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189]흰무늬왕불나방

장마는 끝난 것 일까?

예보는 비 온다고 하는데 비는 오지 않고 더워도 너무 덥다. 종일 가뿐 숨을 쉬며 토해내는 에어컨 냉기로 사무실 안은 시원하지만 밖은 숨이 막힌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 근무 여건은 좋다. 그러나 이런 폭염에도 밖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예전엔 이렇게 덥지 않았는데 ‘왜 가면 갈수록 더 뜨거워 지느냐’며 땀을 훔치는 현장 근로자들의 푸념이 귓가에 오래도록 남는다. 너무 아파 마지막 비명을 지르는 지구의 절규가 아닐까?

자그마한 들판을 가로질러 우뚝 솟은 고룡산 한켠으로 붉은 태양이 고개를 내민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무실 밖 유리창과 벽 등 나방들이 있을 만한 곳을 세세히 살피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지난 밤엔 어떤 녀석들이 왔을려나 궁금하다. 점흰풀명나방, 큰흰알락가지나방, 몸노랑들명나방, 타이형집명나방, 밑검은각시가지나방 등 여러종류의 나방들이 보인다. 근무하면서 좋아하는 나방들을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항상 감사할 뿐이다. 자귀나무엔 검은띠밤나방 애벌레가, 명아주에는 두점애기비단나방 애벌레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의 산들을 뒤지면 그동안 못봤던 애벌레들을 많이 찾을 수 있을텐데 덥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같다. 며칠전 게머루에 박각시 애벌레가 있어 데려와 기르고 있다. 머루박각시 애벌레로 생각했는데 줄박각시 애벌레다. 꼼꼼히 성장과정을 살피고 배설물의 크기도 사진으로 남기며 나방과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해 본다 스스로 위로를 해보기도 한다.

2024년 8월 1일, 창틀에 제법 멋진 나방 한 마리가 앉아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앞날개에 흰무늬가 많고 횡맥에만 노란 무늬가 있는 녀석, 흰무늬왕불나방이다. 머리는 노란색이며 검은색 앞날개에 흰 무늬가 많고 가운데 부분에 노란 무늬가 있어 눈에 확 들어온다. 뒷날개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는데 머리까지 이어져 노랗게 보인다. 날개길이는 70㎜정도니 꽤 큰 편이다. 흔하게 보이는 녀석으로 독자 여러분께서도 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2018년 8월 8일, 무등산 약사사에서도 흰무늬왕불나방을 만났다. 잎말이나방이나 풀명나방류 등 대부분의 나방은 사진으로 담기가 어렵다. 잎 뒷면에 앉거나 접근하면 후다닥 날아가 버리는데 흰무늬왕불나방은 별로 움직임이 없다. 한참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다.

흰무늬왕불나방의 애벌레는 어떤 모습일까?

2016년 7월 23일, 하동 화개장터 칠불사 계곡에서 흰무늬왕불나방 애벌레를 만났다. 머리와 가슴은 검은색이고 배는 갈색이다. 털도 머리와 가슴도 검은색이고 배의 것은 적갈색이다. 털받침들이 혹처럼 솟아 있고 등 양 옆으로 검은 무늬들이 마디마다 있다. 몸 색은 자랄수록 엷어져 종령 유충은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낮에는 거의 지표면 가까이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데 운이 좋았는지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흰무늬왕불나방 애벌레는 방해를 받으면 몸을 둥글게 말고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 실제 녀석을 건드리니 몸을 말고 떨어진다. 여뀌, 고마리 등 마디풀과의 식물을 먹고 사는데 줄기를 꺾어 건드리니 붙잡고 몸을 둥글게 만다. 한참을 그대로 있다. 다 자란 애벌레는 먹이 먹기를 멈추고 30일 정도 낙엽층 사이에 가만히 있다가 구멍이 숭숭한 막을 낙엽층 사이에 치고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4~5월 우화한다.

태극나방과 불나방아과에 속하는 흰무늬왕불나방, 불나방계의 왕이어서 흰무늬왕불나방일까 궁금해진다.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부나방, 어두운 시골길을 달릴 때 헤드라이트 불빛에 몸을 던지는 녀석들은 누구일까?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