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하얀 이슬 백로(白露) 맺힐 때 백로(白鷺) 떠날 채비했다
서금석 독지위원(전남대학교 사학과 강사)
한로(寒露)는 양력 10월 8일경이다. 땅바닥에 새하얗게 얼어붙어 생긴 얼음과 비스름한 결정체 서리와 다르다. 이보다 한 달 앞서 9월에 백로(白露)가 있다. 촉 빠른 여름 철새 백로(白鷺)도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아뿔싸, 기다리다 때 놓친 철새 갑작스럽게 얼어 죽을 수도 있다. 절기상 올해 백로는 9월 7일이다. 작은 물방울과 같은 이슬이 고인다고 하여 백로와 한로라 했다. 하나는 투명하고, 나중의 것은 차가운 이슬로 맺힌다. 풀잎과 나뭇잎에 이슬 짓는 시절이다. 둘 다 밤낮의 온도 차이로 생긴다. 온도 차이가 덜하면 백로이고, 좀 더 차이가 심하면 한로이다.
그러나 9월 백로가 되어도 이슬이 보이지 않는다. 10월 차가운 바람 불고 나서야 이른 아침에 이슬이 괸다. 기후 변화 탓일까, 10월 초순 한로가 돼도 대낮 날씨는 덥다. 여름 날씨가 가을 속 깊숙이 비집고 들어왔다. 가을이 여름한테 도둑맞은 셈이다.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 분다지만, 옛날 같지 않다. 밤낮의 온도 차이가 신통치 않다. 요새 이런 날씨는 10월까지 이어진다. 고개 돌리면, 여름 내내 푸릇한 가로수 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음력 명절인 추석은 양력으로 대개 9월 중에 들어있다. 참고로 2022년도 추석은 양력 9월 10일이었다. 2014년은 이보다 더 빠르다. 추석은 길쌈과 관련이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 옷감은 화폐였고, 질서였고, 신분이 되어주었다. 실을 뽑고 옷감을 짜는 길쌈은 여성들의 긴요하고 소중한 경제활동이었다. 따지자면 추석은 농산물 수확철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추수감사절이 아니다. 9월 초 추석 때, 농산물은 여물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을걷이를 준비할 때라고 봐야 한다. 똘똘 뭉쳐야 했다. 축제는 그렇게 전략적으로 생겨났다.
올 추석이 10월 6일인 이유는 윤달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올해 음력 6월 다음에 윤달 6월이 생겼다. 음력 달 13개월인 탓으로 양력 10월 추석이 되었다. 3~4년 주기로 10월 추석인 이유는 윤달 덕분이다. 요컨대, 추석은 9월 초 백로와 10월 초순 한로 사이에 들어있다. 색깔을 입히는 낭만과도 같은 계절에 이슬이 맺히는 자연의 섭리를 집어넣음으로써 추석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그래서 성묘하는 때를 맞춰 축제가 되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9월 초 백로(白露)는 입추 지나고도 한 달 후의 절기이다. 처서(處暑) 다음 시절로, 이른 가을을 알리는 신호등인 셈이다. 여기저기 코스모스 하늘거리며 이를 알린다. 갈수록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코스모스는 지역을 떠나 사람들을 모은다. 2000년대에 들어와 지방자치단체 홍보로 가을 들판에 코스모스 축제가 생겼다. 곡성 섬진강 코스모스 축제는 기차마을과 함께 다녀올 만한 곳으로 꼽힌다. 석곡 보성강(대황강) 수변길 코스모스 길도 장관이다. 광주 첨단시민의 숲에서 산동교로 이어진 영산강 수변길 코스모스 길도 찾는 이들이 많다.
강력한 쇄국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멕시코가 원산지인 코스모스를 보기 힘들었다. 코스모스는 한자 이름도 없다. 붓으로 난 치기 좋아하는 조선 선비들이 충분히 그려내 보일 법도 했지만 코스모스 그림을 찾기 힘들다. 수묵 코스모스 그림이야 조선이 근대화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코스모스 씨앗은 서양 선교사를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대학교 8월 졸업을 코스모스 졸업이라고 하고, 9월 입학을 코스모스 입학이라고 한다. 그 어원이 ‘우주’란다.
귀소 본능이 강한 여름 철새 백로가 해마다 날아온 이유는 번식하기에 우리나라가 적당했기 때문이다. 서식지로 갯벌과 습지와 저수지와 강이 잘 어울려져 있고, 개구리와 미꾸라지와 민물 새우와 가재, 잔챙이 물고기 등의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봄·여름에 번식하고 새끼를 키워내 가을철에 떠날 채비를 한다. 대신에 이때를 기점으로 서식지가 겹치는 겨울 철새 기러기가 찾아올 태세를 하고 있다.
고려사 달력편 ‘선명력’에, 백로는 (음력) 8월 절기이다. 초후에 기러기가 온다. 차후에 제비는 돌아간다. 말후에 뭇새들이 먹을 것을 저장한다. 절기 백로 즈음에 내륙에서 기러기를 보기란 쉽지 않다. 옛사람들이 이렇게 기록해 놓은 이유는 여름 철새 떠날 때와 겨울 철새 찾아올 때를 배웅과 마중으로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자연적이고 인간적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