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난세의 리더십
정세영(남도일보 정치부장)
대한민국 경제가 어느 때보다 힘들다. K-팝, K-푸드, K-뷰티까지 전 세계가 한국에 열광하고 있지만 국내 사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침체된 건설 경기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지방은 긴축 재정을 하다 못해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세대·지역·계층간 갈등도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
윤석열 탄핵과 이재명 정부 탄생으로 국가 전반이 안정감을 찾아가곤 있지만 이미 나빠진 경제 상황이 회복되기 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어려운 때일 수록 국가와 국민은 시의적절한 리더십을 갈구해 왔다. 시대의 흐름과 현재의 환경에 걸맞는 리더십이 발휘돼야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시대에는 3인의 리더가 존재한다. 바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다. 이들은 혼돈의 시대, 영웅으로 불렸지만 각기 다른 성향으로 매번 비견되곤 한다.
삼인삼색(三人三色) 리더십을 쉽게 알 수 있는 비유가 있다. 에도시대 말 히라도 번주인 마쓰라 기요시가 쓴 수필 ‘갑자야화’에 실린 시조, 바로 ‘울지 않는 두견새’다.
"누군가 두견새를 보내왔다. 그러나 두견새는 울지 않는다. 울지 않으면 죽여버릴 터니 두견새야(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는다면 울려 보이마 두견새야(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마 두견새야(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는 오닌의 난 이후 난세로 접어든 전국시대를 통일해 평정한 인물이다. 오다는 불 같은 성격에 배짱과 추진력이 강했다. 다혈질이다 보니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목을 쳐 버릴 성격이다.
정권을 확립하고 일본 통일의 기틀을 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꾀가 많고 지략에 능하지만 노력형 인물로 평가된다. 작은 체구와 못생긴 얼굴로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았지만 추운 겨울 노부나가의 신발을 가슴에 품어 감격시킬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졌고 마음먹은 건 꼭 실천하고야 마는 집념이 있었다. 그는 새를 어떻게든 울게 만들려고 한다.
인내와 자기성찰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도쿠가와는 느긋하고 신중한 성향으로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어린 나이에 인질로 끌려갔던 기억, 자신의 자식을 도요토미에 인질로 보낸 굴욕, 수 차례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경험 덕분이라 유추된다. 도쿠가와는 일본 통일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
과정과 스타일은 달랐지만 일본 전국시대에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3명 모두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사실이다. 이들의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던 이유는 각 정세에 걸맞는 지도자의 모습이여서가 아닐까 싶다. 난세의 격변기, 불안기, 안정기의 시절마다 적절한 리더가 이끌어 주면서 현재의 통일된 일본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본다.
최근 마무리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리더였을까. 도요토미와 도쿠가와의 리더십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민감한 관세협상을 앞두고는 참모들에게 빠른 결정을 요구하기 보단 국익에 우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냈다고 한다. 자칫 흔들릴 수 있는 중심을 잡아주며 도쿠가와의 신중함을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도요토미의 영특함이 그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우고 한국이 줄 수 있는 걸 제안하는 동시에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요구했다. 정상회담에 앞서 금관을 선물하며 트럼프의 환심을 샀고 결국 그는 마음먹은 일을 실현해 냈다. 이 대통령은 APEC에서 실용 외교를 실천하며 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게 대내외적 평이다.
대한민국에는 지방의 리더를 선출하는 빅 이벤트가 내년 6월 치러진다. 지방소멸, 경제 위기로 어려운 여건에 처한 광주·전남에는 어떤 리더십이 좋을까. 현 단체장들은 시대의 변화에 맞는 지도자의 모습인가.
우리는 그들에게 만족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가. 평가의 날이 다가온다. 그 선택은 바로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