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10화]천지인(天地人) 229 구미진동(口味振動)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2024-08-27     남도일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글공부는 시키지 않고 드세고 억센 궂은일이나 하는 옥동의 못 볼 것을 보면 괜스레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할 것이 심히 두려워 조대감은 부러 윤처사 집으로는 아예 근 일 년 동안이나 발걸음을 않았던 것이었다. 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도 이를 앙다물고 꾹 참고 견뎌온 조대감이었다.

"허허! 그새 옥동이 공부하러 떠난 지 일 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구나! 그동안 얼마나 이 가슴을 졸였던고……"

조대감은 혼자 말을 하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들에는 보리밭에 종다리 울고 버드나무 가지 끝 새순이 푸르게 움 돋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도 가을이면 죽어 이렇게 새봄이 오면 다시 살아온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조대감은 봄이 와서 푸르러 오는 대지를 멀리 바라보며 또 한 번의 싱그러운 봄날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삼월 삼지 날 지나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가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죽어 있던 겨울 논둑에 물이 돌아 자줏빛 앙증맞은 제비꽃이 피어나는 시절 세상은 온통 생명의 잔치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었던 조대감도 기지개를 켜고 새로 농사 준비하는 노비들을 격려(激勵)하며 진달래 피고 새가 우는 산야(山野)의 봄을 만끽(滿喫)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늘 조대감의 마음 한편에는 아들 옥동이 시퍼런 멍울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스치듯 만지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만큼 서슬 퍼렇게 아픈 자리 그것이 자식이었다. 아무리 스승이 시킨다고 하여도 나무지게를 지고 새벽 일찍 나가 석양이면 어김없이 나무를 한 짐 해오던 옥동이 과연 잘 있을까? 그러도록 일 년이 지났는데 지금껏 그 나무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해 나르고 있을까?

하늘 천(天)! 도대체 그 하늘 천자(天字) 한 글자 가르쳐 주고 하늘이 무엇이냐며 나무지게를 지고 매일 산에 올라 나무를 해오라니 도대체 그런 공부도 다 있단 말인가? 조대감은 친구 윤처사만 아니라면 크게 호통을 치며 아는 체를 하고 당장에 패대기를 치고 내버렸지 않았겠는가!

그래!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과연 옥동은 아직껏 나무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락거리고 있을까? 조대감은 불현듯 그립고도 그리운 아들 옥동이 사무치도록 그리워 황소가 쟁기질하고 논밭 가는 어느 날 문득 집안의 노비들에게 명령했다.

"여봐라! 내일은 아들 옥동을 만나러 떠날 테니 푸짐하게 음식을 장만하거라!"

아무래도 윤처사를 만나러 갈라치면 절대로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푸짐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또 곡식을 말 등위에 가득가득 싣고 가야 할 것이었다. 지난 일 년 내내 모른 체를 하였으니 그냥 갈 수는 없이 않은가! 조대감의 명령에 따라 부인과 노비들은 시장에서 갖가지 음식을 사와 지지고 볶고 삶으며 갖가지 음식들을 푸짐하게 마련하느라 집안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종일토록 구미진동(口味振動)하였던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