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생이 추모 대왕께 올립니다
이연수 독자위원(전 호남대학교 교수)
대고구려를 개국(開國)하신 추모대왕(鄒牟大王)님, 저는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 때에 대막리지를 지낸 연남생입니다. 저는 당나라에 나라를 팔아 먹은 대고구려의 역신(逆臣)입니다. 개조(開祖) 추모대왕을 뵐 면목이 없지만 엎드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감히 이 글을 올립니다. 추모대왕을 한인(漢人)들은 주몽(朱蒙)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퉁구스말을 모르는 자들의 틀린 호칭이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700년 역사의 대고구려를 멸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천년 만년을 고통 받더라도 저의 죄과를 갚을 수 없는 동이 민족의 최대 반역자입니다. 저의 선친 연개소문은 "너희 형제는 물과 고기(漁水)처럼 화합하여 작위를 둘러싸고 다투지 마라. 만약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이웃 나라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당나라와의 국운을 건 대회전을 앞두고 대막리지를 승계한 제가 여러 성곽을 시찰하는 틈을 타 동생 남산, 남건이 쿠데타를 일으켜 막리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당과의 화친하여 사대(事大)하자는 화친파 귀족들의 부추김이 있었고 그들의 군사와 함께였습니다. 이때 당 태종의 책사 이정이 항복을 하면 고구려의 사직을 이어가게 하겠단 세치 혀에 속아 당에 투항하여 당군의 앞잡이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친 연개소문은 저를 당신처럼 대고구려를 감히 다른 민족이 넘보지 못할 강성한 나라로 지키길 원하셨습니다. 저의 부친 연개소문은 순노부 절대 권력자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부친은 9살 때 벌써 국선도인(조의선인)이 됐다고 하니 비범한 인물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당과 화친을 맺기를 원하는 계루부, 연나부, 관나부 귀족들은 자주파(自主派)인 저의 부친 연개소문의 대막리지 취임을 반대하였습니다. 영류왕은 수(隨)의 말기에 사로잡은 당인(唐人)들을 다 돌려보내고, 전승시설인 경관(京觀)을 허물고, 결정적으로는 당이 돌궐과 전쟁에서 승리하자 고구려의 지도(封域圖)를 갖다 바치는 굴욕적인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642년 10월 영류왕과 대신들이 한통속이 되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친 연개소문은 역으로 정변을 일으켜 화친파 대신들을 선제공격하여 모두 없애고 영류왕까지 시해하였습니다. 부친 연개소문이 왕을 시해하면서까지 극단적인 정변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는 자주파와 주화파(主和派)의 갈등이기도 했고, 동이의 동방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충정(忠精)이었던 것입니다.
추모대왕 폐하, 우리 대고구려가 어떤 나라입니까? 북방 민족들이 말을 몰아 중원을 침탈하지만 불과 2,30년 이면 망하여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고 한때 중원을 정벌하여도 한의 풍습에 동화되기를 반복했지만, 우리 대고구려는 그들과 싸워 물리쳐 700년 동안 사직을 지켜 온 근본과 뿌리가 있는 천자국 아닙니까?
주나라의 전통을 잇는다는 하화족의 세상을 막아내며, 단군조선 은나라 부여를 계승하여 동이, 예맥족의 정신과 풍속을 이어왔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의 여정(呂政)은 스스로 최초의 황제임을 칭해 시황제(始皇帝)라 했지만, 황제 즉위시 법도와 절차를 모른다고 신하들이 말하자 상국(上國·당시 고조선)에서 배워오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고조선은 20여개가 넘는 거수국(후국)을 거느린 거대한 황제국이었으니까요.
추모대왕 폐하, 저들은 우리 강역을 빼앗아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나의 속민들을 수천리 먼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있으니 아 정녕 저는 천만번 사지가 찟겨 죽어도 마땅합니다. 현토군공으로 임명하여 유민을 다스리라고 하였으나 이미 30만 이상의 고구려 유민들이 변방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저는 이제 제 몸을 불살라 이 치욕스런 삶을 마감하려 합니다. 제가 이 글을 국조 추모대왕께 올리는 것은 저의 마지막 바람이 있어서 입니다. 우리 대고구려가 중원을 호령하고 동아시아의 황제국이었음을 후세 사가(史家)들이 기록하길 바라서 입니다. 저 간악한 한족(漢族)들은 우리 대고구려의 영광의 흔적을 지우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漢의 춘추필법은 항상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패전한 기록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대왕이시어 대고구려를 건국한 그 웅혼한 기상으로 혼백이라도 당신이 세운 대고구려의 마지막 영백(影魄)을 지켜 주시옵소서. 679년 동지달 유주 안동도호부에서 逆臣 연남생 拜
※이 글은 픽션 형식을 빌렸지만 사료에 근거해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