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의 서치라이트]"응답하라"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2025-02-04     신건호 기자
신건호 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한 끼라도 먹고 힘냈으면 좋겠어요." 수백 명의 아침밥을 준비하면서 혼잣말처럼 건넨 봉사자의 말은 간절함이 담긴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을사년 새 아침 ‘솟아오른 햇살’ 사이로 따뜻한 인간미(人間味)가 무안공항의 무거운 침묵을 거둬내고 있었다.

밥통을 열어 밥을 담은 손, 모락모락 피어나는 반찬 냄새로 새벽을 여는 봉사자들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나를 태워 남을 따뜻하게 하는 연탄불 같은 사람들, 이런 모습을 목격하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저희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손짓으로 말씀해 주세요." 이 글을 써 놓고 푸드트럭에서 내민 것은 커피와 유자차, 생강차였다. 푸드트럭이 생계 수단인 이 청각장애인 부부는 "유족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드리고 싶어 무안을 찾았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손수건 600장을 들고 무안공항에 도착한 이웃도, 미국 시애틀에서 온 교포 부부도 물건을 나르고 청소를 담당했다. 전국에서 한의사, 의사도 연차를 내고 달려왔고 제주의 영농조합법인은 감귤을, 경기 광명의 빵집은 수십 박스의 빵을 보내왔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따스함의 릴레이였다.

탄핵 집회에서도 따뜻한 사람 냄새가 추위를 녹였다. 손난로와 커피, 어묵에서 나온 온기가 거리에 나선 시민들을 파고들었다.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이 선결제로 나타났고 그 결과는 나눔을 통한 무한 신뢰, 공동체적 가치의 실현과 함께 ‘아름다운 인간미’의 전파로 이어졌다.

마음을 이어 연대의 힘을 모으는 사람들, 국민 모두를 치유의 길로 이끄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인간미, 봉사의 마음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이 아닌가 싶다. 배려와 나눔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기본 틀이기도 하다. 그래서 촛불과 같은 자기희생은 인간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이기도 하고 인간의 가치를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묶어내는 역할을 한다.

‘원래 모습’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에서 나왔다. 이는 "현상 세계 밖의 세상이며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이라고 한다. 이데아는 원래 인간이 있던 곳인데, 플라톤은 "인간이 현상 세계로 오면서 이데아를 기억해 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현상 세계에서 누군가를 돕는 것은 "원래 인간의 모습을 찾으려는 본능에서 출발하고, 이의 실천은 인간미의 승화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인간세계에서의 봉사와 희생이란 ‘개별’ 존재를 넘어 ‘우리’라는 집단을 만들고 원래 존재하는 세상인 이데아를 향한 귀소본능(歸巢本能)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지금과 같은 ‘갈등이 난무하는 세계’가 아닌 ‘그 이전의 세계’ 말하자면 서로를 위한 상생(相生)의 세계가 "본디 인간의 세상"이라는 이야기다.

‘소방관’영화에서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라는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몸을 바친다. 그 바탕에는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이 배어있고 상생을 위한 민본사상(民本思想)이 깔려있다. 따라서 자기희생이 없는 삶, 극단(極端)에 치우쳐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행위는 ‘선한 영향력’도 ‘인간미의 본질’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 ‘인간의 본질’을 망가뜨리는 원인은 뭘까! 그건 외골수적 사고를 가진 리더의 불통과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선동(煽動)과 우김질로 자극에 민감한 2030세대를 끌어들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데 앞장선다. 서부지방법원 난입 구속자 절반 이상이 2030세대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이는 우리 사회 어딘가 가스라이팅으로 곪아간다는 확증이기도 하다.

‘가스라이팅 주도’는 젊은이들의 앞날을 파멸로 이끄는 원인이기에 그 배후자들에게 메스를 가하는 것은 정상사회(正常社會)를 바라는 모두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뱃속에 고름이 들었으면 아파도 쓰려도 불구자가 되는 한이 있어도 배를 가르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지사(當然之事)라는 이야기다.

국민 저항권을 들먹인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백골단’이라는 단체를 국회로 끌어들인 국회의원, ‘의원’이 아니라 ‘요원’을 끄집어내라고 했다는 헌재에서의 주장, 언론사 단전 단수를 놓고 거짓말하는 장관, 한심함이 첨단을 달린다. 이게 ‘바이든-날리면’의 우김질 때와 같이 방관자적 태도로, 아니면 코웃음 치며 넘길 일인가! 국민을 갈라치는 이들의 눈 흘김을 보면서 ‘나라꼴이 이게 뭔가’ 싶다. 솔직히 내란 혐의자들의 오리발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들기도 한다.

‘오드리 헵번’은 "손이 두 개인 이유가 하나는 자신을 위해, 다른 하나는 남을 돕기 위해 있다"고 했다. 이제라도 속이 보이는 변명보다는 국민을 위한 진실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이 쇠파이프 들고 "판사 어디 있냐"며 법원을 뒤진 무법천지의 나라, 기자를 구타한 ‘후진국 대열’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개혁이 시급하다. 그래서 묻는다. 우두머리부터 "응답하라"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저의가 뭔가?" 힘든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이유를 묻고 있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봉사자들의 따뜻함을 떠올리며 안도현 님의 시를 통해 또다시 묻는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