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갓 외길 30년…고향을 부자마을로 만든 ‘천상 농사꾼’

<전라도 농업 선구자 -50·끝· 여수 최상진씨>

50·끝 ‘여수 돌산갓’ 최상진씨

돌산갓 외길 30년…고향을 부자마을로 만든 ‘천상 농사꾼’

소득작물로 육성·보급 앞장…전국 브랜드화 큰 기여

사회단체에 기부 등 나눔활동도 활발…상생 경영 실천
 

최상진 회장은 30년 이상 줄곧 농사에 매진했으며, 특히 ‘여수 돌산갓’ 육성과 보급에 힘썼다. /전남도 제공

120여 농가가 옹기종기 자리잡은 전남 여수시 화양리 창무마을. 수박으로도 유명한 이 마을의 들판에선 ‘돌산갓’이 자라고 있다.

창무마을은 지난 1995년부터 소득작목으로 돌산갓을 도입해 현재 200여 농가가 연간 4천여t의 갓을 생산, 15억여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돌산갓농업인연구회 최상진(61)회장이 중심이 돼 품앗이 형태의 공동수확, 공동출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농촌 고령화에 따른 농가의 여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다.

최상진 회장은 “농부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느덧 30년 이상 경력의 농부가 됐다”며 “어렸을 때 노름과 빚에 허덕이던 마을을 보며 나중에 주민들이 부자가 되는 농촌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말했다.

◇부농을 꿈꾸던 청년 농사꾼

최 회장은 군 제대 후 1981년부터 부농의 꿈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맨 먼저 시작한 것은 수박농사였다.

최 회장은 “그전에는 마을 소득이라고 해봐야 다 합쳐 1억원이 채 안 됐다”며 “우리 마을의 토질이 수박을 키우기 적합했다. 처음엔 다섯 농가가 함께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현재는 30여 농가가 수박농사를 짓고 있지만 당시 5억원 이상 소득을 올리자 너도나도 달려들어 100여 농가로 늘었다. 수박농사는 밭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1994년 마을 이장 재임시절, 농어촌진흥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가 처음 실시한 ‘밭기반정지사업’에 창무마을이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 최 회장은 자신이 받던 이장 보수를 털어 심사현장을 쫓아다녔다고 전했다. 창무마을 안쪽을 가로질러 사각으로 반듯이 정리된 밭을 따라 놓인 폭 4m의 농로는 그때 생겼다. 창무마을이 부자마을로 탈바꿈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밭 정리와 도로 개설 외에 최 회장이 특별하게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암반수’다. 밭 사이사이 8곳에 샘을 파서 농수를 확보했다. 초록색으로 덮인 언덕에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에도 암반수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한다.
 

전남 여수 창무마을은 지난 1995년부터 소득작목으로 돌산갓을 도입해 현재 200여 농가가 연간 4천여t의 갓을 생산, 15억여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사진은 마을주민들이 돌산갓을 수확하고 있는 모습. /전남도 제공

◇우여곡절 끝에 소득작물로 도입

수박이 끝나고 농한기가 되면 땅을 놀리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틈새 농작물로 무를 심었다. 수확해 팔고 남은 무는 부녀회에서 단무지로 가공해 팔기도 했다. 농한기에 제법 쏠쏠한 벌이가 될 듯 싶었다. 그런대 무와 땅의 궁합이 안 맞았는지 재배가 신통치 않았다.

최 회장은 마을의 토질과 어울리는 작물을 찾던 중 대도시에서 잘 팔리는 작물을 고심했다.

서울, 부산, 광주 등 6개 도시를 돌며 시장조사를 벌였다. 그러다 서울의 한 시장에서 만난 것이 보성군 득량면의 ‘송씨네 갓’이었다. 당시 돌산갓은 2kg에 500원 하는데 송씨네 갓은 700원이었다. 최 회장은 곧장 득량면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재배나 판로 개척 등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우여곡절 끝에 송씨네 갓은 포기하고 돌산갓 씨앗을 구해 재배해 ‘화양갓’이란 이름으로 내놨다. 당시 돌산에서 갓을 재배하고 있던 농가들의 반발을 피하려고 그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돌산에서 재배하는 갓은 열무과다. 창무마을에선 배추과의 갓을 재배한다. 이 또한 돌산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선택한 방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여수 돌산갓 김치

◇통합 브랜드를 만들다

최 회장은 전국에서 먹는 여수지역 돌산각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출하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는 여수에서 재배되는 갓 명칭도 통합하자고 여수시를 설득했다.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여수 돌산갓’이라는 이름의 통합 브랜드가 탄생했다. 훨씬 효과적인 마케팅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 2006년엔 돌산갓농업인연구회를 출범시켰다. 당시 여수시내 15개 마을 2천500여 농가에서 갓을 재배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선도 농가와 이장들을 중심으로 112명의 연구요원을 선발해 여수시농업기술센터와 함께 돌산갓 연구에 돌입했다.

지난 2008년에는 나주에서 열린 제7회 대한민국농업박람회를 통해 돌산갓의 우수성을 알리는 투자를 감행했다. 2009년에는 ‘늦동이’, ‘순동이’. ‘신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돌산갓을 선보이고 재배농가에 종자를 무상으로 공급했다. 최 회장은 연구회 2대 회장을 맡은 이후 현재까지 회장으로 활동하며 돌산갓 육성과 보급, ‘여수 돌산갓’의 전국 브랜드화에 기여해왔다.

최 회장은 지난 2012년 대한민국모범기업인 식품산업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모범기업대상은 우리나라 산업의 역군이며 국가경제발전과 지역경제발전 등 각 분야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에 공이 지대한 모범기업인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또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2006년), 여수시장상(2011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더욱이 최 회장은 수입의 일정부분을 지역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등 주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최 회장은 “제일 애착이 가는 상이 스무해 전쯤 받은 대한노인회장상이다”며 “지역의 많은 어른들의 추천으로 받은 거라 지금도 그 상을 생각해 늘 조심히 산다”고 밝혔다.

그는 또 “농사, 재밌고 좋다. 일만 잘하면 큰 돈도 붙는다”며 “다시 태어나도 농사를 지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한편 ‘여수 돌산갓’은 독특한 향이 있으며 일반 갓보다 톡 쏘는 매운맛과 섬유질이 적다. 잎과 줄기에는 일반적인 붉은 갓과는 달리 잔털이 없으며 연하고 부드러운 연녹색 채소로 다른 채소에 비해 단백질 함량 또한 높다. 게다가 비타민 A와 C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돌산갓 김치는 주재료인 돌산갓에 일정량의 파와 고춧가루, 마늘, 생강, 멸치액젓과 생새우를 함께 갈아 만든 양념을 섞어 버무린 김치이다. 갓 특유의 매운 맛과 젓갈의 잘 삭은 맛이 입맛을 돋워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은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깊은 맛을 자랑한다.

중·서부취재본부/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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