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남 AI시대를 여는 1억℃ 심장, 인공태양

정현구(전라남도 에너지산업국장)

2025-11-19     정현구

 

정현구 전라남도 에너지산업국장

지구상 최강의 슈퍼히어로이자 혼돈의 미래를 구할 영웅 ‘아이언맨’. 그가 입은 철갑 슈트의 힘은 가슴에 달린 작은 ‘아크 원자로’에서 나온다. 이 원자로의 원리가 바로 ‘핵융합’이다. 주유소에 들르지 않아도 되는 아이언맨처럼, 인류도 핵융합 기술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달리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와 오픈AI, MS,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이 상용화를 위한 개발 경쟁에 뛰어들면서 ‘핵융합 전쟁’이 본격화됐다. 우리나라도 1조 2,000억 원 규모의 핵융합 연구시설 부지를 이달 말 확정하기로 발표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무한·청정·안전한 에너지=인공태양은 태양의 에너지 생성 원리를 지구에서 재현하는 기술이다. 태양 속에서는 수소가 결합해 헬륨으로 바뀌는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이를 지구에서 구현하려면 1억도에 이르는 초고온과 초고압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기술이 완성되면 인류는 무한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손에 넣게 된다. 핵융합의 첫 장점은 ‘무한성’이다. 주 연료인 중수소는 바닷물 속에 풍부하게 존재해 수십억 년을 써도 고갈될 염려가 없다. 둘째는 ‘청정성’이다. 핵융합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지구 온난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셋째는 ‘안전성’이다. 핵분열처럼 폭발 위험이 없고, 고준위 폐기물도 발생하지 않는다. 수소 1g만으로 석유 8t에 맞먹는 에너지를 낼 수 있어 효율성 또한 압도적이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기차 등으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로 주목받는 이유다.

◇에너지 산업의 게임 체인저=이러한 핵융합 기술을 책임질 인공태양 연구시설은 단순한 과학 연구시설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 체인저’이자 ‘미래 산업의 심장’이다. 인공태양 연구시설이 구축될 경우 연구개발 장비 제작, 부품 공급, 운영·유지보수 등에서 파생되는 산업 효과도 막대하다. 핵융합 부품, 초전도체, 냉각시스템 등 20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 투자와 1만개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

◇1억℃ 심장 최적지, 나주=과학계는 대한민국이 핵융합 분야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인공태양 연구시설의 성공적인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시설의 최적지로 꼽히는 곳이 전남 나주다. 나주는 단단한 화강암 지반 위에 자리해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 위험이 낮다. 넓은 평야 부지도 확보돼 확장성에서도 뛰어나다. 또한 나주는 이미 인력 인프라를 갖췄다. 세계 유일의 에너지 특성화 대학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가 핵융합 전문인력을 길러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지역 내 정주 여건도 우수하다. 나주 혁신도시와 광주 일대를 중심으로 한국전력을 비롯한 670여 개 에너지 기업이 밀집해 있으며, 이미 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완성됐다. 여기에 전남 서남해안 일대에는 오픈AI 데이터센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 인공지능 클러스터 조성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향후 핵융합 연구와 AI 기술이 융합되는 국가 거점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인다. 인프라, 인력, 산업 생태계를 모두 갖춘 나주는 단순한 후보지를 넘어 ‘준비된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아이언맨’이 가진 무한 에너지는 더 이상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0년부터 이어진 전라남도의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 노력은 단순한 지역 개발 차원을 넘어, AI와 핵융합이 결합한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을 실현하려는 비전이다. 전남은 이미 연구 기반과 산업 역량을 모두 갖췄다. 인공태양이 만들어낼 1억도의 에너지 심장, 이제 그 심장은 전남 나주에서 뛰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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