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데스크 시각]불면의 밤
정세영(남도일보 교육문화체육부장)
이글거리는 태양,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해 5월. 이팝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릴 때 난생 처음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찰나의 부주의함이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이어졌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병상 생활을 마감하는 데 걸린 시간은 7개월. 환자복을 입고 3계절의 변화를 맞았다.
나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그렇게 시작됐다. 단지 넘어져 무릎이 골절됐을 뿐인데, 그렇게 일상의 모든 게 달라졌다. 대수롭지 않은 약간의 해프닝으로 치부했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면 퇴원하고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은 무색했다. 생각보다 회복 속도는 느렸고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재활은 태어나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딘 회복 상태에 불안감은 커져 갔다. TV에 나오는 홈쇼핑 해외여행 상품 소개를 보며 내가 과연 저 곳을 걸어서 갈 수 있는 날이 올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불 꺼진 어두컴컴한 병실에서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고 곱씹었다. 극도의 우울함이 찾아왔고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불면의 밤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었던 5천 40시간. 병원에서의 나날들은 의도치 않게 인생의 변환점을 던져줬다. 생각지도 못한 이들의 친절과 위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주는 서운함. 관계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평범함이 지닌 가치, 처음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갈망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 모든 희망과 절망은 사람에게서, 마음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다 보니 어느덧 사회로의 ‘복귀’가 다가왔다. 일상으로의 회복을 준비하던 즈음, 나의 불면과 불안은 전염병처럼 다른 이들에게 전파됐다.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12월 3일 밤 10시 30분.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또다시 잠 못 드는 밤이 찾아왔다.
핏빛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무색한 명령. 극도의 공포가 컴컴한 어둠 속으로 퍼져나갔다. 계엄령 해제까지 걸린 시간은 6시간.
비극적 역사로 기록될 그 순간 속에서도 역시 절망과 희망은 사람에게 나왔다. 계엄을 실행한 이들과 계엄을 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의 용기와 연대. 짧으면서도 길었던 그 시간을 온 국민이 뜬 눈으로 지새웠다.
과거의 5·18이 현재의 우리를 살렸고 그 잔인한 학습효과가 계엄령을 해제하며 최악의 정국 혼란은 막았다.
안도감은 잠시였다. 다시 기나긴 싸움은 시작됐고 조만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국민들의 바람은 무색했다. 분노의 사회, 분열된 진영, 갈라진 민심. 국회의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된지 석달이 흘렀지만 결론은 아직이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 선고가 늦어질수록 불안감은 커져가고 있다.
우리에게 다시 평온한 일상이 찾아올까. 눈 내리는 3월은 너무도 혹독하다.
재활과의 사투를 벌일 때 존경하는 선배가 보내줬던 묵묵하지만 따뜻한 위로의 문구가 생각난다. 기자 생활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투병하던 중 베스트셀러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작가 마가렛 미첼의 의지가 돋보이는 소설 속 문장이란다.
‘모진 운명은 그들의 목을 부러뜨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꺾어 놓지는 못했다. 그들은 우는 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리고 싸웠다’
희망의 주문을 외는 헌재의 결정이 우리를 일상으로 되돌려 주길…. 울지 마라. 결국 봄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