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마한, 영산강이 품은 시간의 지층 렌즈에 담다 [앵+글로 본 남도 세상]
처가가 있는 강진을 오가는 길, 나주시 반남면 들녘에 우뚝 솟은 고분들을 지날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저 거대한 봉분 아래 누가 잠들어 있을까. 한 사람의 무덤치고는 너무 크지 않은가. 막연한 호기심은 카메라를 들게 했고, 종종 영산강 지류를 따라가는 출사는 뭔가가 기다리는 듯했다.
자미산을 중심으로 흩어진 신촌리, 덕산리, 복암리, 옥야리 고분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하다. 약 1500년 전 마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시간의 지층이다.
영산강 유역은 예로부터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다. 비옥한 평야와 바다가 만나는 이곳은 선사 시대부터 중국과 일본을 잇는 관문이었다. 그 지리적 이점 위에서 마한은 독자적 문화를 꽃피웠다. 비록 백제의 성장으로 고대 국가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6세기 중반까지 이 땅의 주인으로 존재했던 54개국의 연합체인 것이다.
#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고분군
파인더를 통해 들여다본 신촌리 고분군은 장엄했다. 자미산 자락에 약 40여 기가 펼쳐진 이 무덤들의 가장 큰 특징은 대형 독널, 옹관이다. 박물관에서 본 옹관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영산강 유역 토착 세력의 자존심이었다.
9호분 앞에 섰을 때, 나는 한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관(국보 제295호)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11기의 옹관 중 ‘을관’에서 쏟아져 나온 금동신발, 환두대도, 금반지, 유리구슬들. 5세기 중엽, 이 땅을 호령했던 지배자의 위세가 렌즈 너머로 느껴졌다.
# 반남면 덕산리 고분들
덕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미산에서 동남쪽으로 돌아 동북쪽 구릉에 자리한 14기의 고분. 그중 10호분은 독특했다. 대부분의 마한 무덤이 옹관묘인 것과 달리, 이곳은 반지하식 돌방무덤이었다. 시대의 변화가 묘제로 말하고 있었다. 토착 세력의 옹관이 소멸하고 백제 계통의 석실분이 들어서던 그 전환의 순간을..
# 영암 시종면 옥야리 고분들
영암 시종면 옥야리로 차를 몰고 간다. 영산강 본류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28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방대형, 타원형, 원형. 다양한 형태의 봉분들이 해양 교통로의 거점에서 꽃핀 독창적 문화를 증언한다. 어쩌면 마한의 전통에 백제, 가야, 중국의 요소를 수용하고 현지화한 문화의 용광로.
마한문화공원 전망대 남해망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봤다. 삼포강 물줄기, 저 멀리 월출산, 무안 몽탄, 나주 동강. 영산강이 품은 들녘 위로 54개국의 깃발이 펄럭인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다.
# 아파트형 복암리 고분
촬영의 말미는 늘 복암리에서 이뤄졌다. 영산강 지류의 낮은 구릉에 남은 4기의 봉분. 3호분은 ‘아파트형 고분’이라 불린다. 하나의 봉분 안에 7종류의 묘제가 공존한다. 옹관묘에서 석실묘까지, 시대의 변천이 한 무덤 안에 층층이 쌓여 있다.
복암리 고분전시관에서 실물 크기로 재현된 내부를 보며 생각했다. 사진은 현재를 기록하는 행위지만, 때로는 과거를 소환하는 주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산강이 흐르는 한, 이 땅의 고분들은 말할 것이다. 우리가 누구였고,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꿈꿨는지를.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렌즈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 그것이 내가 영산강 들녘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