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 기억과 유공자 서훈, 시민들이 나섰다
이념, 냉전 보훈행정에 독립운동 공적 아직도 확인 못받아 광주 9개 역사단체 ‘미서훈 독립운동가 서훈 추진위’ 발대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대한민국 3대 항일운동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속 청년학생들이 항일 의지를 행동으로 옮긴 대표적 민족운동으로 평가받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할 기반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여전히 서훈을 받지 못한 채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명예를 되찾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행동에 나선 시민들이 있다. 광주정신의 뿌리를 잇는 이들의 노력은 단순한 과거 복원이 아니라, 현재의 광주가 지켜야 할 역사적 책무로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하고도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시민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의 역사단체들은 지난달 26일 ‘광주학생독립운동 유공자 서훈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정부에 독립운동가 서훈을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추진위에는 광주고보·서중·일고총동창회,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광주학생독립운동 100주년행사준비위원회,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송홍기념사업회, ㈔김용근기념사업회, 장재성기념사업회, 남도역사연구원, ㈔인문연구원 동고송 등 9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번 추진위의 ‘서훈 투쟁’은 잊힌 독립운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정의로운 기억을 이어가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의지에서 비롯됐다.
추진위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국회 측 법률대리인으로 참여했던 김이수 조선대학교 이사장(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맡았다. 김 대표는 "서훈 투쟁은 독립운동이자, 독재의 악습을 바로잡는 민주화 투쟁"이라며 "많은 시민이 함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진위가 서훈을 요구하는 대상은 광주 3·1운동의 주역 김범수 선생, 광주학생독립운동 미서훈자 장재성 선생 등 22명, 광주고보 퇴학자 208명, 전남사회운동협의회 관련 이기홍 선생 등이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 3명은 정부의 서훈 거부로 여전히 명예가 회복되지 못한 상태다.
광주 3·1운동의 주역 김범수 선생은 일제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지만, 정부는 해방 이후 그가 ‘남로당 관련자’였다는 이유로 서훈을 거부했다. 김 선생의 사회운동 경력이 ‘이념적 결함’으로 둔갑한 것이다.
유족과 역사학자들은 해당 사유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수차례 입증했으며, 국가보훈부 관계자 또한 심사 과정에서 "기록 오류를 확인했다"고 인정했지만, 서훈 결정은 여전히 번복되지 않았다.
추진위는 "김범수 선생은 독립운동의 공로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냉전기 보훈 행정의 잔재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재심을 촉구하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주동자로 체포돼 투옥된 정해두 선생 역시 ‘면서기 경력’을 이유로 서훈이 거부됐다. 그러나 그는 단 한 차례도 면서기를 지낸 적이 없다. 유족이 고흥군청에서 ‘부존재 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출했지만, 보훈부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결정을 유지했다.
행정 기록조차 남지 않은 ‘허위 경력’을 근거로 독립운동가의 공훈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기홍 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해방 후 일제의 잔존 기관이었던 ‘대화숙’에 강제로 끌려갔으나, 보훈부는 이를 자발적 가입으로 해석했다. 이 선생은 생전에 남긴 자서전에서 "일제가 경찰을 보내 강제로 데려갔다"고 분명히 증언했다. 추진위는 "보훈 행정의 오류가 독립운동가의 피해를 ‘친일 논란’으로 뒤집는 왜곡을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이수 대표는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아직도 정부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시민의 힘으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훈은 정부가 상훈법에 따라 훈장과 포장을 수여하는 제도로, 독립운동가에게는 주로 건국훈장이 수여된다.
그러나 정부는 일부 독립운동가의 사회주의 활동 경력 등을 이유로 서훈을 제한해 왔다. 추진위는 향후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제도 개선과 당론 채택을 촉구하고, 서훈 절차의 정상화를 요구할 방침이다.
/이서영 기자 dec@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