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때죽나무 - 백수인

2025-09-12     정훈탁
게티이미지뱅크

 

때죽나무
백수인

골짜기 흐르는 냇물 가를 따라 숲으로 오르고 있었어요 호랑이가 내려와 놀고 갔다는 너럭바위를 지나 옛 선비들이 돌을 베고 낮잠을 잤다는 바위에 다다르자 어디선가 소리들이 스멀스멀 몸속으로 기어들어 오는 것을 느꼈어요 골짜기 물이 돌 틈을 돌아 흐르는 소리인가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들의 발자국 소리인가 숨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작은 종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하얀 종소리였어요 상큼한 향기가 배어 있는 하얀 종들이 작은 몸을 뒤척이며 내는 가늘고 카랑한 소리였어요
그 종소리들이 물에 녹아 흐르면 먼 강에서 수많은 물고기들이 잠깐 기절하듯 잠 속에 빠진다네요 그때 물고기들이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네요 내 몸속으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종소리들이 나를 넓적한 바위 위에 앉히고 가부좌를 틀게 하네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숨을 쉬네요

 

내 인생에는 두 명의 은사님이 있다. 

한 분은 고3 때 담임선생님으로 상당한 까불이였던 나에게 대학 진학과 국어국문학과 진로를 말씀해 주신 분이다. 

또 한 분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이후 줄곧 데모만하던 나에게 교육대학원 진학을 권해 주시고, 국어교육과 조교 업무를 맡겨주신 분이다.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국어 교사 자격증을 주신 분이다. 바로 이 시를 쓰신 백수인 교수님이다. 교수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은혜라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고마우신 분이다.

때죽나무 꽃은 새하얀 작은 종을 닮았다. 여러 개의 하얀 종이 매달려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하얀 종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에 빠진다. 때죽나무 종소리를 듣고 물고기는 잠에 빠진다고 한다. 나도 하얀 종소리를 들으며 가부좌를 틀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숨을 쉬며 간절히 기도한다. 소원을 꼭 들어달라고. 올해 나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