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196] 대륙쐐기나방
발광하는 듯한 초록빛 애벌레…앞날개에 행운의 넘버 ‘7’ 줄무늬 애벌레, 몸 전체 연한 연두색 배 윗면 미색 줄무늬 7개 분홍등줄박각시와 비슷 졸참나무 먹이로 살아가 나방도 배 윗면에 줄무늬
갈수록 여름이 너무 덥다.
사계절 구분이 비교적 뚜렷한 우리나라의 기후도 이제는 옛말인 것 같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고 봄인가 싶으면 무덥고 습한 여름이 한반도를 지배한다. 여름 내내 계속된 열대야로 잠 못 이루던 날이 얼마던가?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다 싶었는데 벌써 새벽엔 오싹한 한기가 느껴진다. 채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겨울은 저만치 와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전문가들이 경고해왔음에도 대처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지난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워 주변의 산을 거의 찾지 못했다. 실제 숲을 뒤져봐도 애벌레 보기가 힘들었던 것도 이유 중의 하나 였지만 말이다.
꽤 오랜만에 허운홍 선생과 천안의 광덕산을 가기로 약속한다. 일정을 조정하다 작년 9월초에 다녀 간 적이 있어 그것을 기준으로 해 시간을 맞춰보니 8월 28일이 좋아서 일정을 잡았다.
집에서 키우던 몇 몇 애벌레를 데려와 광덕산에 놓아 주신다 하니 기대도 되었다. 새로운 종으로 알고 데려왔는데 이미 관찰했던 녀석이라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것도 있지만 혹시 필자가 보지 못한 녀석일지 몰라 배려해 주시는 뜻이 너무 고맙다.
광덕산 초입에서 판을 벌린다. 서울에서 먼 길을 온 녀석들이지만 아직 움직임이 민첩하다. 대부분 봤던 녀석들인데 못 봤던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등줄박각시 애벌레다. 몸은 연한 연두색이고 배 윗면에 미색 줄무늬가 7개 있으며, 첫 번째 줄무늬 끝은 굵다. 분홍등줄박각시 애벌레와 생김새가 아주 비슷한데 분홍등줄박각시 애벌레는 머리가 긴 이등변삼각형 같으나 등불박각시 애벌레는 끝이 둥근 정삼각형 같아 구별 할 수 있다. 녀석은 졸참나무를 먹고 사는데 주변의 졸참나무를 찾아 놓아주고 열심히 앵글에 담았다.
참나무 6형제중 졸참나무는 졸+참나무가 합쳐진 이름으로 졸(卒)은 ‘하찮은 것’, ‘보잘 것 없는’을 뜻하고 있어 ‘작은 참나무’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졸참나무는 참나무 중에서 잎몸이 제일 작아서 ‘잎몸이 작은 참나무’로 해석할 수 있다. 낙엽수들은 가을이 오면 겨울을 대비하여 잎을 떨구는데, 졸참나무는 겨울이 되어도 잎을 떨구지 않고 새싹이 나올 때까지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생존전략의 하나로 잎을 달고 있으면 겨울눈을 보호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에서도 잎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졸참나무는 작은 잎에 잎자루가 있고 톱니가 안쪽으로 굽어 있어 다른 참나무들과 구분할 수 있으며, 열매는 길쭉한 장타원형고 각두의 인편은 삼각형 피침형이며 비늘처럼 붙어 있다. 도토리로 묵을 만들 때 졸참나무 도토리로 만든 묵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데 다른 참나무류의 것에 비해 떫은맛을 내는 타닌의 함량이 적고 열매의 속껍질이 쉽게 분리되어 묵을 만들 때 식감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가을이면 도토리 주워 가는 사람들이 많다. 동물들을 위해 남겨두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등줄박각시는 어떻게 생겼을까?
등줄박각시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7월 23일, 안동호반자연휴양림에서다. 전국숲해설가 대표 모임이 그곳에서 있었는데 그곳의 나방이 궁금해 밤에 주변을 돌아다니다 만난 것이다. 앞날개에 가로로 줄무늬가 7개 있고, 배 윗면에도 갈색 줄무늬가 있다. 작년 7월 26일,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 벽에서도 녀석을 다시 만났다. 주변 어딘가에도 분명 애벌레가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등줄박각시 애벌레도 같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