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인공태양’ 끌어당긴 전남, 글로벌 에너지 허브로 ‘급부상’

■핵융합 연구시설 유치 의미와 전망 치열했던 3파전 끝에 나주 유치 성공 과기부 평가서 ‘부지 안정성’ 결정적 이미 완성된 산·학·연 인프라도 한몫 경제효과 10조·일자리 1만개 ‘잭팟’ 김영록 "진정한 AI·에너지 수도 도약"

2025-11-24     안세훈 기자

 

지난달 30일 전남 나주 한국에너지공대에서 개최된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위원회 출범식’에서 김영록 전라남도지사, 윤병태 나주시장 등 참석자들이 유치를 기원하는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전남도 제공

전라남도가 ‘꿈의 에너지’를 품었다. 전북 군산, 경북 경주와 치열했던 3파전 끝에 나주시가 1조2천억원 규모의 ‘인공태양(핵융합) 연구시설’ 1순위 후보지로 낙점되면서다. 사실상 유치를 확정 지은 나주는 ‘대한민국 에너지 수도’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전망이다. 글로벌 에너지 패권 경쟁 속에서 국내 미래 에너지 산업의 전초기지로 도약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왜 나주였나

나주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검증된 부지’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평가 배점을 살펴보면 ‘입지 조건’이 50점으로 가장 높았다. 기본 요건과 정책 부합성은 각각 40점, 10점이었다.

특히 나주의 ‘지질 안전성’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나주 왕곡면에 있는 에너지국가산업단지 인근 부지(50만㎡)는 단단한 화강암 지반으로 이뤄져 있다. 최근 20년간 규모 3.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무결점 부지’로 평가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주여건 등 적합성 검증까지 모두 마친 ‘즉시 착공’ 가능 상태다.

이미 완성된 ‘대한민국 에너지 수도’ 인프라도 한몫 했다. 광주·전남공동(빛가람) 혁신도시를 품은 나주에는 한국전력공사와 전력그룹사, 670여 개의 전력기자재 기업이 집적해 있다. 또 2019년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에 이어 2025년 에너지 국가산단 지정 등 에너지 신산업을 위한 제도적 기반까지 완벽히 구축된 상태다.

‘R&D’역량도 타 지역을 압도했다. 빛가람 혁신도시는 핵융합 분야 최고의 교수진을 갖춘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KENTECH)를 보유하고 있다. 켄텍은 핵융합 8대 핵심기술 중 하나인 ‘초전도 도체 시험설비’를 이미 구축 중이다. 총 495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2028년 완공이 목표다. 인공태양 연구시설이 들어설 경우 즉각적인 산·학·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최적지라는 논리가 주효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과기부 평가에서 지역 수용성은 주요 항목 가운데 하나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나주시는 2021년부터 유치 작업을 치밀하게 준비하며 19개 읍·면·동 주민 설명회, 대규모 지지 서명을 확보하는 등 주민 수용성을 끌어올렸다.

◇경제효과만 ‘10조’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로 막대한 파급효과도 기대된다. 경제적 파급효과만 무려 10조원에 달한다. 2027년 착공해 2036년 완공을 목표로 한 연구시설은 총 1조2천억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이를 통해 1만 개의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창출되고, 300여개의 관련 기업이 나주로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파급력은 에너지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공태양 연구 과정에서 파생되는 ‘초전도 기술’과 ‘중성입자빔 기술’은 차세대 MRI(의료), 하이퍼루프(교통), 반도체 공정 등 첨단 산업 전반에 적용 가능하다. 나주가 단순한 전력 도시를 넘어 의료·바이오·모빌리티를 아우르는 첨단 과학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전남이 추진 중인 글로벌 AI데이터센터·AI컴퓨팅센터와 연계할 대용량·무탄소 청정에너지 확보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또 K-에너지밸리로 불리는 광주·전남 에너지 융복합단지와 연계해 핵융합 장치 제작·초전도 자석·진공용기·블랑켓 등 핵심 부품 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세계 유일 에너지 특성화 대학인 한국에너지공대가 추진 중인 초전도자석 시험설비(SUCCEX) 사업 등과의 연계 시 연구·산업 생태계 조성이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에너지 패권 전초기지

연구시설 나주 유치는 ‘국가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현재 KSTAR(대전), 방사광가속기(경북) 등 대형연구시설은 충청·영남권에 집중돼 있다. 또 2023년 기준 전남의 국가 R&D 예산 비중이 1.4%(전국 16위)에 불과하다.

김영록 전남지사가 "이번 사업은 전남의 미래 산업 구조를 완전히 바꿀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나주의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는 수도권과 충청·영남에 기울어진 과학기술의 무게 추를 호남으로 분산시키고, 진정한 의미의 지방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나주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 경쟁의 중심부로 거듭날 전망이다. 현재 세계는 ‘총성 없는 에너지 전쟁’ 중이다. 중국은 안후이성에 차세대 핵융합로 ‘BEST’를 건설하며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속도전을 펴고 있고, 미국 역시 민간 기업과 연합해 2027년까지 상용화 발전소 ‘SPARC’를 건설하겠다며 패권 선점에 나섰다.

한국은 이미 ‘KSTAR’를 통해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를 48초간 유지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원천 기술을 넘어 실제 전력을 생산하는 ‘상용화(실증)’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규모 인프라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나주에 들어설 연구시설은 이 기술을 ‘산업 현장’으로 끌어내는 ‘K-핵융합’의 전초기지다. 나주시는 이곳에서 핵융합 발전의 핵심인 초전도 자석과 증식 블랑켓 등 핵심 부품을 실증하고, 2050년 한국형 인공태양 상용화(K-DEMO)를 위한 로드맵을 완성하게 된다.

김 지사는 앞선 발표 평가를 마치고 "전남이 진정한 AI·에너지 수도로 도약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핵융합"이라며 "정부가 인공태양 연구시설을 시작으로 핵융합 분야 투자를 확대하는 만큼 (연구시설이)나주에 유치되면 행·재정적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