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 본 남도 세상8] 여름에 가고픈 섬, 흑산도(2)
목포항을 출발해 2시간 30분,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에 도착했다. 섬들을 기록해 온 사진가에게도 이곳은 여전히 특별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한가운데 우뚝 솟은 이 섬은 멀리서 보면 산이 검게 보여 ‘흑산도’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렌즈를 통해 본 진짜 모습은 시간의 지층이 켜켜이 쌓인 역사의 무대였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12굽이 길
상라산 전망대에서 드론을 띄웠다. 바람을 점검한 후 상공에서 촬영한 12굽이 길은 경이로웠다. 렌즈로 포착한 해안선의 굴곡은 거대한 용이 바다에서 꿈틀거리는 듯했다. 서쪽 대장도 너머 홍도가 아스라이 보이는 파노라마는 한려수도의 절경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전망대로 힘겹게 올라오는 버스까지도 작은 점처럼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흑산도의 전경은 인간의 발길이 닿기 힘든 원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람과 물의 조각, 지도바위
일주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각 마을의 고유한 색깔을 담았다. 비리마을의 ‘한반도 바위’는 파도와 바람이 수만 년에 걸쳐 조각한 자연의 작품이었다.
우연히도 우리나라 지형과 닮은, 이 바위 앞에서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장도의 구름 모자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며 살아 있는 조각상 같았다.
지금도 변화무쌍한 사리마을
‘기피미’라고도 부른 심리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는 이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토박이였다.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풍파를 견뎌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다령 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사리마을은 안개에 싸여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마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연속으로 촬영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이지만 매 순간 다른 표정을 짓는 섬의 변화무쌍함이 인상적이었다.
흑산도를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으로만 기록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고대 해상왕 장보고의 해양 네트워크 거점이자 수많은 지식인들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손암 정약전이 15년간 유배 생활을 하며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집필한 사촌서당에 서니 느낌이 새로웠다.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도 바다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했던 그의 학자 정신이 20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광각렌즈로 담은 바다 풍경은 그가 매일 바라봤을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손암의 형인 다산도 흑산도를 그리워하며 "산은 첩첩하고 물은 멀고 멀어라"라는 시를 남겼다. 형제의 그리움이 담긴 이 시구가 바다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듯했다.
예리에서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허비 앞에서는 오랫동안 머물렀다. 유허비 뒤 손바닥바위에는 강화도 조약을 반대하다 유배된 면암 선생이 새긴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剛山 洪武日月)’이라는 친필이 새겨져 있다. ("기자가 봉해진 땅이고 명나라 홍무 연간에 세운 조선"이라는 말로 조선이 독립국임을 가리킴)
일제강점기 국권 침탈에 저항하며 순국한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이 비석 앞에 서니 숙연해졌다. 선생은 "나라가 망하면 신하된 자 어찌 홀로 살겠는가"라며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흑산도는 이제 단순히 ‘유배의 섬’이 아니다. 젊은 여행객들이 드론으로 셀피를 찍고, SNS에 올릴 사진을 고르는 모습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자연과 인문학이 조화를 이룬 ‘K-관광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카메라와 드론이 담아낸 흑산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시간이 새긴 섬의 초상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기억의 보고다. 다음에 이 섬을 찾는 이들이 렌즈 너머의 진정한 아름다움 발견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셔터를 누른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