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단편소설 ‘4월의 상가(喪家)-7

명숙은 멈춤 없는 추억 영화의 변사처럼 장시간 쉬지 않고 어릴 적 이야기를 쏟아내더니 뭔가 작심한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나 이혼했어!”

“애들 아빠란 인간이 가족은 나 몰라라 하고 바람이나 피우고, 있는 재산 몽땅 다 들어먹고 더는 살 수 없어 이혼하고 시골 부모님께 말씀드리려 가는 길이야!”

그래서 그녀를 처음 본 버스에서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선엽은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선엽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다보면 많은 시련이 오기 마련이다. 선엽 역시 집사람과 이십여 년을 살면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금전 문제, 자녀의 교육 문제, 직장 문제,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만남처럼 이 모든 일이 다들 겪는 인생의 열병 같은 존재란 사실을,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시기를 인내하며 슬기롭게 난관을 지나다 보니 면역력이란 부부의 끈이 자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버스는 어느덧 종착지를 알리는 남도의 시골 터미널에 이르고 선엽은 명숙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가 단지 건강하라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날의 패기는 점점 사라져 단지 타인의 일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이해한다는 얄팍한 사탕발림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그리곤 내 짐이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 무심한 세월이 지나고 난 후 그때 일들을 들추며 그때의 일들이 후회와 미련으로 남는지, 후회란 단어에 무게를 잔뜩 싣다 결국 긴 한숨을 내쉬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이런 게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명숙과 짧은 말로 작별의 눈인사를 건네고 상가(喪家)에 도착했을 때 제법 땅거미가 지는 초저녁이었다. 그날은 상국의 처(妻)가 불미스러운 일로 숨진 다음 날이었다. 선엽은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 영정이 차려진 제단에 향을 피워 고인을 위로한 뒤 상주 상국을 향해 맞절을 한 후 상주(喪主)의 눈망울을 대면하자 선엽은 한 달 전 일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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