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194] 흰무늬집명나방

아무리 잘 숨어도 ‘확’ 띄어…위장술 ‘빵점’ 애벌레, 선명한 얼룩말 무늬 40㎜길이에 먹이는 신갈나무 2층 집 짓지만 숨기엔 역부족 어른벌레, 대부분 밤에 활동 내·외횡선 사이 녹색 섞인 흰색

2024-09-22     남도일보

모든 동물과 곤충들은 본능적으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장을 한다. 그래야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아 생존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은신처를 잘 만들고 그 안에서 먹고 살아도 눈에 잘 보이는 녀석들이 간혹 있다. 흰무늬집명나방 애벌레도 그 중 한 녀석이다.

2024년 8월 28일, 9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덥다.

34~35도를 넘나드는 날의 연속이다. 오랜만에 허운홍 선생과 함께 천안의 광덕산을 찾았다. 광덕사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숨이 확 막힌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말이다. 선생께서 가지고 다니는 온도계를 꺼내어 온도를 측정해 보니 아스팔트가 거의 40도에 가깝다. 지구는 얼마나 더 뜨거워질까 걱정이다. 우리 세대는 살만큼 살았으니 어찌 되더라도 상관없지만 다음 세대는 어쩌란 말인가?

울창한 나무가 있는 광덕사 경내로 들어오니 수은주가 29도를 가리킨다. 우리네 인간 편하자고 계곡옆 수많은 나무들 베어내고 시작한 진입로 정비공사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작년 이맘때 이곳 광덕산에서 채집한 몇몇 종의 애벌레들이 거의 기생을 당해 우화에 실패, 다시 찾았는데 그 녀석들은 보이질 않는다.

허운홍 선생이 집에서 키우던 애벌레 몇 종을 데려와 이곳에 놓아주려는 녀석 중 한 녀석이 눈에 확 들어온다.

몸은 검은색과 노란색이 얼룩말 무늬처럼 있어서 바로 눈에 잘 띈다. 참나무 중 신갈나무를 주로 먹고 사는데 참나무류에 놓아주니 잎을 약간 잡아 당겨 실을 치고 은신처를 만들기 시작한다. 녀석은 실을 좀 빽빽하게 치고 다시 위로 좀 엉성한 실을 쳐서 2층 구조를 만든 뒤 그 사이에 숨어서 붙인 잎을 먹고 사는데 얼룩말 무늬로 인해 숨어 있어도 먹은 잎 사이로 눈에 잘 띄는 편이다.

은신처를 잘 만들어도 쉽게 눈에 띄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흰무늬집명나방 애벌레 유충길이는 40㎜정도되며 다 자란 애벌레는 흙 속에 들어가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6월 우화한다.

옛날 나무꾼들이 숲 속에서 짚신 바닥이 헤지면 신갈나무 잎을 깔았다 하여 ‘신을 간다’, ‘신에 낀다’는 뜻으로 신갈나무가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참나무 6형제’중 신갈나무는 산마루나 힘겹게 오른 정상에서 서식한다. 사람이나 나무나 악착스럽지 못하면 좋은 자리를 빼앗기기 마련이라 남은 땅은 바람 불고 메마른 산 능선과 산꼭대기밖에 없다. 떡갈나무와 같이 말이다. 도토리의 각두가 방석처럼 퍼져 있는 떡갈나무와 달리 신갈나무는 기왓장처럼 포개져 있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Pyralidae(명나방과) 집명나방아과에 속한는 나방이다. 명나방과에는 흰무늬집명나방을 비롯해 136종 이상이 알려져 있다. 어른벌레는 낮이나 해 질 녘에 활동하는 종도 있으나 대부분 밤에 활동한다.

흰무늬집명나방을 만난 것은 2014년 8월 10일 함양 오도재에서다. 지리산제일문에 설치된 조명 불빛을 보고 찾아 온 녀석이다. 별다른 특징은 없지만 어른벌레의 내횡선과 외횡선 사이는 약간 녹색이 섞인 흰색을 띠고 있다.

얼룩말 무늬로 눈에 잘 띄는 녀석이지만 지금껏 만나지 못했었는데 허운홍 선생 덕분에 흰무늬집명나방 애벌레를 만날 수 있었다. 많은 도움을 주셔서 정말 고마운 분이다. 통합본을 준비하시면서 제주도에서 1년 살기를 계획 중인데 꼭 이루어지시길 간절히 바래본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흰무늬집명나방(2014년 8월 9일, 오도재)
흰무늬집명나방(2014년 8월 10일, 오도재)
흰무늬집명나방 애벌레(2024년 8월 28일, 광덕산)
흰무늬집명나방 애벌레(2024년 8월 28일, 광덕산)
신갈나무겨울눈(2014년 3월 9일, 보성칼바위)
신갈나무(2015년 9월 12일, 거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