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단편소설 ‘4월의 상가(喪家)-6

김 사장의 말인즉, 어려운 환경에 반듯하게 자라 준 큰 아들이 서울서 대학생활을 하다 학비며 생활비에 부모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생각에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그만 새벽녘 귀갓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큰 아이를 가슴에 묻었다는 이야기였다.

김달중 사장에게는 평생의 멍에로 자리해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선엽 역시 남 일 같지 않았다. 딸아이 하나이기 망정이지 자신 또래의 부모는 다들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대학등록금에, 생활비에 자녀를 키우다 보면 그뿐이겠는가! 고등교육을 하는 동안 남들 다 보내는 학원을 안 보낼 수 없고 자기 아이만 퇴보하는 것 같아 무리를 해서라도 학원이다, 개인 과외다, 내 아이만 잘 될 수 있다면 울며 겨자를 먹더라도 보낼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참으로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 대학을 보냈더니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만큼 힘든 세상이 되었다. 잊을 만 하면 방송에선 소득 삼만불 시대에 접어들어 국민 행복시대를 열어 갈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예전보다 지금이 분명 더 풍요롭고 먹을거리가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과연 예전보다 더 행복해 졌나 반문하니 선엽은 한숨만 절로 나왔다. 이 세상이 편리해졌다고는 하나, 대다수 서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누구의 잘못일까! 요즘 딸아이가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딸아이의 생각만이 아니라 이 시대 젊은이라면 누구나 고민임에 틀림없었다. 김 사장의 말을 듣고 나니 선엽은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와 가로등을 의지한 채 담배를 물었다. 어둠을 타고 흐르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김달중이 전한 취중 이야기를 되뇌었다.

그는 아들의 주검 앞에 무릎을 꿇고 식음을 전폐한 채 사흘 밤낮 뜬눈으로 지새우며 부모로서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죽은 아들에게 빌었다고 했다. 희뿌연 담배 연기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선엽은 김달중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식을 부지불식간 보내고 어느 부모가 편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날따라 담배 연기는 불귀의 객이 된 김 사장 아들을 기리는 향연기로 변해 하늘 높이 슬픔을 마시며 올라가고 있었다.

버스는 어느새 논산을 지나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들고 있었다. 선엽이 차안을 살펴보자 중년 여인이 뒷좌석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선엽을 바라보다 그녀는 그가 있는 자리로 주저 없이 다가왔다.

“혹시 선엽 오빠 아닌가요?”

“누구신지….”

“선엽 오빠 맞지? 오빠! 나야 명숙이 이명숙!”

“아 미안! 네가 명숙이었구나. 참 오빠가 너도 몰라보고, 세월이 무심하구나.”

그녀는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옆 좌석에 앉더니 우울한 표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그녀는 어릴 적 기억 저편, 선엽이 만들어 놓은 추억이란 열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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