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단편소설 ‘4월의 상가(喪家)-8

이곳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인 광주에서 그날 김달중 사장을 비롯해 대리점주 여럿과 저녁 술자리를 끝내고 00대학병원 일반 병실로 향했다. 사실 상국이 입원한 병원에 병문안을 위해서였다. 업무를 마치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원에 걸린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병동은 비교적 한산해 인적이 끊긴 상태라 절간 같은 느낌도 들었다. 선엽은 정신을 가다듬고 노크를 했다.

“누구세요?”

가녀린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국의 처가 반가운 목소리로 선엽을 맞이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뭘요 제수씨 제가 좀 늦었죠?”

그제야 침상에 인기척이 들리더니 까까머리 수술 자욱이 원형으로 남아있는 상국이 잠에서 깨 선엽을 쳐다보더니 어눌해진 말투로 반갑게 맞이했다. 그동안 상국의 처는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 쟁반에 담아 선엽에게 건넸다.

“상국아 살만하니?”

“어 죽다 살아났어! 수술시간도 많이 걸리고,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어눌해진 말투였으나 여유가 생겼는지 상국은 짧은 인사말로 대변하고 있었다.

“이 사람 조금만 지체했어도 이 세상에 아마 없었을 거예요.”

옆에 있던 상국의 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거들었다. 상국은 늘 남을 배려하는 유쾌한 친구였다. 단지 지나친 흡연과 과한 음주가 이 같은 불상사를 초래했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에게 들은 터라, 상국이 스스로 말을 꺼내놓기 전엔 그의 비위를 건드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상국이도 중년 늦장가를 들어 시작이 늦은 만큼 많은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선엽은 8년 전 상국의 간곡한 부탁으로 결혼식 사회를 본 터라,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상국과 마주했을 때 그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상국은 평소 때처럼 밖으로 나다니지 못해서인지, 아님 두 달여 병원생활이 답답해서인지, 슬리퍼를 신더니 링거가 걸린 지지대를 끌고 복도 끝 휴게소로 선엽을 안내했다. 소파에 앉자 짧아진 머리칼을 쓰다듬더니 자신이 쓰러져 긴박했던 그 당시 상황을 주저 없이 얘기했다. 얘기인즉슨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날도 사무실로 출근, 오전 업무를 보다 갑자기 쓰러져 기억을 못 했다고 했다. 후일 상국이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깨어나, 회사의 대표인 친형 상범에게 들은 얘기를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인 양 영웅담처럼 선엽에게 이야기했다. 화급을 다투는 순간, 순천 00종합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그곳은 뇌수술 전문의가 없어 그 길로 광주 00대학병원으로 옮겨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상국은 촌각을 다투는 시간과의 사투를 벌여 건진 목숨이기에 어눌한 말투로 얘기하는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선엽은 말하지 않아도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껏 친한 친구가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다는 생각은 전혀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었다.

“상국아 퇴원은 언제 하니?”

“어! 내일 해. 그리고 계속 통원치료 해야 해!”

“야 너 술과 담배는? 허허.”

선엽은 약간 무거운 질문을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려. 이젠 끊어야지! 다 그것으로 인해….”

“잘 생각했다. 상국아 제수씨도 곁에 있잖아? 늦게 만났으니 오래오래 같이 행복해야지! 이젠 제수씨와 여행도 다니고 몸에 좋은 것, 맛있는 거 먹으려 다녀라. 우리 나이에 행복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 것 같구나! 돈이 많다고 행복하진 않아. 제수씨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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