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농업 선구자 -35.나주 최경자씨>

35. ‘나주 명하햇골’ 최경자 대표

5대째 쪽 염색 전통방식 명맥 계승

농촌 체험관광 활성화 앞장…6차산업 선도

마을 주민들과 공생하는 사회적기업도 세워
 

전남 나주시 문평면 ‘명하햇골’최경자(49) 대표는 쪽 빚는 일로 업을 삼고, 이를 보고 배우러 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관광 사업에 마을 사람들까지 함께 하도록 이끌고 있는 등 ‘농업의 6차산업화’에 앞장서고 있다. /전남도 제공

쪽의 빛깔은 하늘을 닮았다. 눈이 부시게 푸른 쪽빛. 불현 듯 그리운 이가 떠오르게 하는 색.

전남 나주시 문평면에서는 이 색을 가득 담은 마을이 있다. ‘명하쪽빛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37가구 76명이 사는 이 마을엔 예로부터 쪽이 많이 났다. 5대째 쪽 염색장의 전통을 잇고 있는 가문도 있다. 바로 ‘명하햇골’ 최경자(49) 대표의 집이다. 최 대표는 쪽 빚는 일로 업을 삼고, 이를 보고 배우러 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관광 사업에 마을 사람들까지 함께 하도록 이끌고 있는 등 ‘농업의 6차산업화’에 앞장서고 있다.
 

전남 나주 문평면 쪽 수확 현장.

■쪽빛을 빚는 사람들

과거 나주지역에는 강의 범람이 잦아 벼농사보다는 물을 이겨낼 수 있는 쪽 재배를 많이 했다. 문평면도 마찬가지였다. 6·25 한국전쟁 이후 손쉬운 염색법이 들어오면서 쪽 염색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지만 이 마을은 아니었다. 가을이면 보랏빛 쪽꽃이 피어났고 이를 거두는 이가 있어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윤병운 선생(1921~2010)이었다.

이슬이 마르기 전 새벽부터 쪽을 거두고 행여 잎이 상할까 일일이 낫으로 베는 수고로움, 발효의 지난한 기다림을 견뎌내고 색을 빚어내는 일. 그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쪽빛은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에게 5대째 이어지고 있다. 최 대표는 시아버지에게 염색을 배웠고, 그의 곁에는 염색장이로만 살고 싶은 남편 윤대중씨가 늘 함께 하고 있다. 20년 전, 휴가를 보내러 고향 나주에 내려왔던 그는 농사를 짓던 남편에게 첫눈에 반했다. 한 달 만에 양가 어른들의 허락을 받고 염색집 막내며느리가 됐다.

최 대표는 시집온 이후 시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쪽 염색 과정을 지켜보고 작업일지도 썼다. 염색 과정은 하나하나 공이 많이 들어가고 까다로웠다. 안방에 항아리들을 들여놓고 발효시킬 때면 시아버지가 문도 못 열어보게 했다고 그는 전했다. 흰색 천이 파랗게 물들어가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그는 “옛 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질 수밖에 없지만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쪽 염색은 굴 껍데기를 태워 만든 석회 가루와 콩대를 태운 재로 만든 잿물 대신 화학약품을 염매제로 쓰고, 30~40일 발효 과정을 거치는 대신 가성소다를 넣어 끊이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회적기업 명하햇골은 쪽 염색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남도 제공

■“100명을 먹고 살게 하고 싶다”

하지만 최 대표는 장인이 묵묵히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면서 새 활로를 찾았다.

쪽 염색의 매력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2008년에는 농촌진흥청 농촌체험교육농장으로 지정받았다. 2009년에는 농촌관광 테마마을, 2010년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면서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났다. 이같은 최 대표의 노력에 힘입어 명하쪽빛마을에 지난 2014년 사회적기업이 탄생했다. 최 대표가 지난 2012년 설립한 ㈜명하햇골이 고용노동부로쿠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것이다. 명하햇골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쪽과 양파를 키운다.

또 쪽을 이용한 천연 염색 의류와 액세서리, 비누 등 쪽 제품을 생산·판매하면서 염색교육, 축제 운영 사업을 벌인다. 축제 운영 수익은 모두 마을에 기부한다. 이런 일을 하면서 명하햇골은 나주시민과 취약계층 주민 7명을 고용했다. 3년 동안 1인 창업자를 매년 30명씩 양성했다. 주로 취약계층, 그 중에서도 여성 교육에 힘썼다.

최 대표는 “인간문화재셨던 아버님이 입버릇처럼 늘 ‘나로 인해 100명만 먹고 살았으며’하고 말씀하셨다”며 “아버님의 뜻에 따라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잘 먹고 잘 살고 싶다“고 말했다.

덕분에 마을은 전통으로 먹고 사는 마을이 됐다. 마을 사람들과 최 대표는 서로 공생한다. 염색장이 농촌진흥청 농촌교육농장으로 선정되자 교육생, 체험객이 늘었고 부부의 힘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웠다. 이웃들은 자연스레 품을 나눴다. 그러다가 부부는 ‘우리가 마을 안에서 마을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마을 안의 전통자원을 잘 활용하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렇게 주민들과 협력해 탄생한 게 명하햇골이었다.
 

쪽 염색 천

■“마을 주민 모두와 함께 잘 사는 길”

최 대표는 “전통이 유지되고, 이를 배우기 위해 사람이 찾는 마을은 절대 사라질 수 없다”며 “우리만의 전통을 이어가는 방식이다”고 밝혔다. 또 그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라며 “전통의 가치를 도움을 주는 젊은 사람들, 이를 통해 마을을 살리는 사회적기업이 지역의 마을엔 꼭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제품 판로가 취약해 아직 매출로 큰 성과를 내진 못했다. 최 대표는 “판매 수익은 주로 체험고객들에게 나온다”며 “중소기업청, 한국무형유산원, 문화재청 등 공공기관도 쪽 제품의 주요 판매처이지만, 액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기업 운영비는 아직 그가 다른 곳에 가서 벌이는 교육에서 대부분 나온다. 염색작업이 워낙 전통 방식이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므로 시장 가격과는 맞지 않다. 그는 명하햇골과 염색장을 이어가기 위해 당분간 판매와 교육,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갈 생각이다. 그리고 마을 주민 모두와 함께 잘 사는 길을 포기하지도 않을 작정이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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