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단편소설 ‘4월의 상가(喪家)-3

그녀의 옷차림은 단정하고 세련돼 보이나 창가를 응시하는 얼굴엔 수심이 가득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얼핏 보면 삼십 대 후반 같아 보이나 눈여겨보면 사십 대의 잔주름이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화장기(化粧氣) 가득한 얼굴엔 양 볼에 핀 주근깨를 감추려는 기술적 화장술이 돋보였다. 하지만 무릎 사이로 비친 하얀 피부는 탄력과 윤기가 흘러 누가 봐도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앵두를 그려놓은 듯 붉고 도톰해 한눈에 봐도 전형적인 동양 미인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 세상 누구도 그녀의 나이쯤 되면 말 못할 고민거리 한두 가지는 있으리라 생각하니 누구나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순 없다는 쓸쓸한 생각이 선엽의 머릴 스치고 있었다.

업무의 특성상, 영업을 오랫동안해서인지, 선엽은 사람을 많이 접하는 직업이다 보니 어느덧 상대방의 관상 보는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생겼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관상을 공부한 적은 없었다. 곁눈질로 그녀의 모습을 들여다본 선엽은 오랜 습관처럼 고질병이 도져 그녀의 관상을 보며 그녀의 삶 또한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선엽은 자리로 돌아와 허기를 달래려 김밥 포장을 뜯고 있을 때, 배는 남산만큼이나 나와 뒤뚱거리는 운전기사가 방금 식사를 마쳤는지 입가엔 이쑤시개를 문 채 통로 사이를 오가며 사람 숫자를 확인하곤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출발합니다. 안전띠를 꼭 착용해 주세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탑승자를 확인하더니 그는 버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엽은 운전기사와 중년 여인을 번갈아 보며 이상한 생각이 꿈틀거렸다. 사람마다 전혀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며 조화를 이뤄가는 게 인생인지라 세상사가 자기 일이 아니면 생각하기 싫어하는 방관자들의 조합이란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어느새 버스는 살랑거리는 봄볕을 가르며 남으로 향했고 선엽은 문득 사람들이 늘 이야기하는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 잡혔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나 오만가지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직장에서 하루를 어떻게 지낼 것인지, 오늘은 누구를 만나고 무슨 얘길 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인지, 마누라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아할지 등등…. 이런 잡다한 생각들로부터 무게 중심이 무거운 고민거리로 옮겨간다.

가령, 부모의 건강 걱정, 자녀의 교육문제, 그리고 돈 걱정 등. 이 모든 게 오만가지 생각의 중심부란 사실을 깨우치면 어느새 날은 저물고 남는 건 스트레스란 골칫덩이만 남게 된다. 오만가지 생각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퇴근 무렵, 삼삼오오 무리 지어 밤거리를 헤매다 대폿집 한 귀퉁이에 둥지를 틀고 오만가지 놈이 남기고 간 스트레스를 때려잡을 기세로 각자 주둥이 너머로 디오니소스의 영혼을 빌어 술과 전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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