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10화]천지인(天地人) 230 확신추측(確信推測)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2024-08-28     남도일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다음 날 아침 일어난 조대감은 조반(朝飯)을 먹고 두 마리 말 등위에 쌀가마와 어제 만든 음식들을 가득 싣고 사내종을 앞세워 윤처사 집을 향해 출발(出發)하였다. 아마도 일 년이 지났으니 분명 아들 옥동은 서당(書堂)에서 글공부에 전념(專念)하고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를 설레는 가슴에 가득 안고 조대감은 길을 가는 것이었다. 말 등위에 앉아서 바라보는 산야(山野)는 그새 온통 푸른빛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계절은 춘삼월호시절(春三月好時節)이라더니 역시 꽃 피고 새가 우는 봄이었다. 길가로 줄줄이 늘어선 논밭에는 그새 부지런한 농부들이 나와 여기저기 논밭을 갈아엎고 있었다. 커다란 황소에 쟁기를 달아 몰고 "이랴! 이랴차! 저랴! 저랴차! 워! 워!" 하고 농부가 황소를 몰아가면 보슬보슬한 흙이 쟁기날에 갈아엎어지며 보드라운 속살이 줄지어 차례로 엎어지는 것이었다. 그 흙 속에 숨은 지렁이며 개구리가 꿈틀꿈틀 기지개를 켜며 살아나고, 그것을 잡아먹으려고 날랜 새가 날개를 파닥이며 잽싸게 달려들곤 하는 것이었다. 저렇게 황소로 쟁기질하고 또는 삽이나 쇠스랑으로 긴 밭을 갈아엎어 거기 두렁을 만들어서 봄 채소를 심거나 또 논에 도랑물을 터서 모아 가두어 써레질하여 갈아엎어서 흙을 잘게 부수어 그 진창에다 오월이면 모판에 심어 길러온 어린 모를 가져다가 모내기를 하는 것이었다.

겨우내 얼어 붙어있던 보리밭이나 마늘밭에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어 한껏 푸른 물이 올라가고 거기 하늘 위 종다리가 날아와 우는데 그새 논둑 밭둑 산길 들길 가에는 작은 산 꽃 들꽃들이 함빡 피어나 봄바람에 방긋 웃었다. 말 등위에 앉아서 파란 하늘을 멀리 바라보며 건들거리며 가는 조대감은 모처럼 봄 내음 속에 푹 빠져드는 것이었다.

아마도 분명 아들 옥동은 산에서 나무하는 일을 그만두고 이제는 서당에 앉아 글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려니 생각하니 탈 없이 지나간 그 일 년이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되는 조대감이었다. 도망 나오지만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일 년을 이렇게 견디어 내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아! 그런데 지난번에 가져간 그 음식들은 모조리 서당 아이들만 먹이고 옥동은 단 하나도 먹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겠지!’ 하고 조대감은 문득 그때 일을 떠올렸다. 제 자식 입으로 맛난 음식을 하나도 넣어주지 못했다고 사납고 냉정(冷情)하게 이번에는 아무것도 마련해 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분명 속 좁은 소인배(小人輩)나 하는 짓이라 여긴 조대감은 작년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음식을 푸짐하게 마련하였고 또 쌀가마도 더 많이 가져가도록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조치(措置)했던 조대감의 가슴 속에는 분명 이번에는 아들 옥동이 서당 가운데 앉아 의젓하게 글공부에 열중(熱中)하고 있는 그 장한 모습을 보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렴 명약관화(明若觀火) 분명 그럴 것이라고 내심(內心) 철석같이 확신추측(確信推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