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10화]천지인(天地人) 244 주의주장(主義主張)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2024-09-23     남도일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자식(子息) 겉만 낳았지 속은 낳은 것 아니라는 말이 있더니, 이제 옥동은 어느새 아버지 조대감의 말보다도 자신의 주의주장(主義主張)을 내세우고 관철(貫徹)할 만큼 성장(成長)해버렸단 말인가? 스승 윤처사 밑에서 오직 배운 것이라곤 누구나 다 아는 천지인(天地人) 세 가지 글자일 뿐인 데다가 오로지 나무꾼이며 쟁기질이며 급기야는 죽은 사람을 묻어 장사(葬事)지내는 일만 하지 않았던가!

조대감은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옥동아! 이 아비는 너에게 글공부를 많이 하여,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일신(一身)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만판 누리며 편안하게 살기를 바랐단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글공부는커녕 험악하고 천하고 궂은일만 하면서 지내는 것을 보니 마음이 매우 상한 데다가 너에게 못할 일을 시키는 것 같아서 아비로서 매우 괴로웠단다. 그러나 너의 스승 윤처사는 나의 절친한 친구인데 일찍이 약속한 바를 차마 어길 수가 없어서 지금껏 참고 견뎌왔다. 그러나 이제 더는 용납할 수가 없구나! 체통(體統) 있는 사대부(士大夫) 양반가(兩班家)의 귀한 자제(子弟)가 어찌하여 죽은 송장을 장사(葬事) 지내는 일을 하냔 말이냐? 다른 사람이 보면 모두 비웃을 일이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아비 말을 듣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구나!"

조대감이 다시 한번 깊은 심정(心情)을 토로(吐露)하며 옥동을 타이르는 말을 했다.

"아버님, 아버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모두 암송통달(暗誦通達)하여 과거급제(科擧及第)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지위(地位)와 권력(權力)을 한 손에 거머쥐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마음껏 누리며 일신행복(一身幸福)하게 사는 만인(萬人)이 칭송(稱頌)하며 부러워하는 훌륭한 아들을 매양 꿈꾸셨다는 것을, 소자,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자, 이곳에서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무지게 지고 나무하며 하늘을 쳐다보고 하늘이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해 보고, 황소를 몰고 논밭 쟁기질하면서 땅에 대하여 또 골똘히 생각해 보고, 또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면서 사람이 살고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면서 문득 그 모든 것이 허망(虛妄)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조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자는 스승님과의 삼년약속(三年約束)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아버님! 불효자(不孝子)를 용서(容恕)하십시오! 소자는 지금 밖으로 나가 얼른 밥을 먹고 어제 약속한 제 나이 또래의 소년이 죽은 곳으로 가서, 장사를 지내주어야 합니다. 지금 많이 늦었습니다."

옥동이 벌떡 일어나더니 조대감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말했다.

"아버님! 편안히 돌아가십시오! 그럼, 소자, 이만 물러가옵니다!"

옥동이 방문을 열고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조대감이 옥동을 만류(挽留)하며 붙잡을 새도 없는 찰나(刹那)에 일어난 일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