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여름산 - 양성우

2025-09-07     정훈탁
게티이미지뱅크

 

여름산
         양성우

이 산에는 산비둘기 날고
저 산에는 뻐꾸기 운다.
뭇으로 쏟아지는 뙤약별 스며드는
숨 그늘을 따라
내 가슴은 초록으로 가득히 물들었으니,
혼자라도 나는 외롭지 않구나.
땅 위의 모든 것이 우연이면 어떠랴.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
여울 물소리를 들으며
이미 사라져간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유난히 넉넉한
여름 산골짜기에서,
하늘을 가리우는 수천 수만의 잎사귀들이
겨울을 미리 염려하지 않듯이
나에게는 오늘이 있을 뿐이다.

 

덥다. 연일 삼십도가 넘는다. 그래도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가면 뙤약볕은 멀어지고, 시원한 바람과 계곡 물소리가 크게 다가온다. 숲길을 따라 깊이 들어갈수록 인적은 드물고, 아름드리 나무의 초록 잎사귀가 하늘을 가려 혼자임을 자각한다. 순간 나도 짙은 초록으로 물들며, 바람소리도 물소리도 새소리도 바로 옆으로 다가와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실은 혼자가 아닌데 외로울 때가 있다. 여럿 속에서 고독할 때가 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불안할 때가 있다. 지금은 아닌데 다가올 걱정으로 가득할 때가 있다. 영감을 주는 시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늘 많은 숲길을 걷는다. 근처에 절이 있으면 더 좋다.

지금 무성한 초록 잎사귀들이 앙상한 겨울을 미리 염려하지 않고 더욱 울창한 숲을 이루듯이, 나에게도 오늘이 있기에 내일에 대한 걱정보다는 우선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다.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