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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시한폭탄 ‘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 용어를 쓰는 무기로는 핵폭탄이나 수소폭탄, 시한폭탄 정도를 들 수 있다. 핵폭탄은 말 그대로 플로토늄이나 우라늄 등을 사용해서 만든 폭탄이다. 원자탄과 플로토늄탄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수소폭탄은 핵이 융합 될때 생기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핵폭탄은 아니다. 그리고 시한폭탄이란 게 있는데, 이것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터지는 폭탄을 말한다. 즉 설치자가 몇 시간, 몇 분, 혹은 몇 초 뒤에 터지도록 설정해 두는 것이다. 특히 이 폭탄은 특수부대 요원이나 테러리스트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달 28일,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째깍거리던 ‘시한폭탄’이 폭발했다. 프랑스 클리시부아라는 빈민도시에서 두 명의 청소년이 경찰의 추격을 피하다 감전사 한 것이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번 소요사태는 세브랑을 비롯해 올네수부아, 봉디 등 파리 교외 9개 도시를 거쳐 8일 현재 프랑스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 날까지 불에 탄 차량은 4천30여대, 체포된 사람만도 1천여 명에 달한다. 시한폭탄의 위력은 대단했다. 프랑스 빈민도시의 소요 사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 된 시한폭탄’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프랑스는 부자의 나라와 빈민의 나라,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이번 빈민지역 소요 사태의 원인은 다문화주의 미명아래 이슬람 이민자를 위한 통합정책 실패와 청년실업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슬람 이민 1세대의 불평등은 자식들까지 대물림 돼 ‘2류 시민’으로 취급 당했다. 그것이 화근이다. 프랑스 사태,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 보자. 40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와 200만이 넘는 청년 실업자, 노동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비정규직 근로자…. 이 모두가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시한폭탄’이 아닌가.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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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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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승복문화’는 아름답다 -오치남 제2사회부장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건설 후보지 확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최종 후보지로 선정된 곳에는 한국전력과 농업기반공사 등 광주·전남에 배치된 17개 정부 공공기관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 예정이다. 그러나 혁신도시 건설 대상지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혁신도시입지선정위원회는 후보지를 나주시 금천·산포·봉황면 일원과 담양군 수북면 일원, 장성군 동화·황룡면 일원 등 3곳으로 압축한 상태다. 이른바 예선을 치른 셈이다. 본선은 이들 3곳을 대상으로 한판 대결이 예고돼 있다. 8일까지 현지에 대한 항공 및 육상 현지 실사가 이뤄졌다. 이어 11일까지 이전대상기관 의견서가 나오면 입지선정위원회가 최종 후보지를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에게 통보한다. 시·도지사는 오는 15일께 정부에 보고한 뒤 최종 대상지를 동시 발표할 예정이다. 문제는 일부 지역에서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반발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주와 담양, 장성 등 예선을 통과한 3곳 모두 전남지역에서 낙후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 3곳 가운데 최종 후보지로 낙점된 곳은 지역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모처럼 찾아온 기대감을 어찌 꺾을 수 있겠는가. 이들의 반발에는 내년 지방선거를 둘러싼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으나 시·도지사의 엄정 중립 요구 등 일부 주장의 경우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지역 발전의 사활이 걸린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최종 후보지에서 탈락한 2곳의 반발이 혁신도시 건설에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데 대해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이미 후보지를 발표한 전북과 경남의 선례를 밟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입지 선정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당초 비공개 원칙이었던 후보지 3곳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땅값 폭등과 주민 불편, 행정력 낭비 등을 초래했다. 탈락 지역의 반발 및 후유증을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6곳에 대한 예선을 거쳐 3곳으로 압축한 것도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 후보지는 단 한 곳일 수 밖에 없다.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 ‘특정지역 사전 내정’도 ‘설(設)’일 뿐이다. 나주·담양·장성 가운데 어느 지역이 최종 후보지로 결정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자기 지역에 혁신도시를 유치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올인하는 것은 지자체나 지역민들의 당연한 임무다. 이를 탓하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한 처사다. 하지만 최종 후보지가 확정되면 나머지 2곳 지자체와 지역민들이 축배를 함께 들어주는 미덕(美德)도 요구되고 있다. 광주·전남에서 혁신도시 건설과 관련, 평가 결과를 검허하게 받아들이는 ‘승복문화(承服文化)’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주로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승복문화’가 이번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후보지 선정에서 이뤄질 경우 이 지역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전 국민의 뇌리에 남을 것으로 기대된다. 광주·전남의 아름다운 승복문화가 전국에 울려 퍼지기 위해선 입지선정위원들의 공정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사심을 버리고 광주·전남 공동발전이란 장기적 안목으로 최종 후보지를 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혁신도시 최종 후보지 발표는 1주일도 남지 않았다. 누가 봐도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선정위원들의 노력을 거듭 당부한다. 시·도지사는 끝까지 중립을 지켜 한 점의 오해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자신들의 이해 관계나 정략적 차원을 떠나 선정위원들의 평가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승복 대신 불복문화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ocn@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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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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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지역기업의 적극참여가 여수박람회 개최의 열쇠 지난 9월3일 오전 11시 여수공항을 출발하는 전세기를 타고, 일본 나고야 중부 공항에 12시 20분께 도착했다. 중부 공항은 아이치 박람회를 위해 7조원의 민간자본을 투입, 바다 위 56만평의 인공섬에 조성했는데 비행기가 한 번 착륙하는 데 65만엔의 착륙비를 받는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아이치 박람회가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첫 관문이었다. 이번 박람회는 지난 3월25일부터 9월 25일까지 개최됐다. 박람회장은 52만평으로 3조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투입된 예산의 40%는 민간 기업이 지원하고, 50%는 국가에서, 10%는 자치단체에서 투자했다고 한다. 박람회의 하루 관람객만 25만명 이상. 관람객이 대중교통을 이용토록 하기 위해 출입구 내에는 장애인, 어린학생을 수송하는 버스 주차장이 설치돼 있었고, 입구 밖에는 일반인들의 버스 주차장이 배치돼 있었다. 자가용 차량은 원거리에 주차하도록 해 대중교통을 이용토록 설계돼 있었다. 박람회장은 계곡을 자연 그대로 이용, 산의 중간쯤에 철근 골조로 기둥을 세우고 목재로 만든 간이도로를 타고, 내부를 한바퀴 돌아 볼 수 있도록 시설했다. 참가국마다 고유문화와 문물을 소개하는 국가관을 만들었으며 특히 한국관과 일본관을 구경하려는 입장객들로 장사진을 이뤄 2∼3시간을 기다려야 구경이 가능했다. 모든 안내판마다 한글이 표기돼 있어 한국 사람들은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돼 있었다. 관람을 마친 후, 오사카로 이동해 35년 전에 개최됐던 ‘오사카 만국 박람회장’을 관람했다. 이곳에는 당시에 세워졌던 ‘태양의 탑’만이 서있고, 대부분의 시설은 철거된 채, 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고 남녀 학생들은 비를 맞으며 견학을 하러 오고 있었다. 박람회장 견학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우리 여수도 세계박람회를 개최해야겠다는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과연 현재의 여건으로 개최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치 박람회장의 시설 소요경비 3조원 중 40%를 지역기업체에서 부담했다는 안내를 들으면서 일본 기업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기증하는 것과 같이 여수세계박람회도 많은 기업들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 도로·공항·철도·항만 등 사회간접 자본 투자시설을 조기에 확충한다면 여수박람회도 성사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러한 지원이 단기간에 이뤄 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삼랑/전 여수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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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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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디오게네스 & 홈- 김호남 주택건설협회 광주·전남회장 과거 학창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수많은 세계위인들에 대해 공부했는데 그중에 유독 특별한 일화로 인해 잊혀지지 않는 디오게네스란 그리스의 철학자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당대 불세출의 영웅이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남긴 에피소드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동쪽으로는 인도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더스강에서 남쪽으로는 이집트까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가 어느날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는데 늘상 통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몸소 그를 찾아갔다. 아닌게 아니라 디오게네스는 통속에 들어가 있으면서 그 호화찬란한 알렉산더대왕의 행차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앉아 있었다.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의 너무도 당당한 태도에 마음이 동해 그에게 “스승이여, 나에게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반드시 다 들어드리오다”라고 했다. 이에 디오게네스는 아무것도 필요없으며 “다만, 왕이여 어서 빨리 내 통앞에서 물러나 주시오. 당신이 통앞에 서 있으니 햇빛이 가려집니다.” 라고 대답했다. 다른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고 오직 지금은 햇볕을 쪼이는 것만이 소원이라는 의미였다. 거의 예외없이 자신의 말이라면 머리를 조아리고 감읍(感泣)하는 것이 당시 세상사람들이었을텐데 알렉산더에게는 참으로 뜻밖의 대답이였을 것이다. 그는 후에 “내가 만약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디오게네스는 원시적인 반문명의 사상을 몸으로 실천한 철학자였다. 그는 평생 의복한벌과 지팡이 하나외에는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았으며 작은통 하나를 거처로 삼아 생활했다. 그의 철학의 기본사상은 아무런 욕망을 갖지 않고 자족하며 무치(無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는 것을 추구했다. 반문명의 디오게네스철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인류의 문명이 빚어낸 지구의 환경오염은 이제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2천여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디오게네스의 정신이 필요한때가 온 것이다. 특별히 디오게네스가 몸으로 실천한 주거학은 주택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음미해 볼 만한 대목이 아닐수 없다. 그의 주거에 대한 생각은 그야말로 몸하나 눕힐 곳만 있으면 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통하나로 주거문제를 해결했다. 자연과 친화적이었던 우리의 옛 조상들의 주거에 대한 생각도 그 근본에 있어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주거관이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은 60~70년대 박정희 정권하에서 경제가 괄목할 정도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좁은 한반도, 거기에다 반으로 갈려진 남쪽의 땅덩어리위에서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가 궁극적으로 주택문제를 불러왔고 이것이 주거에 대한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주택이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닌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변질되도록 만든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주택은 다수 서민들에게 재산목록 1호가 되었다. 자신들의 재산목록에 주택을 올리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도 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서민들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양적공급에 치중해 왔지만 아직도 주택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의 주거의식의 변화가 없는 한 주택문제는 그 어떤 대책으로도 영원히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일는지도 모르겠다. 수년전부터 생활의 터전인 삭막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외의 전원주택이나 목조주택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답답하고 폐쇄된 아파트의 공간을 벗어나 자연을 찾고 창으로 통해 들이치는 햇볕을 마음껏 숨쉬고 싶은 욕망때문일 것이다. 마음껏 햇볕을 즐기며 작은 통 하나로 거처를 삼고 만족했던 디오게네스의 집에 대한 단순한 사고야말로 오늘날 복잡하고 머리아픈 우리의 주택문제를 푸는 지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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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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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 세레나데 가을의 두께가 점점 더해진다. 달 밝은 밤, 연인의 창가에서 소야곡을 부르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를 ‘세레나데(serenade)’라고 하던가. ‘맑게 갠’뜻의 이 말은 이탈리아어 ‘sereno’에서 나왔다. 16세기 이후 ‘저녁 때’를 가리키는 이탈리아어 ‘sera’와도 관계가 깊다. 이와 대비되는 음악은 오바드(aubade=아침음악)다. 흔히 세레나데를 세 종류로 나뉘고 있다. 첫 째는 밤에 연인의 창가에서 부르는 노래란 뜻으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나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대표 곡이다. 둘 째, 고전파 시대에 많이 쓰인 다악장의 기악 앙상블로도 불린다. 모차르트의 ‘하프너 세레나데’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가 유명하다. 끝으로 귀족의 생일축하 등에 쓰여진 18세기 오페라풍의 작품을 일컫기도 한다. 여기엔 세레나타(serenata)라는 이탈리아어가 사용된다. 얼마 전, 세레나데와 관련한 외신이 타전돼 눈길을 끌었다. 수컷 생쥐가 암컷에게 구애를 할 때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고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 미 워싱턴대 팀 홀리 박사 연구팀은 암컷 생쥐의 오줌에 들어있는 성(性) 페로몬(체외 분비성 물질) 냄새를 맡으면 수컷이 노래처럼 들리는 독특한 소리를 낸다는 점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이같은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수컷 생쥐가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고음파로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수컷 생쥐의 뇌가 암컷의 성 페로몬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 연구하다가 우연히 이들의 노래를 발견, 녹음한 뒤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주파대를 4옥타브 낮췄다. 그 결과 노래처럼 규칙적인 박자와 뚜렷한 음절이 확인된 것이다. 낭만이 쌓여 가는 이 계절,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준비해 보면 어떨까.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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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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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빈대잡겠다고 초가삼간을? 최근 본보를 비롯한 각 여론매체의 온·오프라인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지역내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혁신도시 후보지 결정 논란이다. 네티즌들이 찬성과 반대로 갈려 설전을 펴고 있는 쟁점의 배경은 대충 이렇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공동으로 혁신도시를 건설해 중앙에서 이전해오는 공공기관들의 수용방침을 세웠던 게 지난 7월이었다. 광주에 배치된 한전 등 3개 공공기관, 그리고 전남에 배치된 농업기반공사 등 14개 공공기관을 한데 묶어 혁신도시의 역량을 최대화시켜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광주시당측이 제동을 걸고 나온 게 문제가 됐다. 제동의 골자는 광주몫인 한전을 왜 광주가 아닌 전남에 배치해야 하느냐로 집약된다. 여기에 전남지역 여당의원들은 한술 더 뜨고 나왔다.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아하니 시·도 공동의 혁신도시가 나주·담양·장성 세곳중에 한곳으로 결정될 것같은데 그렇다면 도대체 전남 동부권은 뭐냐는 것이다. 최소한 IT관련 공공기관이 들어설 혁신도시를 동부에 건설해야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이렇게 돼자 지역민들의 의견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본보의 자유게시판에만도 찬반 각각의 주장들이 적지 않게 올라와 있다.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난감하기 그지 없다. 사실 이러한 갈등구조는 진즉부터 예견돼 왔었다. 이미 혁신도시 후보지를 결정한 다른 지역의 내홍에서 알 수 있듯 이를 둘러싼 과열경쟁과 주민간 분열 그리고 후유증 등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또 앞으로 이 지역에서도 세군데 가운데 한 곳만이 혁신도시로 선정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어서 나머지 두곳의 탈락지역들이 가만 있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걸 알면서도 해법이나 대책도 없이 그냥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나 지자체들의 무사안일함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어쩌랴. 177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이라는 사실만큼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부인해서도 안되는 시대적 명제일 것이다. 많은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파괴에 익숙한 참여정부가 아니면 과연 이같은 시도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 지역 시·도지사가 공동혁신도시에 합의했을 당시 “이것이야말로 국가균형발전의 모델”이라며 정부가 적극 권장은 물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나선 것도 다 이런 사연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찮아도 틈만 보이면 중앙의 기득권층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 재를 뿌리기 일쑤다. 최근 혁신도시 선정과정에서 탈락한 지역들이 반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지방이전 자체를 재고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정작 균형발전에 힘을 몰아줘야 할 열린우리당측이 딴지를 걸고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물론 내년에 선거도 있고 그래서 유권자들의 눈치도 봐야할 처지일 것이다. 그러나 새 정치를 해보겠다고 그 숱한 역경을 감내해가며 국민과 지역앞에 나섰던 열린우리당이 취할 자세는 결코 아니다. 어찌보면 선거를 치러야할 단체장들 입장에선 혁신도시를 이리 저리 쪼개 소지역간 나눠먹기식으로 배정해주면 훨씬 일하기가 부드러울 일이다. 그걸 포기하고 한군데로 모아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을 도모해 집적효과를 최고로 끌어올려 보겠다는 게 광주시와 전남도의 결정이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비록 소속 정당은 틀려도 이러한 방향설정에 기운을 북돋아주고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주는 게 이 지역 정치인의 도리라 여겨진다. 또 양식있는 유권자들이라면 이런 정치인들을 지지할 게 당연하다. 유권자들이란 순간의 이해에 감정을 드러낼 수 있기 마련이다. 이에 휩쓸린다면 그들이 냉정을 찾은 뒤엔 뭐라할 것인가.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설득과 다른 대안을 내세워야 하는 게 정치인들이다.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정치집단은 결코 그 수명이 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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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
2005.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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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논단] 도심공동화 해결책은 재개발 뿐- 광주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손재홍 지난 10월 1일,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이 개통되면서 최근 상종가를 누리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최근 한 대학의 초청 강연회에서 “비전만 있고 실천이 없는 리더가 가장 위험한 리더이다. 비전과 더불어 실천할 능력을 가져야 리더가 된다. 그래야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필자가 이 시장의 얘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오늘날과 같이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지역발전을 앞당기는 길이 실사구시(實事求是)형의 실천적 리더십에 달려있다고 보기에 고개를 끄덕끄덕할 국민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광주의 유서 싶은 구도심은 전남도청이 이전하고 난 후, 텅 빈 종갓집처럼 삭막하기만 하고, 도청 일대의 상권은 극심한 매출 부진으로 때 이른 한파를 맞고 있다. 2002년 6월 광주광역시의원으로 당선된 필자는, 의정 활동 초기부터 시정질문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청이 이전될 때를 대비해 이에 따른 내실 있는 후속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당시에는 ‘도청 이전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에, 필자는 단기필마(單騎匹馬)의 힘든 입장이었지만, 몇 년 후 다가올 도심 공동화에 대비한 실천적인 방안 마련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었다. 필자가 의정 활동의 목표를 첫째,‘광주천 살리기’, 둘째,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로 삼은 것은 광주의 구도심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었거니와, 다행히도 박광태 시장의 결단과 집행부의 노력으로 2004년 12월에 서울 청계천의 약 4배에 이르는 광주천 19.15㎞ 구간을 자연 친화형 하천으로 개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첫 삽을 뜨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와 함께,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문제에 대해서도 엊그제 광주시 집행부를 상대로 한 시정 질문을 통해서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안 마련을 촉구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는 등 내년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문제와 관련, 필자는 도청 일대를 포함한 동구 일원의 도심 상업지역의 용적률이 턱없이 낮아서 도심 활성화 사업 추진에 큰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에 용적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내용을 지역 언론들이 비중 있게 다룬 것은 물론, 다수 시민들이 동조하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현재 광주 도심의 중심상업지역 용적률은 900%로, 서울(1천%), 부산(1천300%), 대구(1천300%), 대전(1천300%), 울산(1천500%) 등 대도시에서 최하위 수준이고, 일반 상업지역 용적률도 700%로 타 도시의 800∼1천%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이로 인해, 광주 중심지역은 전국에서 건축 사업성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평가돼 투자자의 투자 의욕을 감퇴시키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도심 재개발사업 추진이 늦어져 구도심 활성화 사업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역 현실에 맞춰 용적률을 개선하고, 광주의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신도심 집중 개발에서 벗어나 구도심 활성화를 위한 실용적인 대책을 하루 빨리 수립돼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활성화 되면, 광주시민의 주거 환경 및 도로, 공원, 광장 등의 도시기반 시설과 상업용 편익시설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건설과 관련된 우리 지역의 경제발전에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도청 이전과 함께 도심 활성화를 위해 광주시가 내놓은 단기 처방도 필요하지만, ‘용적률 개선’과 같은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할 줄 아는 미래 지향적이고 실천적인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5.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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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 노란 손수건 주로 하이틴 세대에서 많이 읽혀 소리없는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소설 ‘노란 손수건’(미국 作, 작자 미상)이 최근 100쇄를 기록했다. 이 소설집은 프랑스 대사와 문교부장관을 지낸 오천석 선생이 70년대 초 미국 작품 중에서 감동 있는 스토리를 모아 묶은 것이다. ‘노란 손수건’의 주요 기둥은 뉴욕 형무소에서 갖 출소한 늙은 전과자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4년 만에 감옥소에서 나온 늙은 빙고는 부인을 찾아가게 된다. 그는 출소하기 전 자신을 기다릴지도 모르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띄웠다. ‘만약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집 앞 참나무에 100개의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달라, 그것이 없다면 나는 미련없이 떠나겠다.’ 그 날 빙고는 기차를 타고 초조한 마음으로 자신의 고향마을에 진입했다.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주변의 가로수엔 늙은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의 순정을 표시한 노란 손수건이 수없이 매달려 있었다. 빙고는 자신을 끝까지 기다려 준 아내에게 감동, 사랑의 재회를 이뤄 행복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는 미국 잡지에 실렸던 실화를 재구성 한 것이다. 이 감동적인 스토리는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얼마 전이다. 1987년 피랍된 동진호 선원의 딸 최우영씨(35)가 아버지의 무사 송환을 애타게 염원하며 자유로 임진각 나들목의 한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 400장을 매달았다. 이를 지켜 본 모든 이들은 소설‘노란 손수건’의 감동을 떠올리며 그들의 재회를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늘 새로운 감동으로 가르쳐 준 ‘노란 손수건’. 이 가을에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마을 어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이 수없이 걸려 나부끼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칼럼
남도일보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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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전남 관광발전을 위한 작은 제언-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 정희전 기획조사실장 얼마전 집안 어른을 모시고 전라남도의 북쪽 끝인 백양사로부터 남쪽 끝인 보길도까지 여행을 다녀왔다. 이곳 지방근무중 틈틈히 다녀본 데에서 가장 좋은 곳만 골라 코스와 숙박시설, 음식점 등을 정했다. 역시 반응은 매우 좋았고, 이에 나도 고무되어 전라남도 홍보대사처럼 지역의 특성, 역사 등을 열심히 설명했다. 특히 손님들은 다도해를 바라보며 “바다에 떠있는 산맥 같다. 캐나다의 천섬(Thousand Islands) 보다 훨씬 낫다” 등의 감탄을 연발했다. 그러나 여행중 몇 가지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전남 관광 발전을 위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강점은 생략하고 느낀 소회를 중심으로 몇 가지 고언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교통질서이다. 전남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한가로움에 있다. 햇살 가득한 논밭을 바라보며 한가로운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덧 남도의 정취에 빠져든다. 그러나 과속 차량이 많고, 심지어는 정지신호 앞에 대기하고 있는 내 차 옆을 시속 80㎞ 이상으로 무단 질주하는 차량도 있었다. 그 이후로는 한가로운 운전을 하기에는 주위 차량이 무서워지고 긴장감이 커졌다. 더욱이 광주에 들어와서는 헬멧 없이 남녀가 동승하여 달리는 오토바이가 많아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제주도 도로 역시 한가하긴 마찬가지이나 곳곳에 감시 카메라와 교통순경이 있어 관광객들의 ‘허’자 차량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처음에는 짜증스럽기도 하였으나 조금 지나자 오히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안전한 드라이브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당국에서는 여러 가지 인적·물적 제약이 있겠지만, 쾌적하고 안전한 여행분위기 조성을 위해 기초교통질서 확립에 더욱 노력했으면 좋겠다. 둘째는, 관광정보 및 지역 축제의 문제이다. 단풍이 유명하고 더구나 기관 홈페이지를 통해 단풍 축제소식까지 있어 기대에 부풀어 찾아갔지만, 극히 일부만 단풍이 든 상태였다. 많은 군 직원들이 열심히 자원 봉사하는 모습이 고마웠으나 아쉬움을 달랠 수는 없었다. 기후변화는 정말 예측하기 힘들지만 해당 지역기관들은 “11월말에나 오라고 할 것이지”하며 돌아가는 어느 관광객의 푸념을 잊지 말고 단풍시기 등 주요 관광정보를 솔직하고 신속하게 업데이트하는 서비스 정신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역 축제를 위해 길가에 죽 늘어선 임시 상점, 노래자랑 등의 행사가 분위기를 고취하고 지역소득 증대에도 보탬이 되는 줄은 알지만, 단풍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데 과연 시너지 효과가 있는지 먼저 관광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셋째로 올바른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이다. 나는 보길도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세연정(洗然亭) 앞 멋지게 휘어진 해송을 보면서 고산(孤山)의 어부사시사 한 구절을 암송하면 그야말로 40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데 고산이 당파싸움 가득한 중앙무대를 버리고 스스로 고향근처에서 은거하였던 보길도가 상당수 관광객들에겐 ‘윤선도 유배지’로 잘못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관광객들은 ‘귀양와서 할 것 다하고 신선놀음 했네’ 라는 비아냥을 하곤 한다. 이러한 오해는 고산선생 뿐 아니라 문화유적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물론 관광안내 등에 윤선도와 보길도의 내력에 대해 간단히 기록되어 있으나, 관계당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관광안내 자료등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서 깊은 문화역사를 가진 전남이 관광객의 최대만족을 위해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써서 ‘국내 답사 1번지’ 외에 ‘국내 관광 1번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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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보성 위승환 선생에게 박수를 ‘젊은이들이여 지성과 야성을 가져라’는 1970년 남재 김상협 선생이 고려대 총장에 취임하면서 연설한 취임연설의 주제였다. 그 뒤 그 지성과 야성은 당시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우리들에게 감동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지성은 주변에서 널리 사용된 어휘였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야성은 새로운 개념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야성이란 생명력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의 시대적 특징을 상징하는 개념이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한 대학 시 동아리의 초청을 받고 어느 시골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 대학과 시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프로스트는 당황했다. 그런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참 생각하다가 그는 대답했다. ‘대학과 시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지성을 추구한 곳이지만 시는 생명력을 추구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이 아니라도 생명력은 구할만한 곳이 많지 않습니까.’ 50년대 실존주의 사상이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때 이방인의 작가 까뮤가 제기한 명제인 ‘나는 저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 는 60년대를 거쳐 70년대까지 한국의 젊은이들의 호응을 받고 있었는데 그 저항과 야성이 하나라는 공감이 있었다. 김상협 선생의 야성은 특히 이 저항의식에 결부된다는 공감된 있었다. 그러나 야성은 저항보다 더 큰 개념으로 낭만, 자유, 인간, 애정 등 생명력을 크게 넓게 아우르는 개념이다. 겸손과 중용과 예의를 미덕으로 교육받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야성은 새로운 출구를 제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상협 선생의 야성은 서양 사상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다. 니체가 그의 명저 ‘비극의 탄생’ 가운데 위대한 아티카(그리스) 문명은 아폴로적인 문화와 디오니소스적인 문화가 갈등하고 조화를 이룬 가운데 이룩된 것이었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고 이를 다시 한국의 성리학의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이기론(理氣論)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어떤 철학적 신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가려진 기존의 개념을 새로운 방법으로 제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상기시킨다. 며칠 전 전주 한옥 마을에서 거행된 한국시인협회 주최의 ‘시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 시 낭송회에 젊은 이창수 시인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가 박수를 받은 것은 사실은 그에게 주는 박수이면서 그의 고향 전남 보성군 복내면 면장 위승환 선생을 위하여 치는 박수였다. 이창수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 위승환 면장은 면사무소 소재지와 이창수 시인의 마을인 봉천리에 플래카드를 걸고 축하했고 또 다른 축하의 행사로 손수 담은 김치를 서울 인사동에서 팔아 그 판매금을 시인에게 전달하여 격려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에서 야성을 느꼈다. 특히 위승환 면장은 학식이 높은 사람이 아니다. 그가 만일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런 매력있는 인간미를 남길 수 없었으리라. 오늘 세계적 현상으로 시가 독자를 잃고 있는 것은 세계를 지성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성은 오히려 시인을 죽이고 있다. 반면 야성은 시를 살리는 불씨가 된다. 특히 한국에서 그렇다. 그 순수성에 있어서 그렇고 그 생명력이 그렇고 그 인간성이 그렇다. 오늘 시인 자신이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 오늘 시인들은 독자가 없다고 우는 소리다. 그러나 보성군 복내면 위승환 면장이 있지 않은가. 위승환 면장 한 사람이면 시인에게 어떤 백명의 평론가, 어떤 백의 신문, 어떤 백의 출판사, 어떤 천명의 대학교수보다 크다. 우리는 시를 쓰는 시인보다 야성을 가지고 시에 호응하는 사람이 더 소중함을 인식해야 한다. 위승환 면장과 이창수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칼럼
남도일보
2005.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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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정사(情死) 우연찮게 1930년 11월에 발간된 잡지‘별건곤’을 본 적 있다. ‘여류명사의 동성연애기’가 게재 된 이 잡지는 1930년대 여학생들 사이에서 동성연애는 이성애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동성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도 금기시 되지 않았다. 소파 방정환이 발행한 ‘별건곤’에는 당시 중외일보 기자였던 황신덕을 비롯 춘원 이광수의 아내이자 산부인과 의사였던 허영숙, 기독교 여성운동가 이덕요 등 쟁쟁한 여류명사의 동성연애 경험담을 취재한 기획기사를 싣고있다. 잡지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1930년대 초 동성애로 인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1931년 4월 8일, 세련된 양장을 차려입은 신여성 두 명이 영등포역에서 하차했다. 두 손을 꼭 잡은 그들은 마치 소풍 나온 소녀들처럼 행복해 보였다. 오후 4시45분 인천발 서울행 428호 열차가 오류동역을 떠나 경부선 분기점에 이르렀을 때, 두 여인은 서로 껴안은 채 질주하는 열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정사(情死)였다. 세브란스의전 교수 홍석후의 외동딸 홍옥희(21)와 비행사 심종익의 아내 김용주(19)가 그들이다. 홍옥희는 작곡가 홍난파의 조카딸이었고, 김용주는 부유한 서점 주인 김동진의 딸이자 동막(東幕=마포구 대흥동) 부호 심정택의 맏며느리였다. 두 여인은 남편과 애인으로부터 배신당한 상처를 서로 위로하다 연애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명문가 여성의 동성애 정사는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신여성들 사이에서 만연 된 동성연애는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동성애와 차원이 다르다. 그 시절의 동성애는 상대에 대한 깊은 동정(同情)을 바탕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광’1937년 3월호엔 신여성의 동성애 체험수기까지 수록돼 당시의 사회상을 말해주고 있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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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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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파일]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남긴 것 코카콜라병, 말보로와 켄트담배. 이들 제품은 수십년동안 같은 디자인으로 생산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가격은 변했을지라도 제품의 디자인은 앞으로도 쉽게 변할것 같지 않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품들이 몇몇 남아 있다. 농심 새우깡이 그렇고, 해태 부라보콘과 롯데 월드콘, 모나미 153볼펜이 그렇다. 복고풍이 일어 삼양라면이 옛날 모습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나라의 풍토에서는 상품들의 생명이 아주 짧다는 게 상식이 돼 버렸다.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시리즈,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 시리즈가 디자인과 제원이 바뀐채 옛 명성을 좇고 있지만, 필요치도 않은 부류에까지 휴대폰을 소유하고 있는 국민성에 비춰보면, 그와같은 브랜드의 역사는 오래 지속되리라고 보는 시각이 그리 많지 않은게 현실이다. 가족단위로 전시나 박람회를 쉽게 찾아지는 곳은 박물관이 1순위로 꼽힌다. 자녀들이 물어봤을때 부모들이 쉽게 설명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9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대전EXPO나 광(光)산업 전시회는 학부모도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어쩌면, 따라 나섰던 자녀들에게 속을 들여다 보일수 있을 정도로 최첨단 산업에 무지에 따른 부끄러움만 앞설 정도다. 이같은 프로그램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학생들끼리, 아니면 친구들끼리 다니는 게 기본 포맷이 돼 버렸다. 그러다 보니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격주로 열리는 경주관광EXPO는 가족단위의 방문객이 많고,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광주비엔날레는 학생들끼리 찾는 숫자가 그렇지 않은 숫자보다 월등히 많다. 광주 김대중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이번주면 끝난다. 형이상학적인 비엔날레에다가 실생활에서 손쉽게 접할수 있는 디자인이 접목된 새로운 장르다. 전시된 작품들을 들여다 보면 알것 같은 것도 많고, 도무지 이해가 쉽게 오지 않는 어려운 것도 많다. 도우미의 설명이 없으면 전혀 이해가 안되는 작품도 많다. 마치 산업박람회장에 와 있는 것이 아닌지 착각할때도 있다. 첫 대회인지라 광주시민뿐 아니라 타 지역민들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1960년대의 고전적인 작품도 전시돼 있고, 차세대 자동차까지 등장해 시선을 끌고 있다. 첫 대회치고는 그런대로 실패작은 아닌 것 같다. 관객들이 많이 붐벼서인지, 광주시는 이 행사를 2년후 좀 더 길게 열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대회 폐막후 냉철한 분석이 이뤄져, 다음대회때는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번처럼 비엔날레팀이 맡을 것인지, 별도의 법인이 생길 것인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장소도 김대중센터에서인지, 광주비엔날레관인지, 디자인센터인지도 검토된바 없다고 한다. 다만 2회대회는 반드시 열린다고 한다. 첫 대회라선지 외지인뿐 아니라 광주시민들도 행사장을 찾을때 김대중센터보다는 의례껏 북구에 위치한 비엔날레 전시관을 찾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원스톱시스템을 선호하는 관람객들의 정서와는 달리 주차요금을 일일히 미터기에 확인후 지불해야 하는 ‘최첨단 주차카드시스템’은 운전자들을 짜증나게 하기도 했다. 또 입장객 인원통제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하마터면 대형사고를 일으킬 뻔 하기도 했다. 아울러 설명을 듣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해할수 없다는 특성을 감안, 친절하고 단정할뿐 아니라 관람객들의 질문에 답변 정도는 할수 있는 도우미를 배치해야 할 것이다. 그게 눈높이다. 전시관내 ‘명예의 전당’에 쓰여진 어느 여고생의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천년만년 쭈욱’이라는 글귀처럼 되려면 그래야 한다. 조옥현 문화체육부장 oken@namdonews.com
칼럼
남도일보
2005.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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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도일보
2005.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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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장군의 연인 진실은 언젠간 세상에 드러나는 법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국보 제76호)’가 처음으로 완역돼 여자 문제 등 그간의 베일을 벗겨냈다. 난중일기는 부록인 서간첩과 임진장초(임금에게 올린 장계의 초안)를 포함해 9책으로 돼 있다. 전체 글자수가 13만여 자에 이른 데다 한문 초서체로 흘려 썼기 때문에 그동안 해독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제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이를 정자(正字)화 한 ‘충무공 전서’도 해독의 어려움 때문에 60%가량이 누락됐다. 최근 초서 전문가 노승석씨(36)가 ‘난중일기’13만자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난중일기초’에 수록되지 않은 부분(8천500여 자)과 100여 곳(150여 자)의 오류를 발견했다. 대표적인 오류는 1598년 9월 20일자에 조선수군과 명나라 육군이 수륙협공을 펼치는 장면에서 유도(현재 여수시 송도)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는 묘도(猫島·여수시 묘도동을 이루는 섬)의 오독이다. 또 무상(無上)이라는 직책은 갑판수를 뜻 하나, 물 긷는 군사(汲水軍)로 잘못 풀이 된 것. 더욱 재밌는 건 충무공의 연인 문제다. 난중일기 가운데 ‘여진입(女眞卄)’이란 귀절이 있다. 지금까지 이 단어는 ‘여진(女眞)이란 여종과 스무 차례(卄)의 잠자리를 가졌다’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여진입(女眞卄)’의 ‘스물 입(卄)’자는 ‘공(共)’자의 초서를 잘못 읽었던 게다. 또 충무공을 연모한 한양 기생의 이름이 ‘세산월(歲山月)’로 알려졌으나, 이 역시 ‘내(萊)’자를 오독한 것으로 ‘내산월(萊山月)’이 맞다고 한다. 선조 때 문신 이춘원(1571∼1634)이 내산월을 위해 남긴 시가 전해져 이를 뒷받침 한다. ‘사필귀정’이라고, 옳고 바른 것은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와 빛을 발하는 법이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g@namdonews.com
칼럼
남도일보
200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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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무엇이 그들을 위기로 내모는가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수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이 매달려 백인백색(百人百色)으로 풀어내온 게 이 화두다. 그러나 간명하게 보면 국태민안(國泰民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구절과 고운 말로 묘사해봐야 나라를 태평하게 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 외엔 더할 게 없다. 따라서 이 국태민안을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주체도 정치이며 정치인들이다. 정치적 안정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에 하나 정치가 흔들리면 나라는 말 그대로 ‘달걀을 쌓아놓은 것보다 더 위태로운 지경(累卵之危)’에 놓이게 된다. 지금 여권내 행태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10·26 재·보선 참패 이후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의 공방 및 여당내 친노·반노세력의 대립 등이 갈수록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져가는 양상이다. 그들은 미우나 고우나 앞으로 2년넘게 이 나라를 이끌고 가야할 주체들이다. 그런 그들이 그동안 온갖 갈등을 만들어낸 것도 부족해 자신들끼리 맹공을 퍼부어대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가로막는 청와대의 쇄신을 주장하고 대통령의 독주를 비난한 여당 의원들에게 급기야 지난 28일 직격탄이 쏘아졌다. 친노 직계그룹으로 분류되는 참정연의 유시민의원은 “대통령이 여당 안에서 작은 탄핵을 당했다”고 일갈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탄핵’이라는 단어는 지난 2년의 우리 정치에서 고감도의 휘발성을 지녀왔다. 144명의 여당의원 거의 대부분이 탄핵의 역풍으로 금뱃지를 달 수 있었다. 그 반대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상당수 인물들은 탄핵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거의 천형(天刑)을 받다시피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 금기가 이번 재·보선에서 깨지기 시작했다. 경기 광주에서 홍사덕 전의원이 선전을 함으로써 그 조짐을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되돌려놓고 싶은 희망에선지 유의원은 또 다시 탄핵을 거론하며 정치권의 말초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유의원의 논리대로라면 이번에 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을 공격한 의원들은 또 다른 탄핵의 주역이 된다. 지난 총선에서 탄핵역풍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상대후보들을 지켜봤던 이들로선 기겁해마지 않을 일이다. 당연히 그게 아니라고 역공을 취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보면 정국은 더욱 소용돌이속으로 감겨들어갈 게 뻔하다. 그래서 일부 여당 정치인들은 ‘제발 입조심 좀 하자’고 안달을 해왔다. 그러나 현 정권에서 제일 뜻대로 안되는 게 바로 그 점인 것같다. 오죽하면 참여정부의 공신록에도 오른 인물이 “대통령이 입다물고 조용히 한달만 있으면 지지도가 다시 오를 것”이라고 탄식했을 것인가. 그에 따르면 지금 정권이 욕먹는 이유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채 쓸데없는 말로 소모전만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단히 정확한 상황파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그 주변이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으니 지지도가 반등할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노대통령은 어제 또 다시 폭탄급 발언을 했다. 내년 연초부터 취임 3년을 맞는 2월 25일 사이 적절한 시기에 ‘진로’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리해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내일에 대해 전반적으로 얘기한다고는 했지만 국민이 위임해준 임기를 거론하고 나서는 판이니 또 한번 정치권은 요동을 칠 전망이다. 이래서야 국태민안은 희망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도무지 정치가 제 역할을 해낼 것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난무하는 거라곤 향후 당이나 정국을 뒤흔들 엄청난 구상이 있을 것이라는 등 정치안정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 뿐이다. 이제라도 왜 민심이 ‘27대 0’을 그들 앞에 내던졌는지 차분히 되새기고 되새겨볼 때가 아닐까.
칼럼
최혁
200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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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논단]전남도청은 떠났지만…/신이섭 의원·광주시의회 1896년부터 광주 동구에 터를 잡고 109년의 역사를 이어온 전남도청이 마침내 빛고을의 품을 떠나 무안 남악신도시로 이전했다. 도청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난 광주의 심장부는 만추(晩秋)의 쓸쓸한 기운이 완연하다. 광주의 자랑인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은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라는 아름다운 시를 남기고 떠났거니와, 고독한 시인이 거닐었던 충장로·금남로도 지금은 왠지 외로워 보인다. 전남도청 이전을 전후해 광주의 전통적인 도심인 충장로, 금남로 일대가 어느 정도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은 예상한 바였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주변 상인들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처럼, 전남도청 이전과 함께, 그 자리에는 우리 후손들에게 값진 선물이 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게 된다. 국비 7천174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어 올 12월 착공되는 이 대역사(大役事)가 마무리되면 광주는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문화중심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고, 도청이 있을 때보다 몇배 큰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국회에서 여야 의원 157명이 공동 발의한 ‘아시아문화전당특별법’이 올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사업 추진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될 것이고 국민적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2010년 사업 완료 전까지, 약 5년여 동안 충장로, 금남로 등 도청 일대의 구도심 활성화 문제다. 국내는 물론, 세계의 대도시에 가보면 반드시 찾아보게 되는 상징적 공간이 있게 마련인데, 광주를 방문한 외지인들에게 빠뜨리지 않고 소개하는 곳이 바로 충장로, 금남로, 예술의 거리 등 도청 일대가 아닌가. 따라서, 아시아문화전당이 완공되면 국제적인 명소가 될 이 소중한 공간을 지키고 가꾸는 일은 140만 광주시민 모두의 의무이며,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박광태 시장의 진두지휘 아래 광주시가 도청 일대의 상권(商圈) 활성화를 포함한 다양한 도심 공동화 극복방안을 마련해 추진중이고,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불문하고 이 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광주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이다. 충장로, 금남로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들이 앞장서서 옛 정취를 되새기며 이 거리를 찾아주고, 젊은 세대들 또한 이곳에서 그들만의 낭만과 끼를 발산할 때, 광주의 도심은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인상 깊은 공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필자가 의정활동 중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재래시장 활성화에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청 인근에 자리한 대인시장, 남광주시장 등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재래시장으로 우리 고유의 풍물과 인정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자녀들과 함께 들러볼만한 산 교육장으로 손색이 없다. 이처럼, 광주의 문화와 풍류와 인정, 그리고 5·18 정신이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공간인 도청 일대는 몇년 후면 국내·외 관람객들이 몰려올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우뚝설 소중한 자산이다. 김현승 시인이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하고 노래했듯이, 올 가을에는 많은 광주시민들이 노란 은행잎이 깔린 금남로, 그리고 축제의 열기가 넘치는 충장로에서 ‘광주 사랑’의 마음을 다시 한번 갈무리하면서, 5년 후의 아름다운 광주 도심을 상상해보길 권한다. 전남도청은 떠났지만, 광주는 영원한 우리의 고향으로 남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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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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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골에서] ‘민주의 鐘’과‘민주기념관’김선기 논설위원 ‘희망을 섬기는 의로운 사람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기도하던 곳, 광주// 그렇다 광주는 음악소리 아름다운 별들이 내리는 곳이다/ 그렇다 광주는 한나절 태양이 팔 벌려 어깨동무하고/ 고통이나 시련도 사랑으로 곰삭아 익어가는 곳// 이야기가 살아있고 감동으로 물결치는 춤과 노래가 있고/ 대빗자루 같은 붓을 들어 시대와 풍속을 그리는 사람들…’ 중진 시인 김 종(국제펜클럽 광주회장)이 민주도시 광주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담아 ‘민주의 종’종각에 새겨넣은 ‘광주 가는 길’이란 시다. 시인의 노래처럼 광주 사람들은 대빗자루 같이 거칠은 붓을 들어 시대와 풍속을 그려왔다. 그 몸부림들은 광주를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제 ‘광주의 정신’은 다음달 1일 ‘광주시민의 날’때 타종 될 ‘민주의 종’의 울림에 실려 더 높은 비상을 꿈꾸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인 금남로 1가 옛 경찰청 차고지에 건립 된 ‘민주의 종’은 지난 2000년 11월 건립추진위를 꾸린 지 5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종에는 광주 시조(市鳥)이자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5·18기념탑, 학생독립운동기념탑, 고싸움놀이, 무등산 입석대 등 광주를 상징하는 4대 비천상을 새겼고,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쓴 ‘민주의 종’ 글씨가 의미를 보탰다. ‘민주의 종’은 3·1절과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 광주시민의 날, 재야 행사 등에서 민주화와 세계의 평화, 인류 번영을 기원하며 타종된다. 이번에 건립 된 ‘민주의 종’은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와 더불어 금남로~전남대 정문~5·18기념문화센터~5·18자유공원~5·18국립묘지로 이어지는 이른바 ‘민주 벨트’형성에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개개의 특성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이를 집적화 하지않으면 그 효과는 반감 될 수밖에 없다. 마침 정부가 세계 인권운동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민주화운동기념관’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민주의 종’을 중심으로 구축 된 ‘민주 벨트’를 좀더 구체화 시키기 위해선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광주 유치는 필수적이지 않나 싶다. 정부의 지원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추진하는 이 사업은 3만5천평 부지에 연건평 1만2천평 규모로,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민주화운동사를 총 망라할 인권운동기념관과 교육관으로 꾸며진다. 기념관은 부지 매입비를 제외한 1천400억원의 국비가 투입돼 2010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후보지를 찾고있다. 기념사업회 측은 대상 부지를 접근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민주기념관은 접근성에 앞서 역사적 상징성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의 발생지일 뿐 만 아니라, 민주·인권운동의 상징 도시로 평가 받아 온 만큼 유치의 명분이 충분하다. 민주기념관은‘민주의 종’을 비롯 민주화 사적지 등과 함께 민주·인권 관련 시설의 집적화를 꾀해 광주를 ‘국제 인권·민주도시’로서 위상을 정립하게 될 것이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의 시너지 효과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념관 유치가 물거품됐을 땐 소위 ‘민주의 성지’라고 자처하는 광주의 이미지는 형언할 수 없는 타격이 뒤따를 게 분명하다. 현재 ‘민주기념관 광주유치추진위’가 결성돼 유치활동에 심혈을 쏟고 있는 줄 안다. 지역민들도 유치위를 중심으로 역량을 결집해 반드시 민주기념관이 광주에 설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민주의 종’종각에 새긴 시인의 간절한 소망처럼 ‘광주는 음악소리 아름다운 별들이 내리는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kims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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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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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청소년의 생활지도 방향 /심정섭·보성군 시민단체연합회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관련, 청소년들의 의식변화와 원인 분석을 통한 학교현장에서의 생활지도 방향을 말하고자 한다. 세계는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 돼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의해서 더욱 더 양극화 돼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때 소득 1만불 시대를 이뤘지만 이후 IMF를 거치면서 40대 중반의 중소기업인들이 대부분 파산됐다. 또 구조조정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퇴출돼 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아스팔트길로 내몰렸는가? 한참 부모와 정다운 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생활을 해야 될 우리 애들은 고아원으로 거리의 불량아로 가까운 친인척 집으로 내몰려 생활해야 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현 사회 청소년들의 문제점을 이들 아이들만의 책임으로 봐도 될까? 농촌 실정을 살펴보면 WTO 협정에 의해서 이농 현상, 열악한 경제적 여건과 교육 환경으로 오갈 데 없는 아이들 및 파산 가정의 청소년들이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또는 친인척 집에서 결손 가정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에 의해서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비율이 2:8에 이르고 이는 80%의 없는 자와 파산가정 및 결손가정의 자녀들이 오늘날 학교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가족 구성의 변화도 감지된다. 90년대 초반 신세대라고 하는 세대들은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와 더불어 급속히 핵가족화로 변해갔다. 아이들의 도덕성은 온데 간데 없고 물질 만능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만이 난무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보고 느낀 대로 행동할 뿐이다. 이에 따른 학교현장에서의 문제점으로는 학생들의 사고력, 인내력 부재로 나타난다. 자기가 행한 행위에 대해서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부족하고 생명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갈수록 폭력적이고 잔인해지는 현상이 정보화 시대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러한 이유는 특별한 제어장치 없이 청소년들이 인터넷 공간에 쉽게 접근하는 생활습관에서 기인한다. 더욱이 이러한 유해 매체물들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변화와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결국 학교 현장에서의 선생님과 가정에서의 부모 역할로써의 생활지도 방향이 중요하다. 지금이라도 국가는 공교육과 인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잘못된 각종 정책 및 제도를 바로 잡고, 서로의 책임만 물을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각 구성원이 공동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도 스승과 제자의 기본 틀을 재정립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가정에서의 우리 부모는 자녀의 성장과 발달을 믿고 기다려 주며 말보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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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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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낙엽을 쓸면서 생각난 오상순 시인 뜰에 낙엽을 쓸면서 오상순 시인 생각이 났다. 1950년데 휴전이 되면서 전쟁보다 더 지치고 가난한 우리들은 무엇인가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대학으로 돌아갔다. 그때 명동은 폐허의 상징적 거리였다. 외롭고 슬프고 절망의 거리를 우리는 까닭도 없이 헤매다가 다방에 들리곤 했는데 거기엔 언제나 시인 오상순이 앉아 있었다. 담배 연기가 가득한 그의 주위에는 젊은 문학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오상순 시인은 가족이 없이 혼자 산다고 들었다. 그에게는 다만 다방과 담배와 조용한 분위기뿐이었다. 어느날 석양 다시 명동을 걷다가 ‘문학의 밤’이라는 포스터를 보았다. 그리고 그 다방에 들렸더니 마침 지명을 받고 오상순 선생이 일어서는 자리였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전하자 그는 그것을 물리치면서 “나는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다” 고 말하였다. 그분은 유달리 목소리가 작았다. 그래서 앞줄 몇 사람 말고는 아무도 그분의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불평하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통하여 조용히 그의 말소리를 경청하였다. 모두 다 숙연하게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전쟁을 겪고 났으니 우리는 문명의 이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효율적인 문명의 이기일수록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도구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오상순 시인의 말속에 그 뜻이 있었고 그분의 작은 목소리를 눈으로 듣는 그 분위기 속에 그 공감이 있었다. 북진 통일이 강력하고 무서운 사회적 이슈였기 때문에 아무도 전쟁을 저주할 수 없는 시대였다. 만일 전쟁을 저주하거나 반전의 언동은 곧 이적의 혐의를 받는 시대였다. 나는 오상순 시인에게 인사를 드릴 기회도 없었고 그 뒤로 먼빛으로도 그를 본적이 없다. 나의 생활은 명동을 들려 낭만을 즐길 처지가 아니었다. 우연한 계기에 소설을 쓰는 같은 과 학생의 집을 들리게 되었는데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나를 고학하는 학생이라고 소개하였다. 아마 그에게는 그렇게 보인 모양이지만 특별히 고학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생활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나의 마음속에 오상순 시인의 낭만이 들어 설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뒤로 오상순 선생은 오랫동안 나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버렸다. 그 오상순 선생이 뜻하지 않게 낙엽을 쓸면서 다시 살아났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낙엽을 쓸어 자루에 담으면서 생각이 난 것이다. 그 자루에 낙엽과 같이 다른 쓰레기를 담으면서 살아난 것이다. 그 쓰레기 속에 요금 별납 우편물들이 들어있다.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니다. 그 속에는 각종 통지서 고지서와 각종 유인물이 들어 있다. 그리고 분명 수신자가 나의 이름이지만 나는 분명 그 수신을 거부한 것들이다. 문학 하는 사람들이 모인 어떤 자리에서 ‘나는 요금 별납 우편물을 거부한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책을 내본 사람은 책을 내는 일 못지않게 친지에게 그 책을 부치는 일이 힘든다. 나로서는 책을 내는 일이 한달이 걸리고 그 책을 부치는 일에는 두 달이 걸리는 수도 있다. 편하기로야 요금 별납 편의가 좋다. 그러나 그 책을 받는 입장은 다르다. 책을 받는 입장은 직접 찾아와 받는 것이 제일 좋고 그 다음은 손수 우표를 붙여 보내 온 책이 더 정답다. 요금 별납 우편물로 오는 책은 어딘지 도매금으로 취급받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요금별납 우편물을 거부한다‘는 오상순 선생의 ’나는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다‘를 연상시킨다. 아마 나의 무의식 속에 그 말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문명의 이기나 요금별납 우편물이나 쓰레기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한국전쟁이 오상순 선생의 쓰레기이었듯 요금별납 우편물이 상징하는 오늘의 잡다한 생활은 나의 쓰레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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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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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정지용 시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시인 정지용(1902~1950)의 대표작 ‘향수’다. 이 시는 7080세대들에게 진한 ‘향수’를 안겨주면서 ‘국민 시’로 사랑받고 있다. 정지용은 우리가 알고 있듯 박용철·김영랑과 함께 ‘시문학’(1930)을 창간해 1930년대 한국시단을 풍요롭게 장식했던 주역이다. 190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그는 휘문고를 거쳐 일본 도시샤대(同志社大) 영문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전 교수와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를 썼던 그는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6·25 때 납북됐다. 그로 인해 그의 작품은 ‘월북 작가’란 사슬에 묶였다가 80년대 이후 해금돼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 정지용의 모교인 일본 도시샤대 측에서 낭보가 타전됐다. 이달 말께 도시샤대 교정에 서 있는 윤동주 시비(1995년 건립) 옆에 ‘정지용 시비’를 세운다는 것이다. 두 시인의 모교이기도 한 도시샤대는 정지용이 유학시절 ‘향수’를 발표하는 등 시인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은 곳이다. 시비에 새겨진 작품은 도쿄 시내를 관통하는 가모가와(鴨川)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압천’으로, 그의 고향 옥천에서 가져간 돌에 한글과 일본어로 나란히 쓰여졌다고 한다. 물론 이같은 기쁜 소식 뒤에는 숨어서 노력해 온 고향 사람들이 있었다. 이밖에도 옥천문화예술인들은 이 사업에 이어 교복을 입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시인을 조형물로 제작, 도시샤대 캠퍼스에 세우기로 대학 측과 이미 협의를 마친 상태다. 이는 일본내에서 거세게 불고있는 한류열풍이 대중문화를 넘어 순수예술에까지 이어지는 첫 단추가 될 것 같다. 김선기 논설위원 kims@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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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5.10.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