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192] 머루박각시

머루 잎 한장 깨끗이 비우고 잎자루에 매달려 ‘거꾸로 보는 세상’ 박각시류, 대부분 밤에 활동 나방, 머리~배끝까지 가는 줄 날개길이 78㎜…큰편에 속해 애벌레, 2령부터 배 위 흰색줄 등 2줄 사이 ‘八자 모양’ 무늬

2024-08-25     남도일보


 

7월, 사무실 부근에 있는 개머루에서 애벌레 한 마리를 발견해 데려와 키운 적이 있다. 어린 녀석이라 머루박각시 애벌레가 아닐까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옆에 뱀눈 같은게 보인다. 기왕 데려 온 녀석이라 먹이를 주면서 계속 키웠는데 줄박각시 애벌레다. 내심 머루박각시 애벌레이길 바랬는데 아니어서 조금 섭섭했지만 그래도 잘 자라 번데기가 되고 무사히 우화했다.

날개를 편 길이가 37~143㎜로 종에 따라 차이가 큰 나방 무리가 박각시다. 우리나라에는 주홍박각시를 비롯해 58종 이상이 알려졌고, 몇몇 종은 낮에 꿀을 빨며 활발히 활동하나 등불에는 거의 날아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박각시는 밤에 활동한다. 애벌레도 꽤 커 눈에 잘 보인다. 애벌레 배 끝에는 큰 가지 모양 돌기가 있어 다른 애벌레와 구분된다. 옛날 시골 할머니들이 깨밭이나 고구마밭에서 보이는 녀석들을 깨벌레라 하는 녀석들이 박각시류 애벌레들이다.

나방에 관심을 가진 이후 시간날 때 마다 나방들을 찾아 다녔다. 혼자서도, 곤충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 하든, 매달 함께 하는 광주전남숲해설가들과의 숲기행 행사에서도 필자의 관심은 늘 나방이었다. 애벌레들이 먹는 식초를 알아야 하니 나무와 풀 그리고 꽃도 알아야 해서 그 방면으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애벌레와 먹이식물을 함께 연결해 두니 정말 좋다. 애벌레와 식초를 함께 설명해주면 다들 흡족해 한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안되니 더욱 철저히 준비하고 검증해야 함은 기본이다. 덕분에 머리를 많이 쓰니 치매 걸릴 확률은 좀 낮지 않을까?

머루박각시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8월 2일, 병풍산 임도에서다. 보통 밤에 불빛을 보고 찾아 오는데 녀석은 가만히 나뭇잎에 앉아 쉬고 있었다. 머리 뒤쪽에서 배 끝까지 황백색이며 가는 줄무늬가 있고, 앞날개 중횡선은 굵다. 날개길이는 78㎜ 정도이니 크기가 짐작될 것이다. 밤에 불을 켜고 나방을 관찰할 때 커다란 덩치로 휘젓고 다니는 녀석들중 하나다.

2016년 7월 15일, 함양 오도재에서 녀석을 다시 만났다.

오도재는 해발고도가 높고 확 트여 있어 주변의 나방들 많이 모여든다. 주차장 주변은 밤새 가로등이 켜져 있어 따로 불을 밝힐 필요도 없다. 지리산제일문과 주변을 시간대별로 다니다 보면 다양한 나방들을 만날 수 있어 자주 찾던 곳이다. 날이 밝으면 대부분의 나방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덩치가 큰 녀석들은 들고양이나 새들의 한끼 식사가 된다. 날개만 남아 있는 흔적들이 이를 말해준다. 죽어가는 생명들이 안타까워 함양군청에 민원을 넣어야하지 않겠나 했더니 야생동물전문가인 후배가 했는지 그 다음에 방문했을 땐 밤 10시 이후엔 소등이 되었다. 참 다행이다.

머루박각시 애벌레는 어떻게 생겼을까?

2018년 7월 14일, 장성 남창계곡에서 머루박각시 애벌레를 만났다. 입암산성을 지나 갓바위로 가는 숲기행에서다. 머루 잎을 깨끗이 먹고 잎자루만 남은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토실 토실하다. 머루박각시는 옅은 연두색 알을 잎에 하나씩 낳는데, 2령부터 배 윗면 양쪽에 흰색 줄이 2개 있고 그것에서 사선으로 줄들이 늘어서 있으며 등의 2줄 사이에 八자 모양의 연노란 무늬가 줄지어 있다. 2019년 8월 11일, 뱀사골에서 녀석을 다시 만났다. 숨구멍이 붉은색인 것으로 보아 완전 종령인 것 같다. 녀석은 곧 잎을 잡아 당겨 붙이고 번데기가 될 듯하다. 유충시기는 8~9월, 크기는 65㎜ 정도다. 24일 정도 지나면 우화한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머루박각시 애벌레(2019년 8월 11일, 뱀사골)
줄박각시 애벌레(2024년 7월 22일, 영인면)
머루박각시(2014년 8월 2일, 병풍산임도)
머루박각시 애벌레(2019년 8월 11일, 뱀사골)
머루박각시 애벌레(2018년 7월 14일, 남창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