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유럽에 부는 한국주거문화 바람② "한그루 나무 심는 것…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이자 책임"

한국 대표 정원디자이너 황지해 작가 '주목' 프랑스 꽁떼지방 롱스에 한국정원 조성 "길러주고 시야 넓혀 준 남도땅 사랑해 생태적·미학적 양심 되짚는 창작과정"

2024-10-22     서정현 기자

[기획취재] 유럽에 부는 한국주거문화 바람 
1. 프롤로그
2. "세계 금메달 작품, 광주호 생태공원에 전시" 
3. ‘유서깊은 빌라윈저에 한국정원 만든다’ : 박정욱 아스로커스 회장
4. 권위 있는 ‘프랑스명인셰프협회’ 초청된 ‘미식가’ 플랫폼 : 이정근 대표
5. ‘한국 르네상스 프로젝트’ 승인에서 무산까지
6. "라면 말고 간장 레시피 : 진정성이 통한다" 파리 현장 메시지
7. "착시의 안경을 벗어요" : 기후위기 인류 미래의 창

프랑스 롱스 한국정원 - 황지해 작가 작품 ‘뻘:어머니의 손바느질’. 전통한국정원과 다르게 일부 폐기물을 사용한 것은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사회를 상징했으며, 쓰레기가 꽃이되는 공간을 조성하여 경제성장과 자연보호가 양립 가능함을 보여준 작품이다.
영국왕립원예협회 주관 첼시 플라워쇼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고 영국국왕 찰스3세의 축하를 받는 황지해작가 /황지해 작가 제공

현대인은 콘크리트로 된 건축물 속에서 산다. 정원은 그 사람에게 ‘좋은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인데 나라마다 문화차이를 보인다. 파리와 낭트에 이어 프랑스에 세번째 한국정원이 한국문화 상징공간으로 조성됐다. 작가는 황지해 가든디자이너다. 2012년 네델란드에서 10년 주기로 열리는 세계적인 화훼박람회 ‘벤로 플로리아드’에 한국관 정원조성을 맡아 " 뻘 : 어머니의 손바느질 (Mudflat: Sewn by Mother‘s hand - Suncheon Bay)"을 설치했는데, 박람회가 끝난 이듬해 프랑스 꽁떼 지방에 위치한 롱스시에 작품을 옮겨 영구보존한 것이 롱스 한국정원이다. 작가는 세계 최고 정원 박람회인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2011년과 2012년, 2년 연속 금메달을 수상했다. 런던 미니어처 가든쇼에서 ‘독도’, 서울정원박람회에서 ‘소녀들의 기억하는 숲’(위안부정원), 국립현대미술관에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갯지렁이 다니는 길’ 등의 작품을 창작했다. 2023년 영국 왕립원예협회로부터 세번째 금메달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정원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황지해 작가를 통해 유럽 등 해외에서 한국정원을 세우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프랑스 롱스 한국정원 - 황지해 작가 작품 ‘뻘 어머니의 손바느질’. 2012년 네델란드 벤로 플로리아드에서 한국 대표정원으로 조성한 것을 이듬해 프랑스 롱스 르 소르시에 옮겨 한국정원으로 영구보존됐다. / 황지해 작가 제공
황지해작가. 2023년 첼시 플라워쇼에서 작품 ‘백만년전으로부터 날아온 편지’로 금메달을 수상한 장면 /황지해 작가 제공

 

- 세계 최고 권위의 영국왕립원예협회 주관 ‘첼시 플라워쇼’에서 2023년에도 금메달을 수상하셨습니다.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영국 국왕 찰스3세의 격찬과 축하를 받으셨는데, 첼시플라워쇼에 대해 소개해 주시고, 지금 생각되는 수상의 소감을 한 말씀 전해 주십시오.

▶"첼시 플라워쇼는 역사 전통을 자랑는 영국의 강력한 소프트 파워이자 문화적 리더십을 상징하는 국가 행사입니다. 왕실의 공식일정 중 하나로 200여년 동안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제·문화적 활동입니다. 13년 전 런던에서 전시준비할 때 일입니다. 조감도 출력하려고 인쇄소에 갔는데, 한국에서 왔다는 제게 ‘니네 나라 아직 전쟁 중이지?’라고 묻는 거예요.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분명한 어조라 당황했습니다. 첼시엔 한국과 한국정원이 무엇인지 인식이 전혀 없던 시기였습니다. 세 번의 전시를 통해 한국정원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세계 정원사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만의 고유성과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는데 우리의 정신적인 힘, 고유한 철학이 정원을 통해 견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023년 전시의 성과는 특별히 우리 산야가 가지고 있는 힘과 저력, 잠재력이 수상을 만들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저에게 익숙한 환경과 재료를 잘 전달하게 된 운 좋은 전달자라고 생각합니다."

 

- 이 플라워쇼에서 2011년 이후 세 번째 금메달로 선정돼 정원디자인계를 놀라게 하셨는데, ‘해우소’, ‘DMZ’, ‘백만년 전’ 등 각 작품에서 작가님이 추구하는 남다른 창작 요인이나 비결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남다른 창작 요인이라기 보다는 정원 디자인을 할 때만큼은 생태적 양심, 미학적 양심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나에게 각 프로젝트는 다음 세대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이자 책임있는 행동이길 바랍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늘 아래 대가 지불없이 받아온 사랑이 참 많았습니다. 사계절 변화 속에 마음껏 녹색의 자연을 누렸고 편취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식재 디자인을 통해 인간 근본의 양심을 되짚어보고 내 자신과 미래 지구와 인류의 존엄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남과 다른 게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고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오늘 충실하고 싶습니다."

 

- 해외에서 국위를 선양하고도 고향 광주에서도 활약이 크시다고 들었습니다. ‘해우소, 마음비우는 곳’, ‘고요한 시간, DMZ:금지된 정원’ 등 금메달 작품을 광주호 호수생태공원에 재현 설치하셨습니다. 광주에서 ‘뮴’이라는 단체도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을 위한 작가님의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특별히 전라도의 기후환경과 생태환경을 좋아합니다. 엄마가 해주신 전라도 김치찌개, 나물반찬을 사랑합니다. 어릴 적 환경은, 자연을 통해 좀 더 분명한 언어를 배우게 했고, 주변 산야가 저를 성장시켜 줬습니다. 남도에서 식물의 생육환경을 보고 듣고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었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남도에 평생의 터를 가지고 싶어요. 한 장소에서 하나의 나무를 매일 아침 바라볼 수 있고 하나의 꽃에게 인사를 건낼 수 있는 곳, 아침 해와 저녁 노을이 꽤 길어서 하루의 대부분을 식물과 보낼 수 있는 곳 말이죠. 그런 터 안에서 살아가며 죽기 전 단 하나의 식물이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하고 소망합니다. 저를 길러주고 창의적인 시야를 폭 넓게 가르쳐준 남도 땅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저는 장소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 현재 미국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계신 데, 작가님의 성공을 응원하는 분들게, 이번에 출품한 대회와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뉴욕 맨해튼 한국 문화원에서 보여지게 될 정원은,‘애양단’입니다. 애양단은 한국의 남쪽 땅, 남도의 별서 정원 중 하나인, 소쇄원 내에 볕이 좋은 자리에 놓여있는, 담장입니다. 한국의 남도는 예로부터 "시, 서, 화, 다, 선, 원림" 등 문화예술의 중심지이며, 민간 예술이 가장 발달된 지역입니다.‘ 애양단’을 통해 한국만의 고유한 정신문화와 자연에 대한 태도를 알리고, 현재 우리의 지성이 분절시킨 자연과의 공생관계 회복을 돕길 바라는 마음에서 디자인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뉴욕 맨해튼 중심에서 선보이는 첫 한국정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소쇄원 담장에서 뉴욕 맨해튼에 있는 문화원 담장까지의 거리가 약 11,000km입니다. 맨해튼에 심어진 인동초와 바람꽃, 넉줄고사리가 11,000km 거리의 한국과의 담장을 이어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기후가 길러낸 애양단 담장의 작은 제비꽃과 배롱나무가 피고지는 생태주기를 통해 우리 삶의 모든 근본적 물음에 대한 메시지가 되길 바랍니다."

 

- 작가님의 활약 덕분에 ‘한국정원’의 인기가 유럽을 너머 전세계에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하는 국민여러분과 가든디자인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전해 주십시오.

▶"저는 제가 소중해서 창작을 하고 꽃을 심고 나무를 심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기후환경일거에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이며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예술을 논하기보다 우리 모두를 위한 실질적인 생태관과 지구관을 바꿀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저는 특별히 애국자이거나 지구를 특별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 되어지는 건 내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내가 머물고 사는 환경이 크게 보입니다. 정원디자이너는 꽃과 나무를 심는 사람이예요. 자연이 하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기후환경과 계절의 변화에 예민한 사람,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 나보다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임을 느낀다면, 그것이 궁극에 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황작가는 미국 뉴욕 맨해튼 한국문화원에 첫 한국정원을 전시하고 있다. 그는 대륙을 넘나드는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곤경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지난 9월에 첼시플라워쇼 2025년 출품작 3차예선에 통과해 본선작으로 선정통보를 받고 기뻐했다. 한편 예산 축소로 인해 정부지원이 불가하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됐다. 빽빽한 일정, 불경기 상황 등으로 기간 내에 후원처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만약 출품 포기하는 상황이 빚어진다면, 세계경제강국 한국에 기대를 거는 국민과 한류애호 외국인에게 실망스런 소식이 될 것이다. 어떤 극적인 변화가 있어 황작가의 4번째 금메달 도전을 이끌지 궁금하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광주호 호수생태공원에 재현된 작품 ‘고요한 시간 : DMZ 금지된 정원’. DMZ는 인간 이기심이 만든 분단의 아픔과 자연 그대로의 생명순환 가치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자연 재생력이라는 정원의 본질을 가장 잘 담고 있어 작품화 했다고 한다.

[작품설명 - 고요한시간 : DMZ 금지된 정원]

2013년 한국 비무장지대 나이가 60살이 되었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아픔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DMZ라는 유일한 가치(자산)를 갖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녹색 눈처럼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덮어주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 놓은 38선을 넘어 물은 경계 없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DMZ는 DMZ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재생력, 즉 정원의 본질적인 부분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2012년 출전 당시 브리프)

황지해 작품 ‘해우소’. 2011년 영국 첼시플라워쇼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작품을 2014년에 광주호호수생태공원에 재현했다.

[작품설명 - 해우소 : 근심을 털어버리는 곳, 마음을 비우는 곳]

해우소는 한국전통 화장실이다. 우리는 먹고 싸고 버리는 행위 속에 겸손함을 배운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분뇨는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토양은 식물을 살찌우고 우리는 그 식물을 섭취한다. 이러한 순환의 관계 속에서 비움과 환원을 깨닫는다. 해우소 정원은 개념예술로써 몸을 비우고 마음을 비움으로써 스스로 자유롭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