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10화]천지인(天地人) 256 몰아지경(沒我地境)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렇사옵니다. 스승님! 사람의 마음 씀과 행동에 따라 고결한 성현(聖賢)과 어리석은 소인배(小人輩)가 나누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태어나는 환경만 서로 달랐을 뿐, 사람으로 공평(公平)한 한 생명(生命)으로 다들 똑같이 태어났는데, 어찌 반상(班常)이 따로 정해져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옥동이 눈빛을 반짝이며 스승 윤처사를 바라보며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허허! 그래?……하하!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하하하하하!"
윤처사가 옥동을 바라보며 순간 환한 얼굴로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것이었다. 옥동이 항상 싸늘하고 고약하게만 자신만을 차별(差別)하며 냉대(冷待)하듯 대하던 스승 윤처사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리자 멍한 얼굴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윤처사가 하늘을 바라보고 크게 웃던 웃음을 뚝 멈추고는 옥동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으음! 그래! 옥동이 이놈이 욕심만 많은 철없는 어리석은 바보로만 보았더니, 실상은 그게 아니었구나! 생각하고 사고(思考)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나무꾼 일 년에, 쟁기질 꾼 일 년에, 장사(葬事) 지내는 일, 일 년이 좋은 약(藥)이 되었구나!"
스승 윤처사가 또 말을 잠시 뚝 끊더니 흐뭇한 눈빛으로 옥동을 바라보며 고개를 깊이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옥동아! 그간 고생(苦生) 참 많았다. 그 고생을 인내(忍耐)하지 못했다면 어찌 오늘이 있을 수 있겠느냐? 이제 오랫동안 주인 없던 우리 집 저 장서각(藏書閣)이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난 듯하구나! 저 장서각 안에 있는 서책(書冊)은 모두 너의 것이니 너 알아서 하려무나! 하하하하하하!"
그렇게 말을 하면서 장서각 문을 가로막고 우뚝 서 있던 스승 윤처사가 옥동의 어깨를 한 번 감싸 어루만져주고는 앞을 떡 열어주며 집안으로 사라져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 뒤에 대고 옥동이 두 무릎을 털썩 꿇고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스스, 스승님! 스승님!……가가가........ 감사하옵니다!"
옥동의 눈에는 어느 결 뜨거운 눈물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 장서각에 들어간 옥동은 그 안에 있는 서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이 모든 서책을 다 읽어 독파(讀破)하지 않고는 문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옥동의 가슴 속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옥동이 매일 몰아지경(沒我地境)으로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 깊이 빠져 잠자는 것도 잊고, 끼니도 잊고 몰두(沒頭)하자 스승 윤처사는 매끼 마다 집안사람을 시켜서 장서각으로 밥을 가져다주게 했다. 그렇게 어언 서너 달이 흘러 오늘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