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농업 선구자 -39. 강진 김용복씨>

39. ‘강진 영동농장’ 김용복 명예회장

‘흙·사람·사랑’농사 짓는 천상 농사꾼

숱한 실패·좌절 속 중동서 ‘사막의 김치’로 대성공

고향 돌아와 농업발전에 기여…사회공헌활동 귀감
 

김용복 강진 영동농장 명예회장은 20여억원을 들여 간척지 70만평을 개발해 연간 1만2천여석의 고품질 친환경 쌀 생산하는 등 농업분야를 선도해 왔다. /전남도 제공

전남에서 농업으로 큰 재산을 모은 김용복(86) 강진 영동농장 명예회장. 그의 삶은 드라마고, 생각은 철학이다. 가난, 불행한 가족사 전쟁통에서의 치열한 생존, 창업과 실패들, 기발한 성공 그리고 끝없는 베풂 등 일련의 과정으로 그가 얻은 통찰과 지혜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흔든다. 하지만 아프지 않다. 따뜻하다.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작정이 서면 과감하게 실천하는 성품이 그런 마음공부를 가능하게 했다. 난관마다 주저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했다. 실패에서 마저 얻은 배움들이 성과와 수성의 동력이 됐다. ‘사막에 승부를 걸고’, ‘그때 처절했던 실패가 오늘 이 성공을 주었다’, ‘흙농사, 사람농사, 그리고 사랑농사’, ‘끝없이 도전하고 아낌없이 나눠라’ 등 김 회장의 저서들의 제목이 그 통찰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무엇보다 그의 삶의 키워드는 ‘용기’이자 ‘사랑’이다. 여기에 ‘멋진 농업’도 빼놓을 수 없다. ‘전라도 농업 선구자’김용복 회장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본다.
 

김 회장은 사회 곳곳의 소외계층을 위한 지속적인 나눔과 사회공헌 활동에도 책임을 다하고 있다. 지난 2013년 4월 어린이를 위한 재단설립을 발표하고 있는 김 회장.
/전남도 제공

■영동농장의 시초는 사막의 김치

수도 없이 주저앉았던 그가 제대로 자리잡은 것은 지난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였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머나먼 이국 땅에서 일하던 그는 기막힌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자신처럼 한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일하러 올 것이고, 배추와 무를 심어 ‘신선한 김치’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중동은 한국 기업들의 공사판이었다. 15만명 가량의 한국 근로자가 사우디에서 일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김치였다. 한국에서 김치를 가져온다고 해도 배로 실어나르는데 40일, 부두에서 현장까지 가져오는 30일이 걸렸다. 요즘은 냉장시설이 발전했지만 70년대 당시에는 김치를 온전히 공수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뜨거운 사막에 우리 배추와 무를 심었다.

하지만 사막에서 배추를 재배하는 일은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하자 농부들조차 작업을 포기하자고 했고 김 회장도 암담하게 느껴졌다. 오랜 노력 끝에 그는 결국 성공했다. 사우디 영동농장은 500㎏의 배추를 수확했다.

현지에서 재배해 수확하고 담근 김치는 실로 노다지였다.

사우디 영동농장은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간 생산량 3천668만1천820㎏, 매출액 5천240만2천600달러 등의 성과를 거뒀다.
 

이재영 전남도지사 권한대행이 지난달 31일 친환경 유기농 쌀 우수 생산단지인 강진 영동농장을 방문해 모내기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전남도 제공

■멋진 음악의 새 농법이 ‘즐거운 쌀’만들어

그의 오랜 꿈은 고향 강진에서 착한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사우디에서 번 돈은 강진의 척박한 뻘밭 3만3천58㎡(1만평)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지난 1983년부터 강진군 신전면의 영동농장이 가동됐다.

사우디 농사의 비결을 물으면 늘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우리사회, 내 나라가 거기 있었다”고 답했다. 이제 그 성과물을 되돌려 이제까지 입은 은혜에 작으나마 보답하고자 한다는 ‘베풂’의 이유로 대화는 이어진다. 언젠가 TV에서 젊은이들과 파안대소하며 (그 고생을) 즐겁게 얘기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너르디너른 영동농장의 벼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큰다. 그 쌀이 보듬은 속성이 어찌 웅숭깊지 않으랴? 열사의 배추농사만큼이나 뜻밖의 환상적인 농업이다. 그의 ‘착한 농사’의 한 얼굴이다. ‘음악 농법’은 작물을 대하는 영동농장, 또한 농업인 김용복의 마음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아이들에게 주저 없이 기쁘게 먹일 수 있는 유기농 쌀만을 생산한다.

올해 39주년을 맞는 영동농장은 농업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1989년도에 용복장학재단 설립에 20억원, 2005년에는 한사랑농촌문화재단에 100억원, 2016년에는 월정어린이복지재단에 33억원을 환원하는 등 사회적 문화사업을 지원해 오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나라를 사랑하고 농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에서 사비 2억원을 들여 영동농장 내에 30m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들인 김태정 회장이 김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창업주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영동농장은 유기농업 57㏊·377t, 관행재배 140㏊·981t의 쌀을 생산하고 있다. 관행농법보다 힘이 들고 수확량이 적어 제값도 받지 못하는 등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오직 정성과 믿음으로 유기농업을 이어오고 있다.

■농사는 마음이고 사람이다

결국 농사는 마음이고, 사람이라는 본디 마음으로 되돌아온다. 이 ‘청년 할아버지’의 수더분한 웃음은 그렇게 ‘사람 농사’로 대화의 방향을 튼다.

사람 농사야 의당 ‘사랑’아닌가? 가장 큰 농사짓는 고수이면서 청년들 가슴의 북을 두드려 꿈으로 설레게 하는 즐거운 고수다. 그의 웃음에서 벼가 듣고 자란다는 그 음악이 퍼져 나오는 것 같다. 아름다운 삶이다.

서울의 ‘용복 장학재산’, ‘한사랑 농촌문화재단’은 흙·사람·사랑을 향하는 큰 농업의 도구다. 농사로 번 돈의 보람이기도 하다. 이 거목의 회고는 그의 ‘사는 방법’의 이유를 명확히, 절실하게 설명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금도 꿈 농사를 짓는다.

지난해 4월 강진 영동농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준공식이 열렸다. 나라와 농업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조성한 ‘월정나라바람공원’이 문을 연 것이다.

김 회장은 영동농장에서 바람이 가장 많이 부는 뒷동산 1만7천520㎡(5천300평) 규모에 사비 7억원을 들여 소나무 500그루, 동백나무 200그루, 무궁화 5천그루 등 꽃과 나무를 심어 월정나라바람공원을 조성했다. 이곳에는 흙, 사람, 사랑농사를 주제로 한 전시관까지 갖추고 있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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