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얻고 또 잃고 있는가[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양재혁 독자위원(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

2025-07-10     양재혁

 

양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

한때는 긴 다큐멘터리나 뉴스 영상을 ‘끝까지 봐야 뭔가 남는다’고 생각했다. 필자 또한 유튜브를 보기 시작할 때만 해도 중간에 멈추는 법이 없었다. 도입부를 보면 궁금증이 생기고, 자연스레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끝까지 보게 되곤 했다. 영상의 전개, 맥락, 결론까지 따라가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길거리나 카페에서 젊은 세대들이 ‘짧은 영상’을 반복적으로 시청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 짧은 영상 하나에 뭘 얼마나 얻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몇 개를 보기 시작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몇 초 안에 핵심을 압축해서 전달하고, 자막과 배경음악, 편집기법까지 더해져 시선을 사로잡는 숏폼(short-form) 콘텐츠는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정보 습득 방식의 혁명’에 가까웠다.

숏폼은 영상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정교해졌고, 크리에이터들은 ‘짧을수록 강렬해야 한다’는 공식에 따라 핵심을 집약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쪼개 사는 현대인에게는 더없이 유용하다. 몇 분도 아까운 현대사회에서 10초, 30초, 1분 만에 지식과 트렌드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숏폼은 분명한 생존 도구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도 "짧은 영상(숏폼)을 자주 본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대통령조차 숏폼을 통해 여론을 살피고 국민의 감각을 읽는 시대다.

숏폼의 확산은 단순히 개인의 콘텐츠 소비 습관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여론 형성과 공적 담론의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선거 전략, 정책 홍보, 대중문화 유행까지도 숏폼 알고리즘이 결정지을 정도로 파급력이 커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스크롤을 멈추지 못한 채 짧은 영상 속에서 오늘의 정보를 얻고, 내일의 인식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유용함 속에 잠재된 위험도 직시해야 한다. 짧다는 것은 빠르다는 것이고, 빠르다는 것은 생략이 많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나 사회 현안, 역사, 교육과 같은 분야에서는 ‘맥락과 과정’이 생략될 경우 왜곡이나 단편적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짧은 영상은 ‘무엇이 일어났는가’는 알려줄 수 있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 다음은 무엇인가’를 설명하긴 어렵다.

또한 숏폼은 끊임없이 ‘다음 영상’을 유도한다. 영상 하나를 보고 나면 곧장 다음 자극적인 영상이 추천된다.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갖기보다는 끝없는 소비의 회로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는 곧 ‘주의력의 단절’이자 ‘비판적 사고의 퇴화’를 부를 수 있다. 짧고 빠른 것에 익숙해진 뇌는 긴 글이나 긴 호흡의 강의를 버거워하게 된다. "생각할 틈조차 없는 시대"라는 말은 비단 비유가 아니다.

그렇다고 숏폼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시대는 이미 그 흐름을 택했고, 거스를 수 없다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이 흐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핵심은 ‘속도’와 ‘깊이’ 사이의 균형이다. 숏폼이 흥미를 유발하고 입구 역할을 했다면, 그 뒤엔 맥락을 전달하는 롱폼 콘텐츠나 설명이 따라야 한다. ‘지식의 티저(Teaser)’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있는 학습이나 이해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5·18 민주화운동이나 기후위기 같은 복잡한 주제도 핵심을 짧게 전달하는 숏폼과 함께, 관련 강연이나 해설이 연결되는 형식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모두 이런 연계 구조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정책이나 역사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단편적 상식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진실의 층위를 보여주는 구조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짧은 콘텐츠’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결국 인간은 ‘깊이 있는 사고’를 통해 성장한다. 속도의 유혹에 빠져 ‘과정 없는 판단’이 일상이 된다면, 민주주의도, 공동체도 방향을 잃기 쉽다. 숏폼이 단절이 아니라 사유의 출발점이 되려면, 우리 모두가 한 템포 쉬어가는 감각을 되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 템포 속에서 우리는 ‘생각의 여유’를 되찾고, 다시금 길게 숨을 들이쉴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