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렌즈에 담은 담양 (1-상) 400년 숲이 건네는 위로 관방제림 4계 [앵+글로 본 남도 세상]
카메라를 들고 담양천 둔치에 섰다. 오늘도 이 길을 걷는다. 쉼이 필요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찾게 되는 곳. 관방제림에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까지 이어지는 이 2km 남짓한 숲길이 내게는 걷기 명상의 공간이자, 사계절을 렌즈에 담는 작업실이다.
# 400년을 지켜온 관방제림의 숨결
파인더 속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피사체는 천연기념물 제366호 관방제림이다. 1648년 담양 부사 성이성이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심은 나무들. 320여 그루의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가 만든 이 거대한 풍치림은 단순한 숲이 아니다. 수해 방지라는 실용적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세월은 이곳을 예술 작품으로 빚어냈다.
봄이 오면 수백 년 된 고목 사이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연둣빛 신록이 돋아나는 가지마다 생명의 약동이 느껴진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꽃내음까지 담고 싶어진다.
여름의 관방제림길은 천연 에어컨이다. 수령 300년이 넘는 거목들이 만든 녹음 터널 아래, 담양천의 물소리가 청량제가 되어준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도 이 나무들 앞에서는 한 줄기 온화한 빛으로 변한다. 곳곳의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는다. 모두가 평화롭다.
가을이면 황금빛과 고동색 단풍이 제방을 물들인다. 사색하는 이들, 낭만을 즐기는 연인들. 이 계절의 관방제림은 모든 이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선물한다. 설경은 또 다른 걸작이다. 눈 덮인 제방 위로 우뚝 선 고목들은 흑백 수묵화가 된다. 웅장하면서도 쓸쓸한 아름다움. 고요 속에서 셔터 소리만이 허공을 가른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