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 본 남도 세상 9] 여름에 가고픈 섬, 흑산도(3) - 홍도
"붉은 섬의 심장, 깃대봉에서 독립문 바위까지"
신안군 흑산면 끝자락,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고 두 시간 반. 해무를 뚫고 나아가면 모습을 드러내는 붉은 섬, 홍도(紅島). 붉은빛 해안 절벽과 어우러진 짙푸른 바다는 이국적이면서도 낯익다. 카메라 셔터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한 풍경들. 그것이 홍도가 가진 첫인상이었다.
섬의 심장부에는 해발 365m의 깃대봉이 우뚝 솟아 있는데, 해안 절경과 맞닿아 있어 홍도의 수려한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동백나무, 소사나무, 후박나무가 숲 터널을 이루는 오솔길은 걷는 재미가 있다.
홍도 1구 마을에서 약 한 시간, 2구에서는 40분 정도면 깃대봉 정상에 닿는다. 그곳에 서면 흑산도와 가거도, 만재도, 태도 등이 보인다.
그 길 어귀, 죽마을에서 깃대봉으로 오르다 보면 두 개의 매끈한 돌이 마주한 듯 놓인 청어미륵을 만난다. 미륵불의 형상은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것을 ‘남미륵’, ‘여미륵’이라 부르며 오래전부터 모셔 왔다. 한 어부가 꿈속에서 돌을 좋은 자리에 안치하라는 계시를 받고 그대로 하자, 매번 고기가 넘쳐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홍도는 걷는 섬이다. 오직 두 다리로 천천히, 섬과 대화하듯 길을 따라가야 한다. 촘촘한 붉은 바위 사이로 그려진 해안 산책로는 그림 같다. 그리고 섬을 한 바퀴 도는 유람선을 타며 홍도의 섬 비경을 마주할 수 있다. 아침에 태양이 바다에서 떠오르면서 물들인 바위의 붉은 결. 그 풍경 속에서 찍은 사진도 붉게 물들었다.
홍도 등대를 가기 위해 유람선을 타고 닿은 홍도 2구는 섬의 북쪽에 자리한 작은 어촌이다. 마을 앞에 펼쳐진 띠섬, 탑섬, 독립문 바위는 파도와 바람이 빚은 천연 조각 작품이다. 마을은 계단식 지형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붉은 지붕들이 포근한 인상을 준다.
섬 주민의 말에 따르면, 예전엔 이곳에 고기잡이배가 수평선을 메웠다고 한다. 지금은 고요하다. 낚싯대 하나만 있어도 하루가 모자란다는 강태공들, 산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도시인들, 모두 이 섬에서 자신만의 이유를 찾는다. 하늘에서 렌즈에 담은 홍도는 그렇게 고요하지만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바다는 말을 아끼고, 바람은 시를 읊는다. 사진은 그 모든 것의 번역본일 뿐이다. 다시 돌아가는 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카메라를 들었다. 담지 못한 홍도의 표정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