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10화]천지인(天地人) 237 노화창기(路花娼妓)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중년의 주인 여자가 술을 두어 잔 더 마시고는 화선을 부르러 밖으로 나갔다. 주인 여자가 밖으로 나가자 조대감은 혼자 두어 잔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화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앉아있는 조대감은 조바심이 나서 또 혼자 술잔을 연거푸 비웠다. 내키지 않는 길을 종일토록 걸어왔으니 이 밤에 반드시 화선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술을 연거푸 들이켠 조대감은 문득 소변이 마려워서 측간(廁間)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눈을 뜨고 있었다. 어둠을 헤쳐 멀리 떨어져 있는 측간을 향해 가는데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귀 가득 일렁이는 것이었다. 조대감이 측간 앞에 이르렀을 때 건너에서 여인들의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대감이 숨을 죽이고 들어보니 주인 여자와 화선이 아닌가!
"화선아! 너를 만나러 구관(舊官) 사또 나리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만나봐야 하지 않겠느냐?"
주인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버리고 갈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리고 가셨습니다. 지체 높은 양반들에게 저희 같은 것들은 그저 사랑을 빙자(憑藉)한 노리갯감이 아니었던가요? 저는 그때 이미 순정(純情)을 잃어버린 버림받은 년이 아니던가요?"
화선의 목소리였다.
"화선아! 그렇더라도 그리 생각하면 안 된다. 사내들이란 본시 그렇다 하더라도 구관 사또 나리께서는 당시 좋지 않은 일로 허겁지겁 그렇게 황급히 떠났으면서도, 네가 그리워서 다시 오신 것이 아니냐?"
"아이구! 그렇다면 이년이 시름시름 앓아누웠을 때는 아니 오시고 왜 이제야 오신 건가요? 아마도 저의 이 맨 살덩이가 그리워서 오신 호색한(好色漢)이겠지요? 양반들이란 다 그런 것! 사랑 따윈 믿으면 절대로 아니 된다는 것을 잘 아시잖아요?"
"으음! 그렇긴 하지! 그런데, 화선아! 아까 보니 구관 사또 나리께서 너에게 주려고 많은 돈을 자루에 넣어 가지고 오신 것 같더구나!"
"쳇! 돈으로 젊은 여인의 사랑을 사고, 마음을 사고, 돈에 사랑을 팔고, 이 살덩이 몸을 팔고, 이것이 노류장화(路柳墻花), 노화창기(路花娼妓)가 이년의 팔자라지만, 그런 돈 싫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이 몸은 신관 사또 나리의 수청(守廳)을 들어야 하지 않나요?"
화선이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아차! 그렇구나! 화선아! 이빨 빠진 호랑이야 안 본다고 무슨 뒤탈이 있겠느냐? 시퍼렇게 이빨을 곤두세우고 있는 호랑이가 참말로 무섭지! 구관 사또 나리께서 날을 잘못 잡아 오신 게지! 내가 적당히 잡아떼겠다! 아! 아이구!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어서 그리 가보려무나!"
주인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