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206]흰무늬겨울가지나방
우리는 ‘이란성쌍둥이’ 애벌레, 백록색·갈색띠무늬형 2종 백록색형, 가슴·배에 굵고 흰 줄무늬 갈색띠무늬, 마디마다 혹갈색 띠무늬 나방, 회갈색 앞날개·검은 내횡선 외횡선 반원처럼 두 곳 튀어 나와 수컷과 달리 암컷은 날개 퇴화 이름처럼 한겨울에 번데기→우화
아직도 가지고 있는 필름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다 보면 처음 디지털 카메라가 내게 왔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풍경사진에 심취해 수많은 곳을 다녀 보았고, 야생화에 꽃혀 그 아름다음에 푹 빠졌다. 똑딱이 카메라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껴 DSLR 카메라를 구입했는데 비용이 만만찮아 집사람의 호된 비난도 감수해야했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연히 접하게 된 나방의 빗살처럼 생긴 더듬이가 지금까지 나를 잡아두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나방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재가 무궁무진할 줄 알았는데 이젠 거의 밑천이 떨어져 간다. 애벌레가 있으면 어른벌레 자료가 없고, 어른벌레가 있으면 애벌레가 없다. 다 게으름 탓이리라. 좀 더 발품을 팔았어야 하는데 아쉬움만 가득 쌓여간다.
2014년 3월 11일, 아직 애벌레가 나올 시기는 아니지만 야생화가 유난히 많은 영광 불갑산을 찾았다. 노루귀, 꿩의바람, 왜현호색, 변산바람꽃 등이 봄이 왔음을 알린다. 흔하게 보이는 수검은줄점불나방 애벌레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다른 애벌레들이 있을까 더 집중해 보지만 아직은 보이질 않는다. 더 좋은 노루귀 모델을 찾아 이리 저리 헤메고 있는데 낙엽밑에 웬 나방 한 마리가 보인다. 조심스럽게 접근해 앵글에 담는다.
앞날개는 회갈색 바탕이며 검은 내횡선은 원곡석을 띠고, 외횡선은 외연을 향해 반원처럼 두 곳이 튀어 나와 있다. 어떤 녀석인지 몹시 궁금하다. 집에 와 도감을 뒤져본다.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가 없다. 미동정 폴더에 저장해 두었지만 까맣게 잊혀진 존재다.
2016년 7월, 허운홍 선생께서 나방 애벌레 도감2를 출간했는데 처음 뵙는 날 선물로 주셨다. 집에 돌아와 밤새 몇 번을 넘겨본다. 그동안 궁금했던 녀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2년여 전에 불갑산에서 본 나방이 생각나 맞춰보니 같아 보인다. 흰무늬겨울가지나방이다. 하늘하늘한 날개를 가지고 있는 수컷이다. 암컷은 날개가 퇴화해 거의 없다. 한쪽 날개 길이가 2.5㎜ 정도니 짐작이 갈 것이다. 이렇게 미동정으로 있던 녀석의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었다.
흰무늬겨울가지나방 애벌레는 어떻게 생겼을까?
2023년 4월 30일, 충북 좌구산을 찾았다. 충청 내륙지방에는 어떤 녀석들이 살고 있는지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날을 잘못 잡았는지 애벌레 구경하기가 힘들다.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오는데 애벌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연신 셔터를 누른다. 다른 나뭇잎을 보니 색깔이 다른 녀석도 함께 보인다. 아주 어린 녀석도 있다. 누구인지 짐작도 안 간다. 가지나방종류라는 것은 알겠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와 도감을 뒤진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비슷한 녀석들이 너무 많아서 어찌 동정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일단 미동정으로 분류해 놓는다.
동정하지 못해 궁금해 하던 녀석들 몇 종을 허운홍 선생께 보내 어떤 녀석인지 물어본다. 그중 이 녀석도 함께 보냈는데 흰무늬겨울가지나방 애벌레로 보인다 하신다. 다시 도감을 확인해 보니 녀석이 확실해 보인다. 백록색형과 갈색띠무늬형이 있는데 백록색형은 머리는 미색이고 가슴과 배 윗면 양쪽에 굵고 흰 줄무늬가 있고 그 사이에 가는 줄무늬가 있다. 갈색띠무늬형은 머리와 앞가슴은 검은색이고, 가슴과 배의 줄무늬는 백록색형과 같으나 마디마다 흑갈색 띠무늬가 있다. 운 좋게도 백록색형과 갈색띠무늬형을 같이 만난 것이다. 다 자란 애벌레는 흙속에 들어가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한겨울에 우화한다. 이렇게 또 한 종을 애벌레와 어른벌레를 짝지어 준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