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205]우묵날개원뿔나방
실로 만든 터널 속에 숨어 사는 너는 누구냐? 잎 한쪽 면 실로 빽빽하게 감아 머리~꼬리 연두색·옆구리 검은띠 밤·참나무류 먹이…8월 중 관찰 가능 유충 20㎜ 번데기 후 6일 지나 우화 나방 날개 갈색, 앞날개 중간 우묵 기부쪽엔 털 다발 살짝 올라와 있어
기온이 곤두박질하며 폭설이 내리더니 연일 비가 내리는, 종잡을 수 없는 겨울날씨다. 느닷없는 한밤중 비상계엄으로 온 국민을 암울하게 하더니 날씨마저 그런 것 같다. 젊은 시절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엔 완도 어느 섬에서 전투경찰로 근무중인 관계로 계엄군의 무지막지한 만행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 현장에 있었던 기동대원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그때의 아픔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데 다시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보니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래도 원고는 넘겨야 하니 자료를 뒤져본다.
묵묵히 광주시민을 품어주고 있는 무등산은 우리 모두에겐 어머니의 따스한 품속같은 산이다. 어느 때 찾아가도 다양한 애벌레들을 보여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준다. 증심사와 원효계곡은 많은 인파가 몰려 몸살을 앓고 있어 다양한 탐방로의 분산이 시급하지만 말이다.
2018년 8월 8일, 증심사 버스 정류장에서 약사사까지 천천히 걸으며 그곳의 애벌레를 찾아 나섰다. 무등산에서 생태계가 가장 좋은 곳은 용추계곡~지장불재~규봉암 그리고 신선봉 삼거리로 가는 코스다. 다양한 식생으로 먹이가 충분하니 애벌레들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증심사에서 약사사로 이어지는 계곡도 많은 애벌레들이 모습을 보여준다.
밤나무인지 참나무류의 잎인지 기억이 가물 가물하지만 한쪽 면을 빽빽하게 실을 쳐서 터널을 만들고 들락거리면서 먹고 있는 애벌레 한 마리가 보인다. 별다른 특징은 없다. 빽빽한 실로 쳐놓은 그물 때문에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연두색인데 옆구리쪽에 희미하게나마 약간 검은색 띠가 보이긴 하다.
집에 와서 도감을 뒤져보니 우묵날개원뿔나방 애벌레다. 녀석은 큰원뿔나방과(Depressarridae)에 속하는 나방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우묵날개원뿔나방을 비롯해 26종이 알려져 있으며 미소나방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한다. 먹이식물은 밤나무, 참나무류이고 8월에 관찰이 가능하다. 유충길이는 20㎜정도로 크지 않다. 실로 만든 터널을 들락거리며 살던 녀석은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는 처음에는 녹색이나 하루가 지나면 갈색으로 변하고 6일이 지나면 우화한다.
우묵날개원뿔나방은 어떻게 생겼을까?
2020년 8월 24일, 광주천 상류인 용산교에서 우묵날개원뿔나방을 만났다. 풀잎에 앉아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 카메라에 담으려면 저만치 날아간다. 다시 다가가면 또 살짝 날아간다. 할 수 없이 샬레를 꺼내 체포(?)할 수밖에 없다. 한참을 그대로 두고 있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어렵게 앵글에 담을 수 있었다. 날개는 갈색이고 앞날개의 앞부분 가운데가 우묵하고 또 기부 쪽에는 털 다발이 약간 올라와 있다. 날개길이는 15㎜ 정도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큰원뿔나방과의 나방들은 앉아 있을 때 앞날개가 배를 완전히 덮는다. 어른벌레 머리는 약간 매끈하며 더듬이는 앞날개 길이의 0.6~0.8배고 실 모양으로 단순하다. 팔자가 나방에 이끌린 이유가 바로 더듬이 때문인데 우묵날개원뿔나방의 더듬이는 약간 실망스럽다. 여러 각도에서 담아 보려 했으나 이번에는 아주 멀리 날아가 버린다. 부디 잘 살아남아 또 다른 애벌레와 어른벌레로 만나길 기대해 본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