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의 서치라이트]"응답하라" 손흥민 골이 백 마디 말보다 나은 이유!

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2025-09-30     신건호 기자
신건호 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자긍심(自矜心)은 위대한 무기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단순한 축구선수가 아니라 우리 시대 자긍심을 전파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경기장을 누비며 발끝에서 나오는 골은 짜릿함을 넘어 5천만이 함께 하는 ‘집단적 자부심’을 만든다.

그랬다. 대한민국 국민은 손흥민을 통해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다. 골을 넣고 손가락으로 만든 카메라 포즈는 팬들 사랑에 보답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국민에게 보내는 ‘자긍심’의 발로(發露)다. 힘들고 지친 삶,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정치권의 설전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경기장의 손흥민은 자신의 자긍심을 국민의 자긍심으로 바꿔놓는다.

"손흥민이 골을 넣을 때, 인생을 보상받는 기분이고, 그가 흘린 땀이 내 땀이다"는 축구팬의 열정은 곧 국민의 공감으로 이어진다. 맞다. 손흥민의 세리머니는 정치인의 백 마디 말보다 품격 있는 위안이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세대 간 단절을 없애는 매개체이기도 하고 ‘국민 통합의 상징’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같은 자긍심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 때문에 ‘삶이 수렁에 빠질 경우’가 있다. 내란 관련자의 발뺌이 그렇고, 우리 근로자를 수갑과 쇠사슬로 묶는 처사는 자긍심이 아니라 분노다. 근로자 구금(拘禁)은 우방이라는 미국이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세계경제 10위 대한민국 국민이 범죄자와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는 현실은 비참한 진실이고 미국이 보여준 행위는 범죄자 취급 그 자체다.

문제는 대응이다. 국민이 모욕을 당하면 최소한 성명이라도 나와야 한다. 그런데도 한미 균열을 더 두려워하는 듯한 태도, 관세협상을 놓고 눈치 보듯 끌려가는 ‘엉거주춤한 못난 모습’ 나만 그렇게 보일까? 국민 한 사람의 존엄이 훼손될 때, 그 나라의 자존심도 함께 깎인다는 사실, 그 같은 행위가 키운 것은 국민의 자긍심 훼손이다.

관세협상도 그렇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관세율을 15%로 낮출 터니 3천500억 달러, 우리 돈 487조 원을 한꺼번에 선불로 투자하라고 한다. 이는 올해 정부예산 673조 원의 72%가 넘는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4천100억 달러 중 3천500억 달러를 집행한다면 외환보유액의 85%가 빠져나간다. 바로 IMF위기다. 이게 자존심을 후빈 강도짓이 아니고 뭔가! 우리에게 빈 빨대만 빨라는 강요와 다를 바 없다. 트럼프 앞에서 무너지는 건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다.

트럼프 임기는 종신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우리 자동차는 347억 달러, 약 48조2천억 원이다. 미국이 투자하라고 하는 487조 원의 10분의 1이다. 이 예산을 정부가 매년 자동차 수출 기업에 지원해도 10년까지 할 수 있다. 차라리 우리 정부가 선불투자 대신, 우리 자동차 업체에 수출비용을 보존하라고 하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빈 깡통의 요란함일까!

자존감은 존중받을 때, 보통 사람이 최소한 인간적 예우를 받을 때 비로소 출발한다. 전세기 태워 석방되도록 도운 게 중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관세 낮춰 몇 푼 더 버는 게 가치(價値)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가 입은 상처, 국민이 받은 배신감을 원상회복 시켜내는 것, 그게 가치고 국가가 해야 할 책무다.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은 ‘트럼프 기분’에 좌우되는 값싼 물건, 헌신짝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밤잠을 설치더라도, 뇌에 쥐가 나도 우선해야 할 일은 국민 한 사람의 인권과 체면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 상처 난 자긍심을 복구시키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자긍심은 억압 속에서도 인간을 일어서게 만든다"고 했다. 미국이 주는 상처에도 다행히 우리는 손흥민의 땀에서 자긍심을 발화시키고 있다. 손흥민이 킥오프 52초 만에 공을 넣었을 때, 그리고 메이저리그 이정후의 공이 담장을 넘을 때, 그들이 주는 환희와 자긍심은 트럼프 정치가 주는 피로를 덜어낸다.

자부심은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며 자긍심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들려오는 우리 국민의 환호는 자부심을 더하는 영양제이고 거기서 뿜어내는 자긍심은 국민에게 주는 에너지다.

"자긍심 없는 사람은 자유를 가질 자격도 없다"고 말한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주장처럼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자긍심을 가지려면 우선 전 세계 지도자들이 공정과 존중, 그리고 헌신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몇몇 스타의 어깨 위에서만 자긍심을 찾아야 하는 ‘기복이 심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다행히 K-스포츠, K-팝, K-드라마가 대한민국의 자긍심이자 세계와 소통하는 거울이 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개개인의 자긍심을 얻고 집단적 자존감을 잉태한다. 그 자존감이 이어질 때, 세계는 대한민국을 우러러보는, 그 같은 위상(位相)은 존엄하기도 하고 존귀함이기도 하다.

자긍심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고, 구호가 아니라 헌신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리더십이다. 자긍심은 "응답하라"고 묻기 전에 답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이 준 상처를 아물게 하고, 손흥민이 준 ‘자긍심’을 지속시킬 수 있다. 그래서 비수(悲愁) 어린 심정으로 충언(忠言)한다. "자존심 회복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