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9장] 영광·함평·나주·무안 동학농민군(149회)
의금부 취조관은 화가 났다. 누구나 형틀 앞에 서면 어떤 누구도 오소소 떠는데, 권풍식이 오히려 대들면서 나무란다. 취조관 역시 밀리지 않고 꾸짖었다.
"너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종자냐, 군수, 현감 등 지체있는 공직자는 양반과 상놈의 신분질서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기본이거늘, 그걸 거부한다? 너는 현감이 아니라 잡놈임에 틀림없다. 너같은 놈이 있다면 나라의 질서를 잡을 수 없는 것인즉,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라. 그런데 한번 따져보자. 그대는무지랭이 비도들의 대변자가 된다고 나서고 있다. 들리는 소문으로, 함평 벼슬아치들이 반역의 선봉에 선다는 말도 있다. 고군산열도 첨절제사 이태형이 그런 사람으로, 의심스런 인간이다. 낮에는 왕조의 무장, 밤에는 비도의 무장이라는 것이다. 그 자 역시 함평 출신이렸다?"
최조관은 여러 경로를 통해 호남 서남부 지역 동학의 동향을 꿰고 있었다. 그쪽에 반란자가 많으니 자연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지방관들이 은연중 동학에 물들거나 동조하고 있는 낌새를 보인다. 왕권을 거부하는 이런 반역은 어디서 나오는 변고인가.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도 권풍식을 뽄대있게 부숴야 한다.
"권풍식에게 곤장 백 대의 형벌을 내린다."
곤장 스무 대만 맞아도 병신이 되고 만다. 그런데 백 대 형을 받으니 살았다 할 것이 없었다. 엉덩이 살이 터져 피를 철철 흘리고, 고통을 견디다 못해 생똥을 싼다. 그런 과정에서 권풍식은 몇차례 혼절했다. 깨어나면 다시 곤장을 치는데, 치다 보면 형졸이 더 흥분하여 허리며, 허벅지며을 마구 팬다. 결국 그는 병신이 옥 밖으로 내던져졌다. 그리고 함평현감직에서 해임되었다. 동학군에게 협조했다는 생뚱맞은 혐의가 덧씌워진 형벌치고는 가혹하였다.
반면에 영광군수 민영수는 세곡창을 빼앗기고 도망을 갔으면서도 영전했다. 균전사 김창석, 안핵사 이용태와 함께 관직을 삭탈당했지만, 그는 건재한 것이다. 여흥민씨 왕후 척족이란 뒷배의 힘이었다. 그는 그후 중추원삼등의관(中樞院三等議官)에 임용되고, 왕실 비서원승(秘書院丞), 태의원소경(太醫院少卿), 비궁만장제술관(妃宮輓章製述官)에 임명되었다. 왕실 조직에도 없는 기구의 특별직에 임용된 것이다.
민영수는 사실 영광군수 이전에도 홍문관 부교리(副校理), 광양현감, 거창부사(居昌府使), 후창군수, 흥양현감(고흥), 창성부사(昌城府使)에 임명되는 등 영직을 누렸다. 특권 세력은 업무 실책과 과오, 직무태만, 불법을 저질러도 책임에서 자유로웠다. 이러니 관료사회 내부에서도 정권에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났으며, 이런 현실을 목도한 지방관들 중 분노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예로부터 정의감이 투철한 호남의 경우 그 정도가 심했으며, 그래서 동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관대하였다.
함평현아를 사실상 무혈입성한 동학농민군은 모처럼 긴장을 풀었다. 권풍식이 삭탈관직되고, 관속들 또한 몸을 숨겼으며, 수성군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밤이 되자 현아 마당에 모닥불이 피워지고, 무안의 김자문이 황소를 한 마리 끌고 왔다.
"그대들의 승전을 축하하오. 나가 몽탄 짐에서 소 한 마리 끌고 왔소. 양기를 보양시오."
그의고향 몽탄 차뫼마을은 함평현아에서 이십리 길이었다. 김자문은 농민군의 병참을 담당하고 있었다.
"쇠고기는 뿔 빼고 다 먹으니 하나도 남김없이 먹으시오."
쇠고기 안심과 등심, 갈비와 우족, 내장국까지 농민군 병사에게 분배되었다. 공삼덕의 놀이패가 마당으로 나와 풍물놀이를 시작했다. 자지러지게 넘어가는 피리 소리와 괭과리, 장구 장단에 징이 징징 울리고, 그런 사이 장정들이 마당으로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호남가 나가요."
농민군 척후장 김춘보가 앞으로 나와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그는 본시 목청이 좋았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려하고
제주 어선을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
흥양(고흥)에 돋은 해는 보성에 비쳐있고
고산(高山)의 아침 안개 영암에 둘러있다
삼태육경(三台六卿)은 순천심(順天心)이요
방백수령(方伯守令)은 진안(鎭安)이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