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193] 먹무늬은재주나방

굵은 잎맥에 붙어 ‘연두색 망토’ 가슴에 두르고 위장술 애벌레, 나뭇가지 붙어 있으면 마치 시든 잎의 일부분처럼 보여 가슴·배다리·꼬리부분 연두색 유충길이 30㎜…벚나무가 먹이 밤나무재주나방과 생김새 비슷 나방, 은빛 도는 회백색 바탕 전연부에 자갈색·반달무늬 이름에 ‘은’ 붙여진 이유 궁금

2024-09-01     남도일보


 


한없이 계속될 것 같은 찜통더위도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보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날의 연속이었는데 새벽 공기가 상큼하다.

사무실 앞 들판엔 벌써 나락 수확을 하는 콤바인 소리가 요란하고, 새벽녘엔 자연스레 이불을 끌어당긴다. 많은 나방 애벌레들은 벌써 월동에 들어간 녀석들도 많고, 부지런히 몸통을 키워 다가올 가을, 겨울에 대비하며움직임이 부산하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있다.

벚나무다. 비슷한 나무로는 왕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가 있는데 왕벚나무는 벚나무 중에 꽃이 가장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벚나무는 버찌가 열리는 나무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진 나무다. 흔히 ‘사꾸라’라 불리는 왕벚나무는 일본의 국화지만 일본에는 자생지가 없고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 500m 산기슭이 원산인 한국 특산종이다.

장미과에 속하는 벚나무를 먹고 사는 애벌레들은 엄청 많다. 노랑쐐기나방을 비롯한 쐐기나방류, 박각시, 독나방, 잎말이나방, 재주나방 등 참나무과 다음으로 애벌레들이 좋아하는 나무다.

시기별로 활동하는 때가 다르니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벚나무에서 다양한 애벌레를 찾아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2019년 8월 11일, 뱀사골에서 밤나무재주나방을 만났다. 밤색의 줄무늬가 온몸에 있고 가슴엔 연두색 망토를 두른 듯한 녀석이다. 도감을 보면서 녀석과 비슷하게 생긴 애벌레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녀석을 만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녀석이 오늘 소개하는 먹무늬은재주나방이다. 밤나무재주나방 애벌레와 무늬 형태가 비슷해 만나면 바로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내 눈에는 띄지 않는 것일까?

배 윗면의 색상이 흑갈색이다. 나뭇가지에 붙어 있으면 몸의 무늬가 마치 잎의 일부분이 시든 것처럼 보이는 위장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가슴과 배다리 그리고 꼬리부분에 있는 연두색 무늬의 조화가 녀석을 잘 숨겨주고 있는 것 같다. 주로 잎의 주맥에 붙어서 잎 끝부터 먹어 들어간다. 8~9월에 보이는 녀석인데 유충길이는 30㎜ 정도된다.

지난달 28일 허운홍 선생과 함께 이곳 광덕산을 찾아 채집하면서 지금쯤 재주나방과 박각시 등이 왕성한 활동을 할 시기라 열심히 찾아 보자 했는데 성과는 별로였다. 사진은 허운홍 선생께서 제공해 주신 것이다.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밤나무재주나방 애벌레와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다 자란 애벌레는 흙속에 들어가 엉성한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6~9월에 우화한다.

먹무늬은재주나방은 어떻게 생겼을까? 2023년 7월 26일, 새로운 녀석이 없나 하며 사무실 유리창과 벽을 둘러 보는데 재주나방으로 보이는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앞날개는 은빛이 도는 회백색 바탕이며, 전연부에는 두 곳이 뾰족한 크고 짙은 자갈색 무늬와 반달무늬가 선명하다. 먹무늬은재주나방이다. 우연찮게 녀석을 만난 것이다.

전에 소개한 먹무늬재주나방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름에 왜 먹무늬가 들어가 있는지, 왜 ‘은’이 들어가 있는지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작년 이맘때 광덕산에서 많이 보이던 꽃술재주나방 애벌레가 올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양하게 보였던 박각시류의 애벌레들도 찾기가 힘들다. 물론 녀석들의 생존전략일지도 모르지만 지구가 변한 것 만큼은 사실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가 사라지고, 점점 뜨거워지는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일게다. 아스팔트 도로 온도와 숲에 들어섰을 때 온도를 비교해 보니 입이 절로 벌어진다. 숲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낀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먹무늬은재주나방 애벌레
먹무늬은재주나방(2023년 7월 26일, 영인면)
먹무늬은재주나방 애벌레
먹무늬은재주나방 애벌레
밤나무재주나방 애벌레(2019년 8월 11일, 뱀사골)
벚나무(2020년 3월 27일, 광주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