에 다른 논리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용빈 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47억 원의 국고를 들인 〈동북아역사지도〉가 ‘사이비역사학’의 공격에 의해 좌초되었다고 분개했다. 〈동북아역사지도〉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독도를 끝까지 삭제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어서 폐기된 것이다. 이런 지도를 옹호한다는 것은 북한강역이 중국 것이라는 동북공정을 옹호하는 것이고, 독도를 일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극우파를 옹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 나아가 사학계의 이러한 반응은 우리 역사를 스스로 왜곡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으며, <사이비역사학>의 진짜 실체가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필자는 이번 토론이 학문발전의 역사에 의미 있는 전기가 될 수 있으며, 〈전라도천년사〉토론으로 실증사학을 표방해왔던 한국 역사학계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어둠이 깊으면 그만큼 새벽이 가까워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중화사대주의에 매몰된 지난 500년 조선 역사, 20세기 이후 반세기의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역사, 그리고 1945년 이후 미국 군정기를 지나면서 형성된 사대주의, 제국주의 역사학의 고비를 넘어서, 다시 우리민족의 역사를 찾아 나서는 길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인식이다.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다시 찾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