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의 서치라이트]"응답하라" ‘봉사’ 착각하지 마라! 대통령직은 ‘책무’다

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2025-05-06     신건호 기자
신건호 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우리는 왜 이렇게 대통령 복이 없을까! 헌정사상 2번째로 쫓겨난 대통령, 경기침체의 늪에서 대통령 부재까지 어수선한 5월을 맞았다. 12·3비상계엄으로부터 주권을 지켜낸 국민이 이젠 ‘21대 대통령’을 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렇게 2025년 5월이 우리 곁으로 왔다.

5월이 오면 80년대 영화 ‘백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영화 속 주인공이 추는 춤과 함께 흘러나온 우렁찬 노래, 42살에 요절한 저항가수 비소츠키의 ‘야생마’를 들으면서 암울했던 그 시대를 견뎌왔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 계엄을 또 겪으면서 영화 속 노래와 춤이 억압에 저항하는 인간의 몸부림이었고 이 몸부림은 "독선(獨善)이 존재하는 한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되풀이되는 억압의 역사
김민기의 ‘작은 연못’도 동시대(同時代)를 함께한 선물 같은 노래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로 시작한 이 노래는 “붕어 두 마리가 싸워 한 마리가 죽으면 남은 한 마리도 죽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죽은 붕어의 살이 썩어 오염되면 “연못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김민기의 계몽노래를 젊은 시절 결기 담아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김민기의 노래를 들어야 할 사람이 있다. 트럼프다. 그는 노래를 들으면서 ‘관세전쟁’으로 세계인이 사는 연못에 미국인만 남는다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 그렇게 되면 미국도 썩은 물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비상계엄까지 끌어들인 우리 정치도 곧 더러운 물만 남을 기세다. 정화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각성(覺醒) 없이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으니 돌아가는 건 고개만이 아니다.

대통령선거는 "중국 한나라 ‘한초삼걸’의 소하"같은 청빈하면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국태민안(國泰民安)에 헌신하는 인물을 선택하는 장(場)이어야 한다. 그런데 인물검증이 ‘짧은 선거일’에다 ‘오염된 물’이 선거판에 스며들면서 진실 된 공약보다는 후보자의 흠만 난무한다.

‘링반데롱’(Ringwanderung)이라는 용어가 있다. 등반자가 방향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이 일어나면 "목표한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하지 못한다. 같은 장소에서 원을 그리며 계속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현상, 말하자면 ‘환상방황’(環狀彷徨)이다. 우리의 정치가 이 현상을 닮았다. 대통령 선거마저 손절매된 이슈를 들먹이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링반데롱이 분명하다.

80년 군사독재정권 때도 그랬고 박근혜·이명박 때도 경험했지만 ‘최고 권력자의 구속’. 지금도 비상계엄 후유증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이른바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링반데롱의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지쳐가는 건 국민이다.

4년 후, 우리의 국채가 1천60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경악(驚愕)이다. 대선후보자의 공약이 해결 가능한 믿음으로 다가와 국민의 걱정을 걷어내야 한다. 표를 의식한 ‘식상한 공약’, ‘봉사’를 들먹이는 하나마나 한 소리로는 엄동설한(嚴冬雪寒) 비닐을 뒤집어쓰고 헌법의 가치를 지켜낸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사육사 정치는 끝내야
‘봉사’ 좋다! 그런데 ‘봉사’는 보수를 받지 않을 때 빛나고 받더라도 자신이 제공하는 가치보다 적게 받고 헌신할 때 의미를 더한다. 무안공항이나 산불 현장에서 밥을 짓는 사람들, 생명을 담보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목숨 걸고 불 속으로 뛰어든 소방관이라면 ‘봉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당선되면 거대한 권력과 2억5천만 원 안팎의 연봉을 받는 대통령직을 어떻게 ‘봉사’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언제 국민이 ‘봉사’하라고 했나? 국민은 그저 법률이 정한 대로 자신의 직분을 이행하라는 것뿐이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정치인에게 "국민을 호랑이로 알라"라는 말을 했다. 박찬욱 감독이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말한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아는 사람", 이른바 정치가 올바르지 않으면 "호랑이처럼 무서운 존재가 국민"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자신을 ‘사육사’로 착각하는 정치인이 있다. 사육사가 호랑이를 길들이듯이 국민을 그렇게 생각하는 정치, 그 오류에서 벗어나야 올바른 치국(治國)이다.

대권주자들에게 고(告)한다. 대통령이 되면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하라. ‘봉사’ 착각하지 마라.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봉사’가 아니고 자신의 ‘책무’다.

5·18이 있는 5월! 청수(淸水) 한 그릇 떠 놓고 8남매의 무탈을 손바닥이 닳도록 비는 어머니가 생각나는 달이다. 아무리 애써도 잘 풀리지 않고 나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도 어머니는 늘 "살다 보면 살아진다"고 하셨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도 귀에 박혔다. 홍수가 나면 "소(牛)는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가 살지만, 물살을 거슬러 가는 말(馬)은 죽는다"고 했다. 버텨내라는 조언이다.

이제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할 차례다. "어차피 뭐 (대통령) 5년 하나 3년 하나…"라고 말한 어처구니없는 대통령을 다시는 뽑지 않겠다는 다짐이 먼저다. 그런 뒤 링반데롱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선해야 할 일이 뭔지? 스스로 "응답하라"고 말하고 답해야 한다.

2025년 6월 3일, 대한민국의 작은 연못에 붕어가 "함께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후보, 어떠한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5·18정신을 잇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 이것이 어머니 기도에 대한 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