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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신분 우리는 가끔 타인으로부터 ‘너는 누구냐?’에 대한 질문을 받곤한다. 이를 바꿔 말하면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는 ‘신분’에 대한 물음이다. 이때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직장과 직위가 적힌 명함을 건넨다. 명함은 곧 신분증 대용으로 쓰여져 자연스럽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릴 수 있는 증거물이 된다. 이같은 신분에 대한 증거 제시의 유래는 중세사회로 거슬러 오른다. 1860년에 발간된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보면 15세기는 개인의식이 탄생하고 민족감정이 처음으로 잉태된 때이다. 또 현대적 의미의 통계학이 태동했으며 경찰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시기이기도 하다. 경찰의 등장은 곧 개인 신상 정보를 관리하는 체계가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 당시 중세 서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페라라의 공작들은 주민 관리를 위해 첩자와 정보원을 고용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스위스 바젤과 같은 도시를 방문하는 여행객은 성문 앞에서 확인증을 받고, 도시를 떠날때면 그 확인증을 다시 반납해야 했다. 이는 500년 전 신분증의 기원을 말해준다. 14~15세기에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각종 휘장과 문장(紋章), 표식이 인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휘장과 문장은 가문을 상징하는 표식이자 해당 인물의 고매한 인품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넓은 의미에서 ‘신분증’이었던 셈이다. 세밑 서점가에는 오스트리아 출신 역사학자 발렌틴 그뢰브너가 쓴 ‘너는 누구냐?’가 심심찮게 팔리고 있다. 중세 사람들의 신분 증명에 대한 표식들을 다룬 책이라고 한다. 을유년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이 시기에 ‘너는 누구냐?’라는 의문의 물음이 아닌, ‘나는 누구였는가?’의 자문으로 한 해를 정리하는 것도 좋겠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칼럼
남도일보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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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지역민의 화합(和合)을 위한 나눔-황일봉·광주시 남구청장 혹한의 추위에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소식이 있다. 바로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이웃과 나누는 이야기인데, 최근 남구에는 송암동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 본인이 직접 수확한 쌀을 경로당과 불우가정 20여곳에 전달해 훈훈한 화제가 된 바 있다. 나눔은 우리 사회를 끈끈하게 묶는 화합(和合)의 힘이 있다. 화합은 사전적 의미로 ‘화목하게 어울린다’라는 뜻인데, 한자를 보면 ‘쌀밥(禾)을 먹되(口), 사람(人)들과 하나(一)가 되어 먹는(口)다’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마치 이웃과 모여 앉아 들밥을 먹는 정겨운 풍경처럼 말이다. 비단 음식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마음은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든다. 우리 구는 차가운 날씨로 인해 어려움이 많은 독거노인을 비롯한 저소득층을 돕기 위해‘효사랑 겨울나기 나눔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연말연시 이웃돕기캠페인과 연계한 이 운동에는 많은 기업과 종교기관, 그리고 지역주민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웃들을 도와달라며 사랑의 쌀을 대거 지원하고, 독거노인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 사랑의 연탄과 이불을 기증해 준 기업, 십시일반 모은 쌀을 이웃돕기에 내놓는 아파트 주민과 종교기관의 참여에 이르기까지 남구에는 각계에서 이웃을 돕는 크고 작은 나눔의 실천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우리 구 공무원들의 이웃사랑의 열기도 뜨겁다. 구청 직원들이 주축이 된 직장밴드가 조손가정을 돕기 위해 자선공연을 갖고, 직원들이 자선바자회를 열어 얻은 기금을 모아 성금으로 기탁하고,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직원은 자신의 전시회 수익을 내놓고, 청원경찰들이 성금을 모아 이웃돕기에 내놓는 등 이웃사랑의 열기를 높이고 있다. 남구에는 부모 잃은 소년소녀가장을 비롯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돌봐줄 가족 없이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이웃 등 7천200여명의 복지대상자가 살고 있다. 특히 정부의 지원이 아니면 생활하기 힘든 65세 이상 어르신은 1천241명이 계시는데, 이 가운데 과반수 이상은 자녀가 없거나 가족의 부양기피 등으로 홀로 생활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 구는 구청 내 사회복지사무소를 통해 위기상황에 처한 주민을 조기에 찾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시범적으로 운영 중인 노인요양보장제도 등 선진복지시스템을 통해 위기가정과 요보호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 하지만 법적요건을 갖추지 못해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주민의 경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어, 사회복지 담당공무원들이 기업이나 후원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느라 발을 동동 구리는 모습을 보면서 법적 한계는 늘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될 따름이다. 서민 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회구조는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그래서 효사랑 겨울나기 나눔운동을 비롯한 연말연시를 맞아 추진하는 각종 이웃돕기캠페인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을 비롯한 저소득층과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이웃 모두에게 큰 희망으로 자리잡게 된다. 나눔의 실천은 사회구성원간의 일치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지역민의 화합(和合)을 위한 사랑의 행렬에 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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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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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십시일반으로 희망의 대한민국을-김병삼 홍보계장·광주 북구선거관리위원회 옛말에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 이란 말이 있다. 이 말 이외에도 비슷한 말로 물이 모여 내를 이룬다는 수적성천(水積成川) 이란 말이 있고, 흙이 쌓여 산을 이룬다는 적토성산(積土成山) 이란 말이 있다. 이 말들은 “어떤 일을 할 때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 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연말이라 소득공제가 어떻니 세액공제가 어떻니 하며 연말정산을 한다고 난리다. 또한 10만원을 정치차금으로 기부하면 연말정산 시 전액 세액공제 혜택이 있다는 말을 매스컴이나 현수막·전광판을 통해 심심치 않게 접했을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정치자금기부와 연말정산 시 세제혜택 등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정치자금이란 정당이나 정치인이 정치활동을 위해 쓰는 경비로 그 경비를 조달하는 재원으로는 당비·보조금·후원금·기탁금이 있다. 종전에는 몇몇 소수의 기업인 들이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함으로써 모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몇몇 소수의 기업을 위한 정치가 성행했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정치관계법이 개정되어 기업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일절 기부할 수 없도록 했으며 국민들은 누구든지 개인적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관심을 가질 때 그 나라의 정치는 바로 서고 국민이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직접 참여할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는 대의정치가 올바로 수행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동참하여 지원해주고 관심을 가져주어야 할 것이다. 정치자금을 기부함에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부 기업인들만 정치자금을 기부하게 한다면, 또다시 과거의 정경유착의 고리가 형성되어 비리가 난무하고 민주주의가 퇴보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자금의 건전한 기부문화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소액다수 기부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즉 올바른 정치문화를 확립시키기 위해서는 다수의 국민이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힘을 합하여 도와주는 자세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할 것이다. 셋째, 올바른 정치를 위한 정치자금의 원활하고 투명한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십시일반의 정신이 필요하며 십시일반의 기부를 유도하기 위한 일환으로 연말정산 시 세제혜택이란 제도가 생긴 것 같다. 올바른 정치가 정착되기를 기대하면서 국민모두가 정치자금의 소액 다수 기부에 다같이 동참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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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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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논단] 광주시민의 문화향유권- 광주시의회 김선옥 의원 문화중심도시 ‘광주’ 조성사업이 광주시민의 관심과 우려 속에 하나둘씩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의 설계작이 선정되면서 야기되는 문제도 광주가 문화중심도시가 되기 위해 거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문화중심도시사업이 시작되면서 제기된 문제중 하나는 거대한 건물들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광주시민들이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시민으로서 문화를 향유하고 문화로 밥먹고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자질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였다.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 일컬어 지는 모든 상황에 노출이 되어야만 차곡차곡 쌓여가는 내공적인 성격이 짙다. 국책사업인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문화관광부와 문화중심도시추진기획단이 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 조성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면 광주시는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전시, 공연을 할 수 있는 여건과 공간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할것이다. 하지만 야외음악당 건립과 관련한 광주시의 행정을 보면 과연 광주시가 문화중심도시가 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와 시가 광주시민들의 문화 향유권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야외음악당 건립사업은 2004년 2월에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월드컵경기장 주차장에 건립키로 했으나 지방재정투융자심사결과 야외음악당 건립위치가 월드컵 경기장 주차장 부지로 차량통행이 많고 국제경기시 활용이 어렵다는 사유로 건립위치를 재검토 의결을 하였고 그 이후 중앙공원내 사유지로 장소를 변경했다가 이번에 다시 광주시청 앞 문화광장에 건립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 번의 건립장소 변경의 이유는 사업비 확보 애로 때문이었다고 시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광주시는 야외음악당 건립을 위해 92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했고 그 중 국비 10억이 내려온 상황에서 나머지 시비를 확보하지 못해 2004년 10억을 명시이월한데 이어 올 국비 10억을 사용하지 못하면 국비 반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급하게 시비 10억을 세워 20억원으로 서둘러 시청문화광장에 야외음악당을 건립하려 하고 있다. 무계획적인 졸속행정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신시청 건립 당시부터 야외 문화광장은 그 용도 때문에 의견이 많았다. 보도블럭을 걷어내고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을 만들자는 의견부터 잔디를 깔아 공원으로 만들자는 의견 등 문화광장이 시민들의 문화 난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그런 문제가 제기될때마다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시가 국비 10억원을 반납하는 것이 아까워 시민들에게 선심을 쓰듯 야외음악당을 건립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보면 광주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씁쓸한 맘이 앞선다. 타시도의 야외음악당은 그야말로 음악당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지역 예술인들이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전문 야외공연시설을 건립했다. 그런데 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광주의 야외음악당은 대형공연이벤트를 지원하는 이벤트 행사장의 성격을 가지는 음악당을 그것도 20억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립한다고 한다. 주먹구구식, 졸속행정은 올해로 마무리하자. 시비확보가 어려워 국비반납을 해야 한다면 과감하게 반납하자. 그리고 한해 한해 야외음악당을 건립을 위해 10억씩이라도 적립하면 아시아 문화전당이 준공되고 문화중심도시 광주에 어울리는 남부럽지 않은 야외음악당을 건립할 수 있을 것이다. 돈에 얽매어 원칙을 버리는 행정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광주시민에게 쾌적한 야외에서 음악공연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시장은 빼앗아 가지 말았으면 한다. 광주시민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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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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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책임 윤리 요즘 어디를 가나 온통 줄기세포와 배아복제에 관련된 얘기 뿐이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막연하긴 마찬가지이다. 누가, 어떤 것이 옳은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혼란스럽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적어도 어떤 분야에서든지 생명을 다루고 논의하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윤리 의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것은 우리의 생명공학자들이 자신들의 놀라운 행위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심각하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계를 상대로 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한다는 우리나라 학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윤리 문제에 대한 글로벌 스텐다드를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든지, 1964년 제18차 세계 의사협회 총회에서 채택된 ‘헬싱키 선언’을 모르고 있었다니, 이게 말이나 될 소린가. 그들이 얻어낸 연구 성과만큼이나 당혹스러운 일이다. 최근 이러한 문제들을 시의적절하게 다룬 책이 나왔다. 한스 요나스의 ‘기술의학 윤리’이다. 이 책에 수록된 12편의 글 가운데 제일 늦은 게 1984년 발표되었으니, 요즘의 배아복제와 줄기세포 문제는 직접 거론되진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윤리학적으로 ‘책임의 원칙’에서 제시된 책임윤리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해 시선을 끈다. 한스 요나스의 말대로 20세기의 문제가 인간의 능력으로 인간 주변의 환경이나 생태계를 위협했다면, 21세기의 문제는 바로 인간 자신을 스스로 위협한다는 것이다. 즉 배아복제에서 보듯이 생명공학 기술은 바로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다. 여기서 나타난 생명의 문제와 인간의 문제는 다시 공학자를 포함해서 인간에게 책임 윤리를 요구한다. ‘책임 윤리’는 생명공학이 가져올 멋있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이를 음미하는 건 과학자들의 몫이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칼럼
남도일보
2005.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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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성과주의의 유혹을 떨쳐버려야-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 기획조사실 정희전 실장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더불어 각 지자체의 전략산업 육성 및 비젼 제시가 한창이다. 시도별 발전계획을 듣다보면 새로운 기대감에 흥분도 되고 우리경제의 역동성이 들리는 것도 같다. 마치 과거 70년대와 같은 개발년대로 돌아가 압축성장의 신화를 재연하는 느낌이다. 분명 이러한 노력들은 낙후된 지역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한 지난 70년대식으로 지역경제개발이 이루어 질 수 없으며 최근 줄기세포 파문에서 불거졌듯이 우리 또한 지나친 속도위주 성과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70년대의 고도성장은 정부주도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전략부문에 인적, 물적자본을 집중 배분함과 아울러 각종 특혜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개인의 임금상승이나 여가 등 삶의 질 추구는 최대한 억제됐으며 원천기술개발보다는 간편한 외국기술 모방에 주력했다. 그러한 노력과 희생의 결과, 다른 나라들이 100여년에 걸쳐 이루었던 것을 불과 20년 내에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주변여건은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정부(또는 지자체)의 역할과 사람. 먼저 지자체가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일정 예산 등을 지원할 수 있으나, 투자결정은 어디까지나 민간의 몫이다. 당국은 과거와 같이 임금을 통제하거나, 금융기관의 자금배분에 간여할 수 없다. 따라서 지자체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도로 항만 공단 등 사회간접자본건설이나 제도정비 등 인프라구축에 모아질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과거에는 사람보다 기계, 개인보다 국가경제가 더 중요했으나, 현재는 사람의 중요성이 크게 증대됐다. 이는 첨단산업일수록 고급기술을 보유한 인재가 무엇보다 중요한 생산요소란 점과, 다른 한편으로 경제가 양적 성장을 아무리 많이 해도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고용이 확보되지 않으면 문제가 크다는 점 등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감안할 때 지자체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수립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일사천리로 모든 사업이 추진될 수 없으며 지역민도 지역개발의 단기성과만으로 지자체의 업적을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칫 지자체나 지역민이나 눈에 보이는 단기성과주의에 빠져 오히려 지역경제의 성장잠재력 확충을 저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자칫 지역경제개발 추진과정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다음과 같은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첫째, 전략산업 육성 내지 기업유치 등이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지역내에서 고급인력을 양성하거나 고급두뇌를 유치할 수 있는 주거, 교육, 문화 등의 여건개선에 힘써야 한다. 둘째, 시설구축 등 외형적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규제완화, 행정서비스, 지역민의 서비스마인드 등 무형의 소프트웨어 개선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관광업의 경우 아무리 좋은 자연경관과 먹거리, 호텔, 골프장 등이 있어도 친절하고, 나의 개성보다 타인의 편의를 우선 고려하는 섬세함과 개방성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셋째, 서비스산업 육성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술집약적 산업의 발달로 제조업취업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반면, 서비스업의 일자리는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광주·전남지역의 경우에도 농업부문에서 매년 2만개정도 줄어드는 일자리를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서 대부분 흡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중장기 비젼도 중요하나 농업부문 구조조정 등과 같은 당면현안에도 중지를 모으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역개발은 하이테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대책 또한 모두 거창할 수는 없다. 인터넷 주문과 택배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컴퓨터를 모르는 고령의 농민들도 전자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칼럼
남도일보
2005.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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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거짓과 진실에 대한 나의 혼란 지난 10일 2005년도 노벨상 수상자 시상식이 있었다. 그 가운데 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건강이 나빠 시상식에 참가하지 못하고 대신 런던에서 미리 녹화된 수상연설을 발표했다. 그의 수상 기념연설의 골자는 거짓 정보에 근거를 두고 이라크를 침공하여 전쟁을 감행함으로써 무고한 희생을 낸 부시와 블레어의 부도덕성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그들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닭장 속에 갇힌 채 재판을 받고 있는 후세인을 상기하였다. 그리고 혼란을 느꼈다. 핀터의 연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인상적이다. “1958년 나는 이렇게 썼다. 진실과 거짓의 명확한 구분은 어렵다. 모든 것이 진실 아니면 거짓인 것은 아니다. 진실이면서 거짓일 수도 있다. 작가로서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시민으로서는 아니다. 시민의 하나로서 나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그의 말에서 내가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하나의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극작가로서가 아닌가. 왜 시민과 예술가가 가치를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는가. 한국문학의 관습에 의하면 인간과 문학은 궁극적으로 진실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혹 과정에 거짓이 있다 하더라도 그 거짓은 진실을 향한 하나의 길목이어야 한다. 핀터의 말대로 문학에 있어서 진실과 거짓이 가치로서 공존할 수 있다면 문학 이외의 분야 가령 종교, 철학, 사회학 그리고 과학에 있어서 진실과 거짓의 가치론은 어떤가. 이라크 침공을 두고 미국 교회의 기도는 이슬람 교회의 기도와 같지 않다. 어느 쪽이 진실이고 어느 쪽이 거짓인가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어느 쪽이건 자기 입장이 진실하다고 믿는 것이다. 철학은 생각하는 입장에 따라 진실과 거짓이 바뀔 수도 있고, 사회학은 수집한 자료의 정리방법에 따라 진실과 거짓이 다를 수 있고, 과학은 과학의 발달사가 말하듯 옳다고 믿었던 소신은 언제나 새로운 발견에 의하여 갱신된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가 어떻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지난해 미국에 갔을때 현지 신문에 테네시 반다빌트 대학의 한 교수 논문이 조교의 자료 조작 발각으로 취소됐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편의주의를 좇다 보니 황우석 교수가 말한 소위 ‘인위적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보도는 지방 신문의 한단짜리의 기사에 불과했다. 오늘 우리의 이것은 무엇인가. 온 나라가 이렇게 충격적일 수가 없지 않은가. 하나의 과학 논문이 국민을 이렇게까지 허탈하게 만들 수 있는가. 나는 교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인의 기질, 한국인의 문화와 관계가 깊다. 하나의 일을 처리하거나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근시안적이고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기질, 바닥을 보고 결판을 내고자 하는 문화의 천박성에 그 본질이 있다. 당초 황우석은 너무 영웅시 되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마치 그를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떠들어댄 자리에 언제나 신문방송이 있었다. 냉철하게 생각할때 사실상 국민을 속인 것은 황우석 이상으로 신문 방송이었다. 국민들은 다만 신문방송을 믿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신문 방송이 나팔 부는 대로 황우석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2005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시사 전문지들이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고 있다. TIME지가 선정한 지난해의 인물은 조지 부시였다. 1930년대 어느 해는 아돌프 힛트라인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 올해의 인물은 당연이 황우석 교수다. 올해 그 사람처럼 큰 화제가 되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처럼 국민 전체의 존경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나락에 추락한 사람도 없다. 세상이 재미있는 것인지 재미없는 것인지 정말로 혼란스럽다
칼럼
남도일보
2005.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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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上火下澤 2005년의 한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상화하택(上火下澤)’이었다. 주역에 나오는 이 사자성어는 ‘위에는 불, 아래는 물’이란 뜻으로, 서로 이반(離反)하고 분열한다는 의미다. 최근 교수신문이 올해의 한국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풀이한 고사성어로 ‘상화하택’을 꼽았다. 사실 올해는 강정구 교수 사건으로 진보와 보수간 치열한 이념논쟁이 벌어졌고,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둘러싼 지역간 갈등과 그리고 세밑에는 사학법의 국회 통과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절정을 이뤘다. 이 와중에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져 농민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졌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욱 확산됐다. 특히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란’은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말았다. 이런 점에서 ‘상화하택’이란 고사성어는 매우 적절한 표현인 듯 싶다. 불은 위로 오르려는 성향을 가졌고, 못은 아래로 처지려는 성향을 갖고 있으니,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2005년의 대한민국 사회는 불행하게도 이 사자성어로 개괄되어졌다. 이반과 분열은 음(陰)과 양(陽)이라는 대립 요소들이 생성을 위해 길항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서로 등을 돌리고 갈라서는 모습이다. 대다수 국민과 정부, 노동자와 사용자, 여당과 야당이 서로 길항하는 관계가 아니라 이반하는 한 해였고, 지역적으론 더욱 심각한 분열상을 보였다. 중부권 신당을 계기로 하삼도(下三道=충청·전라·경상)가 분열 조짐을 보였고, 중앙기관의 지방 이전에 따른 입지 선정을 둘러싼 지역 주민간의 갈등 또한 컸다. 그야말로 을유년은 다사다난했다. 이제 모든 갈등과 분열을 접고 을유년이 서서히 저물어 간다. 밝아오는 병술년 새해에는 대립이 아닌 음양의 생성을 위해 길항하는 사자성어가 꼭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칼럼
남도일보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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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이 66년만에 폭설과 강추위로 거의 ‘공황’상태다. 피해규모가 이미 1천500억원을 넘어섰다. 워낙 ‘폭설 생채기’가 커 생계가 막막한 실정이다. 피해 복구가 언제 마무리될 지 모를 상황에서 서울과 전남이 ‘형제도시’라는 주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15일 ‘서울시와 전남도, 폭설피해 현장 복구로 형제애 나눈다’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통해서다. 요지는 서울시 발주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11개 건설업체가 전남지역 폭설피해복구 지원 활동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발표대로 이들 업체 관계자 30명과 서울시 공무원 3명 등 모두 33명이 15일부터 17일까지 강진군 칠량면의 양계장을 찾았다. 무안군 몽탄면의 오리사육장, 영광군 군서면의 축사 등지에서도 복구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산소절삭기 10대, 기계절단기 1대 등 해당 업체가 소유한 첨단장비를 앞세워 신속한 현장복구에 나섰다. 피해 농가에게는 이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천리길을 마다지 않고 달려온 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이를 계기로 더 많은 복구의 손길이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문제는 이 지원이 이명박 시장의 제안의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 시장은 전남 폭설피해뉴스를 보고 “‘형제도시’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첨단장비와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건설업체들이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섰다는 것이 서울시측의 설명이다. ‘전남도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이명박 시장’이란 점도 강조했다. ‘너무 가깝고 친근한 이웃’임을 부각시킨 대목이다. 대한민국에서 형제도시가 아닌 곳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1의 도시인 서울시와 대표적인 ‘농도(農道)’인 전남도가 형제애로 뭉쳤다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두 다소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이를 의식한 듯 서울시와 전남도는 지난해 12월 이 시장과 박준영 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우호교류협정을 맺었다. 한나라당 소속 이 시장과 민주당 소속 박 지사가 ‘상생(相生)의 손’을 잡아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시장은 이어 지난 4월 서울 구청장 등 80여명을 대동한 채 전남도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서울시 25개 구와 전남도내 22개 시·군이 자매결연을 했다. 전남 쌀 매장 설치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도 했다. 이어 1개월이 지난 5월에는 충북 음성체육관에서 서울 지역 58개 기관·기업과 충북 도내 58개 마을간 ‘1사·1촌’ 자매결연을 했다. 이 시장의 ‘순수한 뜻’과는 별개로 ‘정치적 행보’라는 비난도 나왔다. 차기 대권을 노린 수순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현재 이 시장은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 후보 가운데 한명이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로 나설 정도로 이 시장의 인기는 상한가를 치고 있다. 서울시측의 이번 전남 폭설피해 현장복구는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데 이견을 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면 오히려 차기 대권 도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지난 17일 장성군 황룡면 안평리 장동마을에서 복구활동을 벌인 뒤 김흥식 장성군수에게 시설 복구비로 써달라며 1억원을 전달한 손학규 경기도지사도 예외는 아니다. 차기 대선과 무관하게 순수한 마음으로 서울과 전남, 경기와 전남이 상생할 수 있는 ‘행정적 행보’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치단체장의 소속 정당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최대의 친환경농산물 생산지인 전남과 최대 소비처인 서울·경기도가 한데 어우러질 때 진정한 ‘형제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칼럼
ocn@namdonews.com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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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민간 건강보험도입 시기상조- 함형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광주지역본부장 민간보험과 공적 건강보험은 ‘미래의 불확실한 큰 손실’을 ‘현재의 확실한 적은 손실’로 대체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보험제도의 목적과 보험가입 방식, 그리고 부양성 여부 등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공적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은 국민건강 보호의 기본적 보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보험 가입의 법적 강제와 사회 혹은 국가 부양성을 전제로 함에 반해 민간보험은 개인의 의료 필요를 근거로 하고 있고 임의가입이 원칙이다. 민간보험은 개인의 건강 상태, 가족의 건강, 과거에 병을 앓은 기록, 생활습관, 취미 등과 같은 개인적인 위험 요인을 고려해 보험료를 부과하는 반면, 공적보험은 보험 가입자 전체의 위험 수준에 따라 능력(소득수준)에 따라 형평하게 부과된다. 공적보험은 건강문제의 해결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공적 가치체계에 기초한 반면, 민간 보험은 개인의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며,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스스로 해결한다는 가치 체계다. 정부는 의료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민간의료보험도입과 영리병원 설립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현행 건강보험제도가 국민의 의료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산업의 발전과 영리병원 설립으로 민간보험제도의 도입을 허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보험사들은 개인을 상대로 민간보험 상품을 판매할 것이며, 또한 노인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됨과 동시에 만성질환에 대한 관련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보험이 도입되면 경제력 있고 건강 상태가 양호한 부유층이 이탈하고,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저소득층만 남게 돼 건강보험재정 악화로 이어져 결국 공적보험인 건강보험이 위축되므로 인해 서민층이 받는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이 클 것이다. 민간보험 활성화는 경쟁력이 있고 서비스의 질이 높은 병원은 공보험의 취급을 기피하고 민간보험과 계약을 체결, 수익증대에 치중하는 반면, 경쟁력이 없고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은 병·의원들은 민간보험과 계약을 하지 못한 채 공보험체계 내에 남게 되는 양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자원의 집중이 이뤄짐으로써 인력, 시설, 장비, 재원 등 자원 배분의 왜곡이 발생한다. 의료체계에 대한 체계적인 기획이 어려워지고 민간보험회사의 이익 추구 경향과 경쟁의 양상에 따라 보건의료에 투입되는 재원의 양과 분포가 결정됨으로써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적정 재원 조달과 배분이 어려워진다. 또 의료계에서는 병원계를 중심으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보험업계는 기존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어 민간보험 활성화를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반대로 시민 및 노동단체에서는 민간보험 도입을 저지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입장에서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본인부담률은 입원 34%, 외래 64%로 매우 높고, 본인부담 중 비급여 본인부담과 법정본인 부담금이 각각 전체 본인부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현재 절반 수준의 보장성을 중장기적으로 80%이상으로 확대해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보험급여 확대 적용을 위해 필요한 소요재정을 파악 국민에게 설득하고 적정한 보험료 부과로 수입을 확충해야 한다. 노인인구 증가, 고가의 신약 등재 등으로 인한 약제비 증가에 대해 중장기적인 약제비 절감 대책 마련이 필요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공보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국민을 위해 일하고 찾아가는 서비스 제공으로 꼭 필요한 건강보험제도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5.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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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박애주의 지난 주 내내 내린 폭설로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날씨가 추우면 서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지기 마련이다. 세상이 어렵고 힘들수록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며 언 손을 잡아줘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일진데, 그게 쉽지 않다. 지금 지구촌에 수많은 봉사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국제적십자다. 이 단체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인도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03년 국제적십자운동에 가맹, 1905년 대한적십자사를 창설했다. 올해로 꼭 100살이다. 잘 알다시피 국제적십자는 스위스 인도주의자 앙리 뒤낭(Dunant, Jean-Henri, 1828~1910)이 1863년 민간기구로 창립한 빈민구제를 위한 국제기구다. 흔히 적십자 운동을 떠올리면 ‘레드 크로스(적십자)’가 연상된다. 또 이 운동에 관심있는 이라면 ‘레드 크레슨트(적산월, 그믐달 모양)’도 떠오를 게다. 지금까지 적십자의 상징물로는 이 두 가지가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다이아몬드 형을 본 뜬 ‘레드 크리스탈(적수정)’이 세번째 상징물로 결정됐다. 물론 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앙리 뒤낭의 박애사상에 근간을 두고 있다. ‘레드 크리스탈’이 국제적십자 운동의 또 다른 상징물로 결정된데는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컸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과거 두 상징이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나타내는 것이라며 제3의 상징으로 ‘다윗의 별’을 고집했다. 다윗의 별을 변형한 적수정은 종교와 문화적 의미를 함축하지 않는다는 게 설득 이유다. 아무렴 어떤가. 적십자이건, 적산월이건, 적수정이건 그 안에 담겨 있는 공통 분모는 ‘사랑’이지 않은가.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단다.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과 연탄 한 장이라도 나눠보자.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칼럼
남도일보
2005.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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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긴장과 도전을 상실한 정치 "...(특정지역 몰표에 의존하지 않고) 치열하게 경쟁해야할 지역구에선 늘 긴장과 도전에 시달린다. 따라서 이들은 쉴 새 없이 암중모색하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쉽게 당선된 의원들은 긴장과 도전에 약하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현상 유지의 경향을 보이기 쉽다..." 마치 텃밭의 기득권에 안주해왔던 과거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을 향한 질타같다. 탄핵역풍 덕택으로 엉겁결에 당선된 지금의 열린우리당 이 지역 의원들도 그 대상인 듯 싶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말은 또 다른 지역주의의 수혜자들인 영남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가해진 따끔한 비판이다. 같은 당 서울출신인 정두언 의원은 지난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한나라당에서 의원생활을 해보니 이 당은 고질적인 무기력증에 빠져있다"면서 그 원인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로 ‘영남당‘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당이 어려운 곳에서 당선된 경쟁력있는 인사를 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을 움직이는 사람은 언제나 영남출신이라는 것이다. 쉽게 당선된 이들은 한가하고 배부른 까닭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잃는 것부터 따지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그나마 애매모호한 태도로 질질 끌다가 결정한다고 비꼬았다. 이런 현상들이 어찌 한나라당 뿐이었겠는가. 이 지역 민주당 의원들도 유사한 행태를 보이다가 오늘날과 같이 몰락했다는 것이 비교적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그야말로 막대기만 꽂아놔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무엇때문에 긴장했을 것이며 무엇때문에 힘들게시리 도전할 생각을 했겠는가. 선거가 정 힘들면 애걸복걸해서 DJ가 자신의 선거구를 한번 더 지나가도록 하기만 하면 됐으니 경쟁력과 면역력이 애당초 생길 리 만무했던 것이다. ‘호남당‘은 그렇게 초미니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와중에 또 다른 ‘호남당‘이 된 현재의 여당도 그리 ‘긴장과 도전‘의 미학을 존중하고자 하는 모습들은 아닌 성싶다. 지난 1년반동안 중앙에서 호남의 목소리를 제대로 한번 내본 적도 없는 그들이 엊그제야 겨우 ‘호남 민심을 반영할 사람을 다음 지도부에 반드시 포함시키자‘고 했다는 것이다. 여론의 지지도는 하락하고 인기는 갈수록 하종가를 때리니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절박함을 이제야 느꼈던 것일까. 내년초부터 숨가쁘게 진행될 원내대표 경선과 전당대회에서 이들이 과연 얼마나 호남몫을 정당하게 되찾아올지는 모를 일이나 그간의 느슨하고 수세적인 행태들로 봐서는 별로 기대할 게 없을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가 다섯달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지역이 이제 더 이상 그 누구의 싹슬이판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각 정당은 이제야말로 긴장과 도전을 체질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은 셈이다. 특히 이 지역 진입을 엄두도 못냈던 한나라당도 한번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도 시늉이나 모양내기에 그칠 게 아니라 호남 유권자들이 ‘제 아무리 한나라당이라도 너무 인물이 아까워 찍을 수밖에 없는‘ 인재를 고르고 또 골라 영입해준다면 우리의 정치는 진일보할 게 틀림없다. 그런 인재가 과연 한나라당에 들어오겠느냐는 의문도 들 것이다. 그러나 거대야당이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패배주의적 발상을 한다면 정의원의 말처럼 웰빙정당의 굴레를 벗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 그런 식으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준다면 그 자체만으로 의미는 매우 크다. 도전의식이 상실된 정치세력들이 맥없는 선거를 치르는 광경을 이 지역 사람들도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선거과정에서 긴장하는 정치인들만이 당선된 뒤에도 기운차게 움직일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어쨌든 지역에도 정치권에도 활력을 확대재생산하는 계기가 돼야만 한다.
칼럼
최혁
2005.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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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논단]광주국제영화제 확대 지원 필요-광주시의회 최영호 의원 광주국제영화제는 2006년 제6회 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시비전액이 삭감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다. 광주광역시의회는 최종적으로 12월 13일 제2차 본회의에서 국제영화제 관련예산 시비3억원의 삭감을 의결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광주국제영화제는 시민참여도 저조, 정체성 결여, 비효율적 조직구조 등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 왔고, 거기에 내부진통까지 겹쳐 5회 대회 때에는 행사 두 달을 앞두고 조직위원장이 변경되는 등 악순환을 되풀이 해 왔다. 유료 관객 면에서도 2003년의 경우 3만3천 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으나 지난해와 올해의 경우 2만5천 여 명 수준에 그쳐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국내6대영화제를 비교한 한국관광정책연구원의 평가에서도 최하위로 평가되기도 한 바 있다. 위와 같은 상황을 지켜본 광주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광주국제영화제가 계획성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위원들의 지적에 따라 예산 전액을 삭감하였고 본회의에서 그대로 의결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광주국제영화제 예산삭감은 광주의 문화수도로서의 위상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구도청일원에서는 아시아문화전당건립을 위한 기공식행사가 있었는데 앞으로 아시아문화전당이 완공되고 이를 잘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이 공간을 체울 문화적 컨텐츠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그런데 당장의 상황에만 주목하여 광주국제영화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예산삭감은 성급했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올 8월초 영화제개혁특별위원회가 발족되어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하여 기존의 조직위원, 이사, 집행위원, 사무국 직원을 해산하고 타 지역 영화전문가(임권택, 강우석감독등)를 영입하여 조직위를 새로 구성하였다. 더불어 영화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인간중심, 아시아문화중심, 첨단영상중심 영화제를 지향토록 정관을 개정하고 그 목적으로 명시하는 등 영화제 구성원이 자구노력을 하고 있어 이러한 과정을 배려하지 않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비록 그간의 영화제운영에 비판 일변도였고 그 성과 면에서도 미흡한 점이 있었으나, 광주는 중앙정부가 한국의 문화수도,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산업자원부, 문화관광부의 지역별 문화산업육성방안에서도 광주의 디자인, 케릭터, 영상산업분야를 지원토록 돼 있는바, 이와 관련하여도 영상산업 분야는 국제영화제 개최가 가장 좋은 방안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즉, 문화산업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컨텐츠가 영상산업이고 영상산업에서 뺄 수 없는 것이 영화산업이라면 이는 광주국제영화제가 존속되어야 할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영화제중 광주국제영화제를 포함하여 6개의 영화제만이 국비지원을 받고 있으며, 이외의 영화제(제천국제영화제, 속초공포영화제, 제주국제영화제)가 자치단체 부담만으로 개최되고 있는바, 이는 이미 국비를 지원받고 있는 광주국제영화제를 존속시키고, 활성화하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광주에서 치러지는 각종 문화행사 중 비엔날레와 국제영화제만이 국비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그간 광주국제영화제가 그 운영과정이나 성과 면에서 문제점이 적지 않았지만 광주가 문화수도라는 점, 국비를 지원받아 문화행사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광주시는 추후로 추경예산을 편성해서라도 광주국제영화제의 원활한 개최를 도모해야 할 것이고 아울러 문화수도광주의 위상에 걸맞는 영화제가 개최될 수 있게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5.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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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진실과 사실의 게임 요즈음 언론매체에서 서울대 황우석교수의 논문에 대한 진실 공방이 한창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진실은 하나인데 사실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하나의 예화를 소개하자면 한 나그네가 인적이 끊긴 황야를 걷다가 혼자 사는 여인을 만났다. 그때 낯선 사나이를 보자마자 고개를 수그린 여인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나그네가 물었다. 그녀는 “진실의 여신(女神)입니다”고 대답했다. 나그네는“그럼 왜 마을을 버리고 이런 데 외롭게 살고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별로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에서만 허위를 만나 볼 수 있었지만, 요새는 허위가 모든 사람이 사는 곳에 까지 와서 설치기에 사람들이 듣는 것, 말하는 것 등 모두가 거짓투성이가 되어 버렸답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여인은 “아득한 옛날 진실과 허위가 함께 냇가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목욕을 먼저 끝낸 허위는 슬쩍 진실의 옷을 입고 가고, 뒤에 냇물에서 나온 진실은 허위가 입던 옷을 입기가 싫어서 그냥 벌거벗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다닙니다.” 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허위는 진실인 체 가장하고 다니고, 진실은 숨어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진실은 허위에 맞설 만큼 강하지도 못하고, 언제나 허위를 피해 다닐 수밖에 없으며, 진실만이 아름다워야 되는데도 오히려 거짓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이다. 일반대중은 따분하고 싱거운 진실보다 멋진 거짓말을 더 좋아한다. 또 진실이 그곳에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전부가 진실인 것처럼 여기기 쉽다. 엄격한 의미에서 진실은 사실과 다르다. 둘은 형제지간도 아니다. 이웃사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중들은 당장에 눈에 보이는 사실만 보고 만족해한다. 그 뒤에 숨은 진실에 대해서는 애써 눈 감으려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법 위에 있다” 고 한다. 그것은 법만으로는 진실을 가려내지 못 한다는 뜻도 된다. 법은 정의의 대변자이지만 그렇다고 진실과 정의가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신들은 보다 강한 쪽의 편을 든다”고 말한 타키투스의 말대로 옛날부터 정의란 힘 있는 쪽, 이기는 쪽을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진실처럼 고귀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진실처럼 무서운 것도 없는 것이다. “진실의 불이 타오르게 되면 옥이든 돌이든, 귀한 것이든 천한 것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태워버리게 된다.”라는 서경(書經)에 있는 말을 황교수의 사건을 보면서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혼란스럽고 특히, 진실이 은폐된 사회 속에서 살다보니 아마도 우리사회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칼럼
남도일보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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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골에서]“검찰의 존재 이유가 뭐지?”-김선기 논설위원 “내~참, 이럴 줄 알았지! 이거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냐? 기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도대체 검찰이 뭣 때문에 존재하는 지 이유를 모르겠어!” 어제 출근하자마자 본사 논설실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K씨였다. 그의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엔 짜증스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안기부·국정원 도청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갖가지 궁금증을 해소했지만, 삼성의 ‘방패’를 끝내 뚫지 못한 검찰의 행태에 대해 부아가 치밀었던 게다. 그제 밤 뉴스를 통해 이같은 소식을 접하고 분노치 않은 사람이 어디 K씨 뿐 이었겠는가. 정보기관 도청 수사를 마무리 한 검찰이 삼성의 1997년 대선자금 전달 의혹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홍석현 전 주미대사를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이 회장 측이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성씨에게 제공한 40억~50억원이 개인돈”이라고 주장할 것이란 건 어느정도 예상된 일이다. 그렇게 해야 특경가법상 배임 및 횡령죄를 피할 수 있을 터이고, 검찰이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정치자금법 위반죄에 불과해 ‘공소시효 완료’라는 방패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엄격한 증거에 따라 수사하고 기소하겠다는 검찰로서는 이 회장에 대한 물적 증거가 나오지 않은 만큼 ‘불기소 처분’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삼성측 피고인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 의혹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전원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은 누가 보아도 ‘재벌 봐주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어제 오전 K씨가 짜증스러움을 표출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도청 파문이 우리에게 충격을 준 것은 정보기관의 무차별적인 도청 실태 외에 재벌과 일부 언론사 사장이 암암리에 특정 대선 후보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참여연대가 도청 행위를 제쳐놓고 이 회장과 홍 전 대사 등 20여 명을 고발한 것도 재벌과 정치권, 언론의 유착 실태를 검찰이 밝혀주길 기대해서였다. 검찰도 국민들의 여망을 의식해 “거악(巨惡)을 만나면 기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초기엔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 본 지금, 대대수의 국민들은 실망감을 넘어 공분에 가까운 심정이다. 물론 검찰내부에서도 ‘도청 테이프’만으로 수사를 이끌어가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건 당사자들까지 이 회장 개인돈이라고 입장을 번복해 수사의 어려움이 없진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국민적 정서는 검찰의 입장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사실, 검찰이 도청 실태에 대해서는 국정원 압수수색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실체 파악에 진력했다. 그러나 삼성 불법자금 건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의 삼성 계열사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고, 의혹을 풀어 줄 이 회장도 ‘면피성’이나 다름없는 서면조사로 대치하지 않았던가.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달리 설명 도리가 없을 것이다. 더욱 우리를 공분케 하는 건 삼성측이 일부 검사들에게 건넨 ‘떡값 의혹’에 대한 무혐의 판정이다. 이학수 부회장과 홍 전 대사, 거론된 검사들 모두 관련 의혹을 부인했고, 설령 돈을 받았다고 해도 5천만원이 넘지않아 특가법 적용이 어렵다는 게 이유다. 아무리 가재는 게 편이라지만, 검찰의 구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더 재밌는 사실은 안기부 도청 내용을 통해 1997년 대선을 앞둔 추악한 거래의 현장을 취재·보도한 기자들에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를 내린 점이다.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K씨의 투정처럼 ‘대한민국의 검찰은 누굴 위해, 또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어제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kims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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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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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 재론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고백이지만 하나의 사건, 하나의 인물, 하나의 행동, 하나의 변화, 하나의 작품이 얼마나 파격적인가 하는 것에 쏠리고 있다. 어떤 사건도 어디선가 같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싶으면 별로 관심이 없다. 인물도 그렇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표정이 한결같고 그의 행동반경이 일정하면 나의 관심에서 벗어난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작품이 작가의 관습적 틀을 가지고 그 안에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다룬다면 나는 금방 싫증이 난다. 내가 싱가포르 리콴유 수상에 관심을 갖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고 생각된다. 25년 동안의 장기 집권을 마감하고 그가 수상직에서 스스로 물러선 것은 1990년이었다. 그 때 그의 모교였던 캠브리지 대학은 그에 대한 화제로 넘쳤다. 그를 소개한 행사가 이어졌고, 그의 성취와 그의 사상에 대한 토론이 있었고, 그의 생애에 대한 회고와 그의 앞날에 대한 전망이 언급되었다. 우연히 같은 시기 캠브리지에 유학하고 있던 나는 그의 지론인 아시아적 가치에 대하여 최초로 접하게 되었다. 밤낮 주변에서 서구적 가치가 일반화되고 있는 현장에서 아시아적 가치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아시아적 가치를 그는 공자의 가르침에 두고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에 관심이 없지 않은 현실에서 오늘 우리는 공자에 대한 언급에 용기가 필요하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러나 그 용기는 리콴유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1945년 일본의 점령이 끝나자 다시 영국군이 진주하고 한동안 싱가포르의 혼란은 해방후 한국의 혼란과 유사한 것이었다. 혼란의 한 가운데 좌·우익의 투쟁이 있었다. 거기에 가난과 중국 말레이족 등 다민족 간의 갈등이 겹쳤다. 그러나 그런 혼란 속에서 그를 지탱해 준 것은 가족이요, 또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수신(修身) 제가(齊家)를 앞세운 공자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아시안 정상회담에 앞서 12일자 TIME지가 커버스토리로 리콴유를 싣고 있다. 상·하권의 그의 자서전을 읽은바 있고 CNN 등 그에 대한 보도를 가급적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는 당연히 그와의 인터뷰 기사에 관심이 갔다. 그 기사 가운데 그가 최근 읽고 있는 책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는 요즘 17세기 스페인의 소설 돈키호테에 탐닉하고 있었다. 냉철하고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이고 경제 제일주의적인 그가 황당무계하고 이상주의적인 돈키호테에 매료되고 있다는 것은 나의 말에 의하면 파격적이고 매력적인 것이다. TIME지는 정상회담에 앞서 리콴유를 인터뷰한 까닭을 그가 아시안 정상회담의 산파역임을 들고 있다. 그의 구상은 아시아 각국을 EU처럼 공동체로 결속하고 싶은 것이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당초의 동남 아시아 국가 외에 한·중·일등 동북아 3국과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를 합쳐 말하자면 평천하(平天下)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 그처럼 치국(治國)에 성공한 사람은 흔치 않음을 고려할 때 그의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를 거론함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미국 등 그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다. 가부장의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일당 독제이고 부자세습이고 비시대적이란 것이다. 필리핀에서 볼 수 있듯 미국적 체제의 답습이 얼마나 국가를 추락시켰는가를 고려할때 미국의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집중적인 생활 속에 젊은이의 창의력이 손상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중국의 문제요 역설적으로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시안 정상회담을 계기로 리콴유를 만나 ‘세계에 한국 노동자가 구상하는 이상은 없다’고 비판한 그의 아시아적 가치를 섭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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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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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자선냄비 해마다 이 맘때면 어김없이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해 성탄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한 해가 그렇게 지나고 있음이다. 어제 충장로 광주우체국 앞에서 구세군 자선냄비가 첫 선을 보였다. 총총걸음으로 자선냄비 앞에 다가가서 동전을 넣는 서너 살 바기 아이의 모습은 상상해 보라. 세상에서 이 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있을까? 자선냄비의 유래는 1891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선냄비 종소리가 처음 울렸다.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여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1천여 명의 사람들을 먹여야 했던 한 구세군 사관(조셉 맥피 정위)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그는 오클랜드 부두로 나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거리에 내걸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사관의 깊은 마음이 오늘날 전세계 100여개 국에 전파돼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조셉 바아) 사관이 서울의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한 것이 그 출발이다. 구세군 냄비의 빨간색이 ‘보혈(寶血)’을 의미하 듯, 그 정신은 오늘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이웃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올 겨울은 유독 춥다고 한다. 요즘에는 폭설까지 속절없이 쏟아지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빙판세상을 녹일 수 있는 건, 우리의 뜨거운 가슴 밖에 없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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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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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PD수첩, MBC, 한국 기초과학 정책- 조옥현 문화체육부장 반공 이데올로기가 한창이던 60년대와 70년대, 나아가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학교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배웠다. 북한에서는 새벽별보기·저녁별보기 운동, 천삽뜨고 허리펴기, 천리마운동을 통해 공산정권이 주민들을 억압한다는 내용이었다. 새벽과 저녁별을 보는 운동은 그만큼 쉬지 않고 노동을 한다는 것이요, 천삽뜨고 허리펴기운동도 죽도록 일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북한의 실상은 노동강도만을 강요한 지상 최대의 지옥이라는 표현이었다. 그게 정녕 있었는지,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설명도 없었다. 초·중·고의 교과서도 북한 공산당을 뿔 달린 마귀로 삽화처리해 가르쳤다. 당시 출몰했던 간첩이나 공비를 체포한 군인 경찰이 그들이 정말로 뿔이 달렸는지 조사까지 해봤다는 일화는 이데올로기 교육이 얼마나 국민정서를 송두리째 획일화 시켰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유언비어처럼 날포된 소문은 겉잡을수 없이 퍼지는 속성이 있다. 80년 5·18광주항쟁때도 “술취한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씨를 말리고 있다”는 말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시민들의 저항은 더 커졌고, 이에따른 군인들과의 충돌도 더 심해졌다고 한다. 이처럼 획일화된 소문은 군중심리를 동원하게돼,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소령’의 말처럼 ‘두다리로 걷는 자는 적이고, 네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자는 우리 편’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만이 통용되게 된다. 이는 사회규범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국가권력마저 무력화 시키는 일로 번지기 십상이다. 국보급 학자인 황우석 박사가 요즘 매우 힘들어 보인다. 국민들의 정서는 존경할만한 학자가 괜한 헛매질을 당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그 매질을 가한 특정 언론매체에 돌멩이를 던지고 있다. 이번 사건만을 놓고 볼 때 취재윤리를 벗어난 무리한 탐사보도가 빚어낸 부작용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이번 일을 기화로 정부 당국은 국보급 학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고, 기초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를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본연의 연구에만 몰두하는데 어떤 애로가 가로막고 있었는지를 찾아내 개선하고 배려해줘야 하는지를 배웠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같은 애로사항을 해결해 내지 못하면 100명의 황우석 박사가 나타나도 우리나라는 과학분야의 노벨상 수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가의 근간이 되는 기초과학의 발전을 가져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울러 해당 매체인 MBC는 단순히 돌멩이만을 피하기 위한 임기응변적인 조치는 철회해야 한다. 15년동안 900여건의 탐사보도를 해온 ‘PD수첩’을 이번 일로 없애서는 안된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아무도 건들지 못했던 분야를 집중적으로 진단해 왔다. 수많은 협박과 회유, 소송도 불사하며 민주사회로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취재윤리까지 제쳐두고 안하무인격으로 취재한 행태가 잘못된 것이지, 보도국 기자들이 다루지 못한 분야를 PD들이 나서서 탐사해 보도한 프로그램으로서의 가치는 인정받아야 한다. 뉴스시청률 하락, 드라마 몰락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성난 분노를 잠재우고, 반전을 꾀하고, 돌파구를 찾고자 ‘PD수첩’을 폐지한 것은 이해할수 있지만, 탐사보도 프로를 없앤 것은 더욱 잘못된 악수다. 성역없이 취재해온 탐사보도를 없애고 오락과 드라마, 쇼 프로그램만 늘어나게 된다면 그 어떤 프로그램이 ‘견제와 균형’을 맞추겠는가. ‘견제와 균형’을 맞추지 못한 TV는 그야말로 바보상자가 될게 너무나 뻔하다. 조옥현 문화체육부장 oken@namdonew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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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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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乙酉年에 되새겨보는 의미- 김호남 대한주택건설협회 광주·전남회장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연구, 호주제 폐지, 북핵문제, 6자회담, 중국의 역사왜곡과 일본과의 독도문제 갈등등 수많은 이슈들을 뒤로 한채 을유년 한해도 그 막이 내려지고 있다. 올 한해 우리사회는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서 진보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주택정책에서만큼은 거꾸로 움직인 해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싶다. 올해 연이어 발표된 이른바 ‘주택시장안정대책’은 그 내용을 뜯어보면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이전에 폐지했던 정책들을 다시 끄집어낸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흔히 정책의 일관성이 없음을 두고 인용하는 ‘조삼모사’라는 말은 그 우화가 기록된 원전에 따라 비유의 의미가 다소 다르다. 열자(列子)의 황제편(黃帝編)에 나온 얘기는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속이는 의미로서 ‘조령모개’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서는 귀일(歸一)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어느 의미가 되었든 간에 올해 잇달아 발표되었던 주택정책들을 보면 조삼모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에 충분하다. 주택시장 부양책을 줄곧 써오다 주택시장이 조금 살아난다 싶자 안정대책으로 급격히 선회한 것이 하나의 의미고, 주택정책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다는게 다른 하나다. 모름지기 정부의 정책은 일관성을 갖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책이 일관성이 없으면 그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국민들의 생활에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사업하는 사람이나 상인, 샐러리맨 모두 마찬가지다. 사업계획, 가계운용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이는 크게 보면 거시경제에도 큰 손해가 된다. 특히 주택정책은 국민의 기본생활권의 하나인 주생활(住生活)과 직결된 문제다. 내집마련을 하려는 서민들은 국민의 주택정책만을 기대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리면 어찌 되겠는가?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적어도 몇 년앞은 내다볼줄 아는 정책수립이 필요하다. 현재의 시장분위기를 보면 정부의 8·31부동산대책은 나름대로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때 미봉책에 불과할뿐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지역에서는 시장분위기가 급격히 하강곡선을 그림으로써 건설업체들이 자의반 타의반 분양을 연기하고 있다. 주택업체의 입장에서는 계획한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시키지 못할 경우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벌써 일부 업체들에서는 주택사업의 비중을 축소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는 움직임이다. 중국고사에 ‘우공이산’이란 말이 있다. 이는 한가지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산을 들어서 옮길만큼 큰일을 해낼수 있다는 의미고, 또한 당장의 현실보다는 먼 앞날을 내다보고 한가지 일에 전념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이 고사의 오늘날 의미는 전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이 전문화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판교신도시등에 공영개발방식을 도입한데 이어 공사발주까지 턴키방식을 추진하고 있어 이것이 현실화되면 대형업체들이 공영개발택지의 아파트 공사를 독식하고 중소주택업체의 참여제한 가능성이 커져 대형업체와 중소업체간의 양극화현상이 더 심화될 우려가 높다. 공공기관이 주택을 건설해 공급하는 주택공영개발방식은 주택시장 자율화 기조에 역행하고 주택의 획일화와 주택수요에 대한 정부의 능동적인 대처마저 힘들게 만들게돼 이의 보완책이 분명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간부문의 택지개발을 허용, 안정적인 주택공급과 주택시장의 균형발전을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책 입안자들은 예측가능한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될때만이 국민들이 장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5.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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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보상심리 사회가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체감하며 살고 있다. 사회현상 가운데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곧 언어다. 어느 언어학자의 말처럼 ‘언어는 시대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요즘에 유행하는 신조어 중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라는 게 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헬리콥터처럼 주변을 맴돌며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미국의 열성 학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학교행정에 지나치게 개입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헬리콥터 부모’는 우리에게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특히 아들이든 딸이든 한 명만 낳는 사회 풍조가 확산되면서 헬리콥터의 ‘소음’도 덩달아 커졌다. ‘헬리콥터 부모’의 사회적 출현은 창의적이고 진취적으로 성장해야 할 우리 아이들의 심성을 망가뜨리고 있다. 물론 그 폐해도 만만찮다. 그들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마마보이’나 ‘파파걸’로 만들기 십상이다. 뿐 만 아니라, 직장을 가질 나이가 됐어도 빈둥빈둥 노는 젊은이들을 양산하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설령 이들이 취업을 해 경제적 능력이 있더라도 독립해 살기보다는 부모에게 얹혀살며 손을 벌리기 일쑤다. 부모들 역시 이들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온실’이 되어줄 자세가 돼 있다. 그렇다면 ‘헬리콥터 부모’의 출현 배경은 뭘까. 가족제도를 중히 여기는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전통과 함께 최근의 고실업률 등 경제난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위험과 책임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요즘 젊은이들의 안이한 태도다. 솔직히 과거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부모들은 일종의 ‘보상심리’로 자식들을 과잉 보호하는 경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혹여 지금 우리도 ‘헬리콥터 부모’는 이닌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칼럼
남도일보
2005.12.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